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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2011 - 성만찬의 감사와 감격

고린도전서 11:23-2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1-04-17

말씀내용
<성만찬의 감사와 감격> 고전 11:23~26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 주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를 가르치는 마지막 시간에 그것을 단지 말씀으로만 하지 않으시고 행위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떡을 들어서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시면서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고, 또 잔을 가지고 나누어주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써 가르쳐주려고 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이후 주님의 교회는 모일 때 주님께서 행하셨던 것과 같이 떡을 떼어 나누고, 잔을 나누면서 주님께서 기념하라고 하신 그 일을 기념해왔습니다. 이 일에 대한 많은 해석이 교회를 논쟁 가운데 몰아넣기도 한 것도 사실입니다. 후에 종교개혁자들은 이 성만찬 제정이 세례와 함께 주님이 제정하여 행하라고 하신 오직 두 개의 성례라고 하였고, 이 성례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함께 교회에 주신 은혜의 수단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실로 신약 성경을 면밀히 살펴 볼 때, 주님께서 교회에 하라고 제정하여 주신 성례는 세례와 성찬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례가 하나님께서 말씀의 선포와 함께 신자들에게 은혜의 수단으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부활 주일인 다음 주일에 우리는 성찬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 전에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찬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의도하신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성찬을 받아야 하는지를 성경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일깨워드리기를 원합니다. 성찬식을 행할 때 우리는 네 가지 정도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 말씀대로 ‘기념하는 것’인데, 무엇을 기념하는고 하니 주의 죽으심의 의미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죽으심이 아니라 죽으심의 의미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전하는 것’인데 이 전한다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신앙을 입술로 고백하여 서로에게 증거하고, 또 온 세상을 향해서 선포한다는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감사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주신 속죄와 구원의 완성된 일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주님의 말씀에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언약은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졌으나 그 언약을 계속해서 갱신하는 것이 성찬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이것들을 우리가 차례대로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기념하라(24,25):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존 오웬)
먼저 주님께서는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존 오웬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통해서 받아 먹게 되는 떡 조각과 포도주 잔은 사실상 영생을 얻고 천성문에 이르도록 그 길을 걸어가는 모든 순례자들의 영적 양식입니다. 그들의 영혼이 소성하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공하여 주신 양식은 그리스도 자신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살과 피라고 하시면서 주시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시기 위하여 주 예수님께서 정하신 규례인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이것입니다(요 6:53). 이어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4~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 거듭난 생명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십니다. 이것을 가장 분명하게 상징적 표현과 행위로서 주님께서 친히 허락하여 주신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이미 죄인됨을 깨달은 사람, 그리고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에게는 이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느끼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주신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그는 성찬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게 되고, 그 죽으심으로 몸을 찢어 우리 죄인에게 주셨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저런 신비스러운 체험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 죄인들, 교회에게 주신 최고의 그리스도 체험은 바로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체험도 이 성찬의 체험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친히 신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심을 드러내시고 은혜를 주시고자 제정해주신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입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인 속죄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감정주의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많이 생각함으로써 슬퍼지는 감상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죽으심의 의미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속죄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모든 믿는 자의 속죄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로 옮기워졌고, 율법의 저주가 우리로부터 그리스도께로 옮겨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그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책이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거기서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확증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속죄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찢어주신 그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음으로써 그리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신 것을 상징하는 잔을 받으면서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 자신의 속죄의 사건이었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미 일어났고 그래서 우리가 그 떡과 잔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에게 이 그리스도의 속죄를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 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에게 이 보다 큰 은혜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찬식을 거행하게 될 때 누리게 되는 첫번째 은혜요, 감사와 감격입니다.

