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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2010 - 경건한 어머니들을 꿈꾸며

디모데후서 3:14-17, 사도행전 16:1-3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0-05-09

말씀내용
<경건한 어머니들을 꿈꾸며> 딤후 1:5(딤후 3:14~17; 행 16:1~3)


저는 교회가 설립된 후 거의 강해설교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어머니 날을 맞아서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특별히 어머니들에게, 육신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어머니의 소명을 살아가려는 분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었으면 하고 아울러 하나님이 주시는 도전이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은 디모데의 가정 이력을 보여주는 짧은 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성령님께서 바울 사도를 영감하셔서 기록하신 두 여인의 이름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로이스와 유니게, 바로 디모데라는 초대 교회 지도자의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가정이란 아이디어는 인간이 살다가 자연히 형성된 것이 아니라,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의도하고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였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타락상이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정의 파괴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오늘날 경건한 어머니를 꿈꾼다는 것은 어쩌면 비현실적인 기대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경건한 어른으로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존재론적인 부르심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로이스와 유니게 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경건한 어머니에 대한 성경적 이상을 함께 상고하려고 합니다.

1. 배경
디모데와 그의 가정의 배경은 우리와 같은 이민자 가정의 유대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 사도 일행이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하러 루스드라와 더베 지방으로 갔을 때 복음을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던 자들이었는데, 구약의 모든 예언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바울 사도가 전한 복음은 로이스와 유니게를 회심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아마 디모데도 회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살던 지역은 헬라의 영향으로 많은 우상 신들을 섬기던 곳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를 일으켰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각각 허메(헤르메스)와 쓰스(제우스)라고 하면서 신으로 섬기려고 했던 사건은 그 지방의 문화와 종교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입니다(행 14:8~18). 로이스와 유니게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아들을 양육하기에는 좋은 환경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성경이 비록 디모데의 가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주고 있지는 않지만, 한 가지 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다는 것입니다(행 16:1). 아마 그의 아버지이자 유니게의 남편은 하나님을 섬기는 개종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모데가 어린 시절에 할례를 받지 않았었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행 16:3). 어떻게 디모데가 할머니 로이스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단지, 디모데의 신앙은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디모데라는 이름도 헬라식 이름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의미임을 고려할 때, 이 이름을 준 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라(딤후 3:14~17)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딤후 3:14~17입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이 14절입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운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배웠던 그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 가운데 거하라고 말합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구약 시대의 참된 성도들과 같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알았고 가르쳤을 것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는 결코 신학자도 아니었고, 바리새인과 같은 정통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사랑했고(모든 구약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디모데를 양육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 사도와 함께 공유한 확신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다는 것이고, 사람을 교훈하고 책망하며 바르게 교정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A. 어머니, 위대한 복음전도자
이 두 어머니가 가진 이런 확신은 그들을 자신들의 자녀들을 향한 위대한 복음전도자가 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어머니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는 고통스런 출산을 통해서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준 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시 그 어머니들에게 이런 부담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가장 위대한 복음전도자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으로 가정, 특별히 부모의 책임이었습니다. 성경 안에 있는 이런 개념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날 모든 어머니들이 가져야 하는 영적 부담을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말씀드립니다. 육적 생명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영적 생명의 어머니가 되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 능력에 달린 일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이 부담 만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어머니들이 가져야 하는 마땅한 부담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책임을 교회에,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떠맡기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향한 복음전도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부모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어머니들에게 말씀드립니다.

