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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직분 (1) - 교회와 직분

디모데전서 3:8-13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10-02

말씀내용
교회가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것 이상입니다. 교회가 추구하는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경이 말하는 바, 영이신 하나님의 집이며(고전 3:9; 딤전 3:15; 히 3:6; 벧전 4:17), 하나님의 가족이고(엡 2:19),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이고(고전 12:27; 엡 4:12) 또한 거룩한 성령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엡 2:22; 고전 3:16)입니다. 목사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니며,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조직들은 사람이 주인이 되어 운영하는 기구가 아니며, 교회에서 행하는 투표는 교회가 민주주의 체제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성 삼위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주관하시고 이끄시는 신비한 유기체입니다.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도리어 교회를 해치고 허무는 결과를 낳기 십상입니다.
우리가 오는 주일에 집사와 권사를 선출하는 공동의회를 앞두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집사와 권사를 잘 선출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이것이 사람의 뜻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묻고 이루는 과정이 되어야 하기에 그렇습니다. 교회가 단순한 인간 조직이 아니며 직분자 선출이 단순한 임원 선거가 아니기에, 우리는 이 일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이고, 또 성경이 가르치는 직분이 무엇인가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오랜 교회 생활을 하면서 관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한 것인가를 따져봐야 합니다.

1. 직분에 관한 세 가지 사실
직분에 관해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알고 있는 오해들을 다루기 전에 먼저 직분에 관하여 우리가 확인하고 알아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A.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의 문제다.
먼저 하나님께서 교회에 직분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의 직분은 교회의 건강을 위해서 주신 몸의 뼈대와 같은 것입니다. 교회가 온전하게 세워지고 본래의 기능과 목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교회에 직분을 주셨습니다. 교회의 참과 거짓을 가르는 요소는 강단에서 복음이 바르게 선포되며 성례가 주님이 명하신대로 바르게 시행되는가와 관련이 있지만, 직분을 세우는 것은 교회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직분자를 세우라고 하면서, 디모데전서 3:15에서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함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직분자들을 세움’에 연결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종종 말씀을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서 직분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잘못된 태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직분은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고, 그래서 교회는 직분자를 세우는 일을 주님의 말씀을 따라 신중하게 잘 해야 합니다. 지혜롭고 충성된 직분자들이 많이 세워지면, 교회는 그만큼 건강하고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B. 직분은 은사다.
두번째로 직분에 관련해서 우리가 알아야할 사실은, 직분은 사람이 고안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여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보통 교회의 항존직이라고 말하는 직분이 세 가지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입니다. 항존직은 종신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교회가 있는 동안에 항상 존재하는 직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 직분을 친히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존직인 목사와 장로와 집사는 안수하여 세웁니다. 항존직 외에도 임시직이 있는데, 전도사, 전도인, 권사, 서리집사 등이 해당합니다. 임시직은 교회의 사정에 따라서 둘 수 있되, 안수 없이 세우는 직분입니다. 항존직과 임시직을 나누는 기준은 주님께서 명하셨는가 입니다. 직분을 제정하신 주님께서는 은사도 함께 주십니다. 특별히 항존직에 한해서, 직분은 사람의 지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명하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직분자들은 자신이 맡은 직분을 주님께서 주신 은사로 이해할 때,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겸손히 순종하는 자세로 직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벧전 5:3).

C. 직분에는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이 있다.
세번째로 직분에 관해 언급할 것은 소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직분으로 불러 세우고자 하시면 소명을 주십니다. 이 소명에는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이 있습니다. 내적 소명은 자신이 스스로 이 직분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인데, 이것을 주관적이고 사적인 욕심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교회가 온전하고 영광스럽게 세워지기를 바라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을 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부담이 일어날 때, 그것은 내적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도는 디모데전서 3:1에서 언급했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이 마음은 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적 소명을 가졌다고 바로 직분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회원들이 하나님께서 그를 그 직분으로 부르셨는지 분별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그것이 외적 소명입니다. 교회의 회원인 성도들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사리분별을 하여 투표를 하여 선출함으로써 확인하는 절차를 가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확인하는 투표라는 점에서 세상에서 하는 다수가 이기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드러내는 투표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2. 직분에 관한 두 가지 오해
이제 성경적 직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가지는 오해 두 가지를 다루겠습니다.