2. 신앙을 고백하고 선포하라(26).
두번째로 우리는 이 성찬식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또 바깥 세상을 향해서 선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떡을 마시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전한다는 말은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는 의미입니다.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신앙입니다. 우리는 숨어서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세상에 알려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공적인 고백과 선포는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바를 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내용을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나아가 세상을 향한 우리의 선포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죽으심은 율법의 저주 아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야 할 나의 죽음을 대신한 대속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신자들이 서로에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떡과 잔을 받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죄인을 위하여 몸을 찢으셨고 피를 흘려 죽으셨다는 것, 우리의 속죄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의 속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고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만찬을 통하여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살아나셨으며, 이제 다시 오실 것입니다”라는 것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있습니다. 단지 그냥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그분은 살아나셔서 우리의 구원을 확증하셨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비록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성만찬을 행하지만 우리는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을 향하여 이런 신앙 고백과 선포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3. 감사하라(마 26:26,27)
세번째로 성만찬을 행하는 의미는 감사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실 때, 떡을 가지고 축복하셨고(마 26:26), 또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셨습니다(마 26:27). 여기 사용된 두 단어, ‘축복하셨다’와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는 단어들은 모두 감사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의미로 이 떡과 잔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셨다는 말일까요? 죄인들을 위하여 찢겨지게 될 당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감사하셨고, 저들을 위하여 흘리게 될 새 언약의 피인 당신의 피흘림을 상징하는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감사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주님은 무엇을 감사하신 것일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제정하여 주시면서, 우리가 당신의 몸과 피를 통하여, 죽으심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실 것을 멀리 바라보신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과 경륜을 이루시게 될 것을 아시고 주님은 감사를 드릴 수 있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앞에 이제 곧 벌어지게 될 처참한 고난과 죽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으실 몸과 피를 상징적으로 떡과 잔에 담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일어나게 될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보셨을 것입니다(히 12:2). 주님은 그 열매가 될 자녀들을 바라보시면서 감사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성찬을 받게 될 때에 더더욱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감사하신 이 식탁에 우리는 이제 그 감사의 열매가 되어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들이 이 식탁에 앉게 될 때, 그들이 인생에서 경험하는 모든 원망과 불평들이 다 고개를 숙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친히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을 받을 때, 어떤 그리스도인이 감히 불평과 원망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성도들이 이 식탁에 앉게 될 때, 성도들의 마음은 주님께서 그러셨던 것과 같이 감사와 감격으로 새롭게 되고 채워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갱신되는 언약
이제 우리가 네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성만찬의 의미입니다. 성찬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언약을 확증해 주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맺어진 언약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시는 시간입니다. 주님께서는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던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새 언약을 맺으시는데, 이 언약은 바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 곧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와 맺어진 은혜언약의 총체입니다. 이 새 언약은 범죄한 후 아담과 하와에게 간접적으로 주어진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신 은혜언약의 약속, 그리고 다윗에게 주어진 영원한 은혜언약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이 새 언약은 어느 미래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루어질 남아있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믿는 자와 맺어진 은혜언약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언약입니다. 사실상 이 언약은 한 번 맺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고 영원한 효력을 지닙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성만찬을 제정하심으로써 성도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이 영원한 새 언약을 계속해서 기억할 수 있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주님께서는 그 언약을 우리 영혼에 계속해서 상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계속해서 상기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늘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비추어 우리는 너무나 자주 범죄하고 살아갑니다. 이런 우리들에게 언약의 갱신이라는 것은 매우 은혜로운 수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은 여전히 우리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이 성만찬을 통하여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심으로 맺어진 이 은혜언약은 결코 깨어질 수 없습니다. 결코 그 어떤 실패와 잘못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그리스도의 피로 맺으신 새언약의 관계를 깰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성만찬을 통하여 감사할 뿐 아니라, 갱신되는 언약을 통하여 기뻐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실패한 자녀들을 세우시기 위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5. 교훈과 적용(시 2:11)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은혜는 한 마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현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삶의 가장 놀라운 축복이며 비밀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믿어지지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사실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만찬을 제정해주셨습니다. 성도는 성만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와 그리스도를 연합하게 하는 것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런 복된 은혜의 체험이 일어나게 되는 성만찬을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받아야 하겠습니까?

A. 경외함과 떨림
많은 경우에 이 성만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떨리는 일이어서 성도들이 오래도록 준비하게 한 후에야 행했던 것이 한국교회의 초기의 관습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사뭇 변화가 많이 일어나서 경외함과 떨림은 많이 사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너무나 일상적인 일처럼 받아들여진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균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상징하는 성찬식을 쉽고 가볍게 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슬픔으로 우리의 감정을 몰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일어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죄 없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발단이 된 원인이 우리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식이 무엇보다 우리의 죄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것은 우리를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을 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경외함으로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를 죄로 다루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B. 즐거움과 기쁨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되었다는 복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죄가 다 도말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이 성찬을 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렵고 떨림이 큰 만큼,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도 클 것입니다. 아무 두려움도, 떨림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즐거움도 기쁨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을 보는 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성령께서 이 성찬을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 도덕적 완전함을 가지고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은 오히려 실패자들을 위하여 베푸신 주님의 식탁입니다. 과거에는 성찬을 대할 때,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성찬을 받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에게 해결되지 못한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그 실패자요, 죄인인 나를 위하여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받으실 만하게 만드시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셨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무가치함을 하나님께 드릴 때 우리는 정당하게 주의 만찬에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 주님이 받으실 만한 양질의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회개와 믿음과 사랑이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주의 만찬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찬은 복음을 듣기만 하던 자에게 그 복음을 맛보게 하시도록 주신 은혜입니다. 주님의 온전한 사랑이 마음 속 깊이 경험되지 않던 분들에게, 주님께서 너를 위해 깨어진 나의 몸을 받고 너를 위해 흘린 새언약의 피를 먹음으로 느끼라고 주신 은혜입니다. 다음 주일에 있게 될 성찬식을 기도 가운데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도록 영적 침체에 빠져있던 분들에게 주님께서 당신 자신을 양식으로 주심으로 그 영혼을 소성케 하는 은혜를 구하심으로 성찬식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음 주일에 성찬을 받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이렇게 풍성하게 예비하신 하늘의 은혜를 맛보고 누리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