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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C 2013 - 설립 7주년 감사예배 - 당신은 순례자입니까?

시편 107:4~9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3-10-06

말씀내용
<당신은 순례자입니까?> 시 107:4~9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순례자입니다. 우리가 최근 32회에 걸쳐서 공부했던 존 번연의 <천로역정>은 순례자 정체성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한 탁월한 작품입니다. 오늘 교회 설립 7주년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우리가 순례자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천로역정의 많은 교훈들을 생각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1. “많은 사람이 길을 떠나지만 정작 이 산까지 도달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많은 사람이 길을 떠나지만 정작 이 산까지 도달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지요.” 천로역정에서 기쁨의 산의 목자들이 크리스천과 소망에게 한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그들이 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요?

A. 치명적인 착각: “여기가 천국이라.”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땅이 우리의 목적지라고 여기는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순례자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짐을 풀고 거기 살기로 작정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 그들이 추구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은 전부 땅의 것들입니다. 말은 그렇게 안 할지라도 그들은 여기가 천국이라고 여깁니다. 여기서 더 누리는데 그들의 모든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정말 순례자입니까? 여러분은 천성을 향해 움직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이 여정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전진을 하셨습니까?”

B. 치명적인 실수: “지도를 잘못 봤어요.”
여행할 때 일어나는 큰 실수 중 하나는 지도를 잘못 보는 것입니다. 열심히 가지만 결국 그들은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고 도리어 목적지로부터 더 멀어지는 경우입니다. 이것이 단지 시간만 허비한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끝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될 수 있습니다. 여행자가 지도를 잘못 보면 여행을 망치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신앙의 여정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일들,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과 그 의미들, 그리고 길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천로역정을 가는 성도들에게는 절대적인 지도입니다. 이 지도가 없이 여정을 계속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간다고 할지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지도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잘못 봐서 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듣기 좋아하고 원하는 구절들을 중심으로 읽어갑니다. 그렇게 교회를 선택합니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순례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2. 시편 107편이 다루는 인생의 다양한 상황들
오늘 본문인 시편 107편은 네 가지 상황에 처해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광야를 걷는 순례자입니다(4~9). 둘째는 사슬에 묶인 죄수/노예입니다(10~16). 셋째는 병들어 죽게 된 환자입니다(17~22). 마지막으로 바다에서 풍랑을 만난 자들입니다(23~32).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순례자로 인생을 사는 동안에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이고 절박한 상황들입니다. 광야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바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기도 하고 깊은 고독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목이 마르고 주릴 때도 있습니다. 또 직접 감옥에 가는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희망과 꿈이 깨어지고 실낱 같은 자유도 느낄 수 없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또 병들어 더 이상 살 소망이 끊어지거나 혹은 마음까지도 약해져서 깊은 우울함을 겪기도 합니다. 인생을 고해에 비유하였듯이, 우리는 인생이라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풍랑을 인하여 큰 고통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시편 107편이 말하는 네 경우 모두 우리들의 인생 즉, 순례여정에서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문제는 이 시편의 결론이 말하듯, 이 여정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43).” 하나님의 인자하심, 헤세드, 그분의 선하심을 배우는 것, 이것이 우리의 순례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이어야 합니다. 이보다 가치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3. 순례여정의 현실: 길을 잃고 쉴 곳을 얻지 못하고 목마르고 피곤하다(4~5).
특별히 4~5절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주고 있습니다. 방황한다는 말은 길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는다는 것, 얼마나 막연한 상황입니까? 그들은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합니다. 이것이 목적지는 아니지만, 음식과 물 그리고 거처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까? 때때로 우리는 인생에서 이런 기본적인 필요를 채움 받지 못할 정도로 극한 고통에 처하기도 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주리고 목이 말라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 마저도 지쳐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순례 길에는 절망의 늪만이 아니라, 아볼루온과의 싸움이나 절망 거인, 믿음의 순교와 같은 영적 싸움들이 곳곳에 놓여있습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길을 잃은 것과 같은 심정에서 앞길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인생이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이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십시오.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까? 혹 지금 그런 일을 겪고 계십니까? 이런 일은 순례 여정의 현실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배우셨습니까? 배우고 계십니까? 이것이 우리의 질문입니다.