A. 직분과 직책, 직임은 다르다.
첫째는 직분과 직책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직책은 당회장, 남여전도회장, 제직회장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혹 그것은 성가대 지휘자, 반주자, 주일학교 교사 등과 같은 맡은 임무와 관련해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책이나 직임은 신약성경에서 명하는 바가 아니기에, 교회에 본질적 요소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명하신 항존직은 원리상 내적, 외적 소명을 통하여 주어진 본질적 요소입니다. 우리는 직분과 직책, 혹은 직임을 구별해야 합니다.

B.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두번째는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교회는 상명하복의 계급구조가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장로?집사?권사?서리집사?성도의 순서로 구성된 상하질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는 가장 존귀한 신분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 목사나 장로의 직분으로 서지 않고 성도로 서게 될 것입니다. 직분이 계급이 아니기에 승진의 개념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집사가 장로가 되면 승진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개념이 아니라 은사에 따라 어떤 이는 장로로, 어떤 이는 집사로 세움을 받는 것입니다. 직분이 계급이나 권력이 아닙니다.

3. 성경이 가르치는 집사 직분
그러면 이제 본문을 통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집사와 권사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약 성경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나 권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이 말씀하는 집사의 직분을 먼저 살피고 권사의 직분은 어떻게 유래되어 존재하게 된 것인지 살피겠습니다.

A. 집사의 자격(딤전 3:8~13)
디모데전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직분을 차례로 말합니다. 감독은 장로와 같은 말인데, 장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치리를 겸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만 하는 장로로 구분됩니다. 1~7절은 감독의 직분을, 8~13절은 집사의 직분을 다루는데 우리는 특별히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집사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성도들이 사리분별을 하여 선출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십니다. 8절에 ‘정중하다’는 말은 존경할만한 성품과 태도를 가졌다는 말입니다.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 말을 했다 저 말을 했다 하는 것인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면 일구이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를 탐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욕이나 탐욕은 주를 섬기는 자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9절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고 할 때, 믿음의 비밀은 믿음의 도리, 진리의 체계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깨끗한 양심이라고 했는데, 양심이 더럽혀지면 믿음은 그 그릇에 담겨질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은 중요합니다. 양심은 믿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양심은 보입니다. 10절에는 ‘먼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시험하여 보고 책망할 것이 없을 때 집사로 세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도 중요하고, 세상 앞에 수치를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이 11절입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라고 말하는데 ‘여자’는 한 남자의 부인을 의미할 수도 있고, 그냥 여자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여자로 읽으면 사도 바울이 여자 집사를 가리켜 하신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1에서 사도 바울이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고 말했는데 여기 ‘일꾼’은 ‘집사’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만일 여기서 뵈뵈가 여자 집사로 언급된 것이라면, 성경이 여자 집사를 항존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권사에 해당하는 직분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볼 수는 있습니다. 여자들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는’ 것은, 8절에서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익박히지 아니’하는 조건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여기에 ‘모든 일에 충성된’ 자여야 한다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다시 12절에서 ‘(남자)집사’직분을 언급하는데,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상적인 가정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가끔 자신의 가정이나 일을 돌보지 않은 채 주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을 봅니다. 이것은 합당한 직분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사도는 만일 우리가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13). 이것은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집사 뿐 아니라 모든 직분을 섬길 때, 잘 섬긴 사람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습니다. 교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또 개인으로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는다고 하니, 영적으로 큰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집사로 잘 섬기는 자는 이런 복된 은혜를 입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진단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오늘날 교회가 직분을 이해하고 세우는 일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많이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분을 받아 섬기는 것은 실로 복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벧샬롬교회에서 언제나 경험되는 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B. 집사의 직무(행 6:1~7)
집사를 이런 조건으로 선출하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사의 직무가 무엇입니까? 사실, 여기에 대해서 오늘날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총회 헌법 4권 정치편, 4장 집사, 3조 집사의 직무에서 언급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집사의 직무는 목사 장로와 합력하여 빈핍 곤궁한 자를 권고하며 환자와 갇힌 자와 과부와 고아와 모든 환난 당한 자를 위문하되 당회 감독 아래서 행하며 교회에서 수금한 구제비와 일반 재정을 수납 지출한다(행 6:1~3).” 집사 직무의 주된 일은 가난하고 곤궁한 자를 구제하고 위로하는 일입니다. 성경의 근거는 사도행전 6장입니다. 은혜 가운데 성장하던 초대교회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파 과부들 사이에 교회의 구제를 받는 일에서 불평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헬라어를 주로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에 뿌리를 박고 살아왔고 아람어를 주로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과부들은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남편이 없는 사람들로 명백한 구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과부들이 종종 구제에서 누락됨으로 푸대접을 받는다고 느끼는 일이 일어났고 이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로 문제 속으로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을 불러서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말씀의 직분을 소홀히 하고 이 일을 해결하고 감당하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2). 사도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집사를 선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 일을 전담하게 하고 자신들은 말씀 사역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이었습니다(3~4). 사도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선출하여 세우라고 했고, 교회는 사도들의 말에 순종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였고 사도들은 그들을 안수하여 집사의 직분으로 세웠습니다(5~6). 이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성장하게 되었습니다(7). 집사의 직분을 잘 세우니, 하나님의 교회가 더 강성하게 된 것입니다!
집사를 세우는 조건도 학문이나 경력 같은 스펙이 아니라, 오직 영적인 것이었습니다. 교회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을 교회가 택하였다는 것은 외적 소명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집사의 중요한 직무는 온 교회에서 곤궁한 지체들이 교회의 사랑을 받게 하는 일입니다. 교회에서 집사들이 직무를 잘 감당하면, 온 교회가 사랑이 넘치고, 사랑이 모든 지체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집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헬라파 과부들 처럼 소외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혹시 있지 않은지 살피고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 직분자입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을 ‘자비의 직분’이라고도 말합니다.