3. 삶에서 드러나는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양육하라(딤후 1:5)
디모데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준 것은 단순히 성경 교육만은 아니었습니다. 로이스와 유니게의 성경 교육은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삶으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디모데의 할머니와 어머니를 만나서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어떤지를 그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네 속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은 네 외조모와 어머니를 통해서 보았던 바로 그 믿음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디모데의 믿음이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해서 상속된 믿음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냥 믿음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그들의 믿음의 순전함을 보고 매우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여러 사람의 믿음을 표현하거나 수식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들, 로이스와 유니게 그리고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참 믿음입니다. 로이스와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가르친 신앙은 단지 말로만의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에만, 가정 예배 시간에만 한정된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신앙,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표현되는 신앙이었습니다. 신앙의 영역과 생활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결코 말로 전수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신앙 교육의 최적의 장소로 제정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가정이야말로 우리의 삶의 실제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에, 신앙이 가르쳐질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동일한 이유 때문에 신앙이 잘못 전수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특별히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니들은 어떻게 신앙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오셨습니까? 그것은 진정 여러분 안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렇게 부모가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다 수학공식처럼 디모데 같이 믿음 좋은 자녀들이 만들어진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셨으면 합니다. 디모데가 어머니와 외조모로부터 아무리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회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 교육이 자녀의 회심을 보장하거나, 대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거짓이 없는 믿음의 삶이 자녀의 회심을 대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은 부모의 신앙이며, 자녀는 또한 자신의 것으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의 마음을 마음대로 변하게 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한 어머니는 이 모든 것?성경으로 양육하고 삶을 통하여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르쳤다고 하더라도?을 다 잘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경건한 어머니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기도가 있습니다. 이 기도는 결코 옵션이 아닙니다.

4. 기도와 눈물
성경은 디모데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기도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는 추측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다른 하나님의 말씀들에 비추어 판단하건대, 그들은 손자요, 아들인 디모데를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하는 어머니들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로서 합류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그리고 후에 바울 사도를 이어 에베소 교회를 젊은 나이에 목회하게 되었을 때,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는 기도로 아들의 삶과 사역을 늘 축복했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기도라는 이 주제에 이르게 되면, 한 위대한 경건의 삶을 보여준 어머니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입니다. 그녀는 2000년의 교회 역사에서 그 탁월한, 그리고 교회의 역사와 신학에 그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사람,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기도의 사람으로 교회의 역사가 기억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기도의 사람이라기 보다는 기도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범을 우리는 이 여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알려진 대부분의 자료는 바로 그녀가 평생 그토록 눈물로 기도했던 아들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통해서 얻어진 것들입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 9권 12장 29절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기리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선하신 말씀과 “거짓이 없는 믿음”(딤전 1:5)을 생각하고 이를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기도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했었고, ‘거짓이 없는 믿음’을 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후에 어거스틴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때, 그 뿌리에는 어머니가 가르쳐준 하나님의 말씀과 어머니가 보여준 거짓이 없는 믿음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그가 고백하는 것입니다.

