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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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 2013 - 기독교 신앙이 서고 넘어지는 그리스도의 부활.

고린도전서 15:12-19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3-03-31

말씀내용
<기독교 신앙이 서고 넘어지는 그리스도의 부활> 고전 15:12~19

1.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모든 것은 다 무너진다.
기독교 복음에 대한 가장 압축적인 진술인 고린도전서 15:3~4은 복음의 바뀔 수 없는 내용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믿음일 수 없습니다. 본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서고 넘어지는 핵심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는 이것을 가정법의 형태로 표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라고 했습니다(14~15a). 또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7~18)”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말합니다(19). 정리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1)사도들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고 2)믿음도 헛것이고 3)우리는 하나님의 거짓증인이 될 것이며 4)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5)믿고 죽은 사람들은 다 멸망했을 것이고 6)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들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 성경은 이토록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중요하게 말씀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자기 백성을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부족한 것입니까? 두 가지 점에서 바울 사도는 그 이유를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첫째는 그리스도 자신을 확증하기 위해서 중요하고, 둘째로 신자의 믿음을 확고하게 세워주기 위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2.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자신을 확증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리스도 자신을 확증한다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부활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주님은 이틀 전인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죄수를 처형하는 것을 전문으로 해왔던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확인했고(막 15:39, 44~45), 병사는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러 확인까지 했습니다(요 19:34). 주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당신의 죽으심의 성격을 누차 설명하신 바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라고 증거했습니다. 신구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받은 죽음으로써 믿는 자들을 저주에서 속량하는 죽음이었습니다(갈 3:13). 뿐만 아니라 그 죽으심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하시는 죽음이었습니다(롬 5:9). 그리스도의 피흘려 죽으심 안에서 모든 믿는 자들의 속죄가 일어났고,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화목제물이 되심으로써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다 풀어주셨습니다(롬 3:25). 문제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아는가, 어떻게 확신하는가 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서 죽으심으로써 그를 믿는 내 죄가 모두 다 사함을 받았고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분의 모든 말씀이 진정한 것이었음을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이 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써 예수님께서 참으로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그리고 그 죽으심으로 참으로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셨음을 확증해 주십니다. 로마서 1:4이 그것을 말합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는 말은 아들이 아니었다가 아들이 되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당신을 증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인정되었다’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호리조 horizo’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지평선을 뜻하는 horiozn 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존 맥아더는 “지평선이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 확실한 경계선을 보여주듯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과 다른 인간들을 분명하게 구별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제공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되신 하나님이라는 명확한, 부인하거나 논박할 수 없는 증거로 하나님은 부활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 부활은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만나본 일차적인 증인들의 증거로 확인되는 바, 그것이 복음서요, 크게는 신약성경입니다, 이 목격자들은 한 둘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5~8에 그 수많은 목격자들의 목록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성경이 날조된 기록’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적 사료의 진정성을 결정하는 객관적 기준에서 보더라도 신약성경은 무시할 수 없는 1차 사료입니다. 만일 이들의 증언이 날조라면 어떻게 이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면서까지 날조된 거짓을 지키려고 했을까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변화를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사실상 믿음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역사 속에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하나의 명확한, 핑계 댈 수 없는 증거로 제시하신 것입니다. 부활로써 주님은 참되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의 믿음을 세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부활로써 증명되었다면, 이것은 또한 주님의 죽으심이 말씀하신대로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시는 죽음이었음을 입증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로마서 4:25에서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신 말씀이 그 대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의 범죄와 허물을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어줌’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유는 그분의 죽음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자신들의 죄가 완전히 용서함을 받았고 완전한 칭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진정성을 제자들과 오늘날의 신자들에게까지 확증시켜주신 사건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런 전제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쓴 것입니다. 너무나 확실하게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대속 형벌을 받으신 죽음이었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부활을 역사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이 전파하는 복음은 헛된 것이 되고 신자들의 믿음도 헛 것이 될 것이며,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되고, 믿는 자들은 여전히 용서받지 못한 죄 가운데 있을 것이며, 믿고 죽은 심지어 순교한 많은 신자들은 지금 하나님의 품에 안겨있는 것이 아니라 멸망한 자들이 되었을 테고 마지막으로 믿는 자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자들이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헛된 가정들을 무위로 돌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그리스도가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의 모든 말씀이 참되며, 그분의 죽으심이 말씀대로 대속 형벌의 죽음임을 모든 믿는 자들은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항변하듯이, 기독교 신앙이 서고 넘어지는 사건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일어난 사건이라면 기독교 복음은 참된 것이며, 믿는 자들의 믿음이야말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참되고,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되며, 믿는 자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자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의 신앙에 대하여 한 가지만 더 말해야겠습니다. 아무리 많은 부활의 역사적 증거들을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좀체 이 사건만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 역사 속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는 부활 사건과 비교도 안 되는 일차 사료들을 가지고도 믿으면서도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성령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이 부활 사건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처음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아십니까? 먼저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집니다. 그전에는 그렇게 의문도 많고 믿어지지도 않던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그리고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부인할 수 없이 믿게 됩니다.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4. 부활이 신자가 기다리는 소망이다.
그렇다면, 이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우리의 신앙에 어떤 의미를 줍니까? 신자는 자신의 죄가 그리스도 십자가 죽음에서 완전하게 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칭의를 얻은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자신을 짓누르는 죄의 무게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 기쁨의 은혜를 압니다. 기독교 신앙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정초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을 순종하게 합니다. 이것은 이미 제자들의 삶의 변화에서 본 것이기도 하지만, 모든 신자들이 경험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용기로 자기 아들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썼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9).” 주님께서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부활로 입증되었듯이, 신자의 모든 것이 완전하게 입증되는 것도 그들의 부활할 때입니다. 우리에 대한 세상의 온갖 비난과 오해, 조소가 있을지라도 이 모든 것은 부활의 시간에 일순간에 다 사라지고 말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는 사실은 이 세상의 어떤 증거들로써가 아니라 부활로써 완전히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신자의 소망은 부활에 있습니다. 이 전제에서 신자는 이 땅에서 십자가, 험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일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증명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의 옳음을 입증하실 것을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그러셨듯이 묵묵히 자기의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걸어가십시오. 부활의 날까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