4. 권사의 직분은 어디서 왔는가?
그럼 이제 하나 생각할 문제는, 권사의 직분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권사의 직분은 어디서 유래했으며 권사의 직무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직분이 성경에 없으므로, 우리는 교회 헌법이 뭐라고 규정하는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교회 헌법 4권 정치, 3장 교회 직원, 3조 ‘교회의 임시직원’의 3항 권사 에서 권사의 직무와 권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권사는 당회의 지도 아래 교인을 방문하되 병환자와 환난을 당하는 자와 특히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을 돌보아 권면하는 자로 제직회 회원이 된다.” 권사의 직무는 교인들 특히 병환을 가진 교인들이나 환난을 당한 교인들, 또 믿음이 연약한 교인들의 형편과 상황을 돌보고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입니다. 이점에서 권사의 직무는 집사의 직무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므로 디모데전서 3:11에서 ‘여자’를 권사의 직분과 연관지어 이해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직분이 성경에 명시되지는 않았기에, 교회 헌법은 “권사는 안수 없는 종신 직원”인 임시직으로 규정합니다.
권사 직분은 본래 미국 감리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권사(exhorter)는 ‘권면하는 사람’으로 공식 임명을 받은 직분으로 로마서 12:8에 ‘위로하는 자’에 근거한 직분이었으나 1939년 미국 남북 감리교회가 연합되면서 권사의 직분은 없어졌습니다. 한국에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한국 감리교회는 초기에 권사를 견습 또는 전도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초기에 평양 지역의 장로교회에서는 심방과 개인전도, 성경공부와 교회봉사 등 전도 부인의 역할을 감당하는 여교역자들을 권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교회 헌법에 여교역자를 전도사라고 명시하게 되면서, 교회 봉사를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지도력도 있는 여자 (서리)집사 중에서 여교역자를 대신하여 봉사하도록 당회가 임명하는 임시직을 권사라고 했습니다. 이후 1954년 39회 총회에서 여자 장로를 허락하지 않는 대신, 권사 제도를 신설하기로 결의했고 권사는 안수집사와 같은 방식으로 선거하되 안수를 행하지 않고 세우는 종신직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감리교회는 장로교회와 달리, 남자에게도 권사직을 허용하였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 중에서도 통합측은 1971년판 헌법에서 권사를 항존직으로 규정했고, 1999년의 84회 총회에서는 권사 안수를 결의하였으나, 우리가 속한 합동측은 안수 없는 임시직으로 여전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고신측은 2011년 개정 헌법에서 권사를 ‘준 항존직’으로 변경하였는데, 여기 ‘준’이라고 한 것은 성경에 명시되지 않은 직분이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비록 권사 직분은 성경에 명시된 직분은 아니지만, 집사들과 함께, 온 교회를 사랑과 위로가 풍성하게 하는 일에 귀히 쓰임받는 직분인 것입니다. 권사 직분은 한 가정의 어머니 처럼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직분입니다.