모니카는 331년에 북아프리카의 한 부유한 집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자기를 양육하는 늙은 하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가정적으로 믿지 않는 환경 속에서 불신자인 파트리키우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평생 모니카는 남편 파트리키우스의 회심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여 결국은 죽기 전에 파트리키우스는 회개하고 주님을 믿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그러나 모니카의 생애에 가장 비통한 기도는 주로 그녀의 아들인 어거스틴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의 참회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여종인 나의 어머니는 보통 어머니들이 죽은 자식을 위해 우는 것보다도 살아있는 나를 위해서 더 울었습니다. 이는 어머니께서 하나님을 통하여 얻은 신앙과 영의 능력으로 나의 영적 죽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3권 11장 19절).”
어거스틴은 잘 알려졌듯이, 17세에 고향을 떠나 카르타고에서 10여년 유학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17세에 이미 한 여자와 동거를 하기 시작했고 정육의 죄악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종교적으로는 마니교에 심취하여 10여년의 세월을 마니교에서 보냈습니다. 물론 그의 탁월한 천재적 지능은 모든 공부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니카가 사랑하는 아들을 대도시로 유학을 보낸 이유는 한 가지였습니다. 세상의 성공이 아니라, 세상의 지식을 통달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 도리어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상적으로 어거스틴은 도리어 공부를 할수록 성경과 기독교를 따분한 것으로 여기고 마니교로 심취해들어갔습니다. 나중에 그는 한 소녀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서 결혼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그동안 오래 동거하던 여인과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소녀가 결혼하기까지 2년을 기다려야 하는 연령이어서 그는 그 2년을 기다릴 수 없어 다시 한 여인을 취하여 새로운 동거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의 방탕함이 이렇게 깊어만 갈수록 어머니 모니카의 비통한 눈물과 기도도 깊어져 갔습니다. 결국 오랜 세월이 흘러서 어거스틴은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 날의 이야기를 이렇게 그는 고백합니다.
“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인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 앞에 드러났고 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통곡하고 싶었습니다.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 나무 아래 엎드렸고 내 눈에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신령한 제사”(벧전 2:5)가 되었습니다….나는 진실로 죄악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 중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 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 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깨끗이 끝내지 못합니까?” 그처럼 말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참회하고 나는 울었습니다.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소년의 음성인지 소녀의 음성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노래의 가사말과 같았습니다. “집어들고 읽어라. 집어들고 읽어라.”….나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고 일어섰습니다. 그 음성은 분명히 내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나는 속히 집으로 가서 성경책을 펴들고 제일 처음에 눈에 띄는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해석했습니다….나는 바울의 서신을 펴들고 제일 먼저 내 눈길이 닿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나는 더 읽지 않았습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내 마음을 비추어 내 속에 있던 모든 의심의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8권 12장 28,29절)

이 일이 어거스틴에게 일어난 것은 그의 나이 32세 때였습니다. 어거스틴은 이 일이 어떻게 자기 생애에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주저 없이 인정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진리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마음, 그 밖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밖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밖에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도록 된 마음을 주신 것은 어머니의 기도 덕분입니다. 그렇게 큰 유익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어머니의 기도였던 것을 나는 의심치 않습니다.” (「질서론」, 2권, 20장 52절).

한 때, 모니카가 한 주교에게 아들을 진리 가운데로 돌이켜 줄 것을 부탁을 했을 때, 그 주교가 모니카에게 한 말입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흘린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3권 12장 21절).”

5. 영적 어머니, 경건한 어머니가 되어주십시오.
우리 중에는 자녀들로 인해서 마음의 고통을 겪는 어머니들이 계신 줄 압니다.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자녀의 영적 죽음을 인해서 죽은 자녀를 위해서 우는 것보다 더 우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자기의 흘리는 눈물이 하나님의 눈물 병에 담겨지기를 다윗이 소원했듯이, 그리고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신뢰했던 그런 믿음으로 기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로이스와 유니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오. 특별히 어린 자녀들을 두신 어머니들께 더욱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오. 그리고 말씀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으로 거짓이 없는 믿음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보여주십시오. 그러나 보여주기 위해서 살지는 마십시오. 그것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참으로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면,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세상적 성공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유학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은 아들이 학업을 마치고 세상에서 대성공을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를 회상하며 어거스틴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나의 마음의 밭을 경작하시는 농부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뿐이었습니다(제2권 3장 6절).”

사랑하는 어머니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결코 늦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30년을 아들을 위해서 기도했던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족, 영적인 가족입니다. 여기도 어머니들이 필요합니다. 여기야말로 경건한 어머니들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여성분들께 주님의 이름으로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경건한 어머니들이 되어주십시오. 경건한 어머니로 경건한 여러분의 영적 자녀들을 많이 출산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눈물의 기도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될 하나님의 자녀들을 낳아주십시오. 이것이 이 자리에 계신 여성 여러분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교회의 모든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경건한 어머니들이 많은 교회를 저는 꿈꿉니다. 잔소리와 온갖 까탈스러운 성질을 부리는 어머니들이 아니라, 눈물의 기도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고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자녀들을 대하는 경건한 어머니들이 되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