5. 적용과 교훈
이제 말씀을 정리하면서 두 가지 적용점을 생각해보겠습니다.

A.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십시오.
첫째는 건강한 교회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와 장로, 교인들은 성장하는 교회, 큰 교회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한 교회, 튼튼한 교회입니다. 지난 수요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말씀을 들으시는 70세 가까운 여성도님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메일 끝에 이렇게 쓰셨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을 위한 기도는,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어도 결코 변질되시지 않기를.....큰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건강한 교회를 이 땅에 세워 가시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깨끗하고 능력의 통로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가 정말 귀합니다. 여러분은 우리 벧샬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바라고 구하고 기도하십니까?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큰 교회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큰 교회들이 그 유명세 때문에 더 많은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건강한 교회가 없어서, 혹은 적어서 일어납니다. 문제는 교회 밖 세상으로부터만 오는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직분이 온전하면 교회는 건강해집니다. 교회의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말씀이 부족하거나 무능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에 온 교회가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려면 주님이 친히 신약성경에 명하신대로 직분을 세워야 하고, 직분자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직분을 수행하는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는 주일에 우리는 집사와 권사를 선출합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교회를 꿈꾸고 하나님께 구하면서, 오는 주일의 직분자 선출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가운데 잘 치러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우리 벧샬롬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발돋움하는 귀한 은혜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기대하고 구하십시다.

B. 직분을 얻기를 사모하십시오(딤전 3:1).
두번째 적용적 권면은 직분을 구하시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디모데전서 3:1을 다시 보겠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이것은 괜히 여러분의 마음에 직분에 대한 사욕이나 탐욕을 부추기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귀함을 알고, “아, 내가 한 번 사는 인생을 드려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고 튼튼한 교회가 되는 일에 쓰임 받고 싶다”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탐욕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그 일에 여러분의 인생이 드려지는 영광을 얻기를 사모하시라는 것입니다. 저는 2015년 7월 19일 우리 벧샬롬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설교할 때,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되시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수 많은 교회를 출석한 인생이 되지 마시고, “그저 교회 출석만 하다가 왔습니다”하고 주님께 보고하는 인생이 되지 마시고, 한 번 사는 인생을 주님께서 피흘려 사신 교회를 세우고 건강하고 튼튼하게 세우는 일에 쓰임 받는 인생으로 사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사도는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는 것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왜 감독의 직분만이겠습니까? 집사도, 권사도 다 귀하고 복된 직분입니다. 물론 직분이 없어도 주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3).” 벧샬롬 교회에서 집사로, 권사로, 장로로, 목사로 섬긴 이들에게 모두 이런 복된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는 주일에 있을 직분자 선출이 우리 벧샬롬 교회에 큰 축복의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집사로, 권사의 직분으로 세움을 받으시는 분들의 인생에도 큰 축복의 사건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