4. 인자하심1: 마침내 기도하게 만드는 고난(6,13,19,28).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런 고통과 큰 싸움을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한 가지 분명한 의도를 발견합니다. 6절입니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은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3절에서는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고 했고 19절과 28절에는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공통적으로 그 근심과 환난,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여기에 일단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많은 경우,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찾게 되고 부르짖게 되는 것은 그가 근심과 환난, 고통 중에 있을 때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것은 고통을 수반할 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단지 기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그가 비로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여정으로 들어가는 것이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단지 돈 벌고, 성공하고, 유명해지고, 업적을 남기는 것입니까? 우리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를 행복하고 만족하게 하는 것은 그런 개인적인 추구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누리는 행복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중요하고 가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본질적인 관계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여간 해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습니다. 너무나 능력 있는 존재로 만들어져서 일까요? 인간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위해서는 광야 사막 길에 서는 경험이 필요하고, 마치 착고에 묶여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는 경험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C.S.Lewis가 말했듯이, 고통이라는 메가폰으로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기 전에 언제나 하나님께서 고통이라는 메가폰으로 우리에게 소리를 지르시는 일이 먼저 일어납니다. 물론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너무나 많은 생각들을 듣고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고통 가운데서 우리의 그 시끄러운 소리들이 잠잠해질 때 우리는 메가폰으로 외치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을 비로소 듣습니다. “나와 같이 가자!”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말입니다.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이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순례여정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시려고 주시는 고통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증거인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첫번째 배우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5. 인자하심2: 목적지로 인도하시는 은혜(6b~7,14,20,29~30).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통에서 건지실 뿐 아니라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여기서 말한 거주할 성읍은 그들이 바라던 목적지를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인생은 마침내 목적지에 이르게 됩니다. 29~30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29~30).”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말씀을 통하여 얼마나 큰 평안함을 얻습니까? 그 험한 바다의 광풍을 지나 마침내 우리가 소원하던 항구로 인도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풍랑 속에서 그들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광야의 사막 길을 걷는 일이 없고, 흑암과 사망의 그늘 아래 앉는 일이 없으며,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의 문에 이르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풍랑을 만나지 않는 삶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렸으며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도리어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속에서도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에 도착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천로역정을 생각해보십시오. 크리스천은 천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환난과 수고를 감당해야만 했습니까? 또 크리스티아나와 일행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환난과 수고를 지난 후, 마침내 천성에 인도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8절에서 말한 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베푸신 기이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목적지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6. 인자하심3: 인생 중에 주신 선물, 교회
우리가 순례 길을 가는 동안에 깨닫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또 있습니다. 그것은 순례 길에 주신 교회입니다. 이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에게 믿음과 소망을 만나게 하셨고, 연약한 여성인 크리스티아나에게 자비심과 담대와 여러 사람의 동행하는 순례자들을 주셨던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순례 여정 중에 아름다움의 집에서, 기쁨의 산에서, 그리고 가이오의 집에서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누면서 기뻐합니다. 이들은 다 지역교회를 상징하는 그림들입니다. 지역교회는 하나님께서 순례 여정을 가는 중에 우리에게 천국의 교제를 맛보게 하시려고 주신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교회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교회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순례 길을 가는 사람들을 모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이 길을 서로 격려하며 갈 수 있도록 7년 전에 죠이선교교회를 세워주셨고 우리를 여기에 불러주셨습니다. 크리스티아나의 일행을 죽음의 강을 건너기까지 인도하여 주었던 담대와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셨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길을 인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각자의 모습대로 부르셔서 이 길을 함께 가며 교제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고, 서로 격려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시고,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소원의 항구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겪고 죽음의 강 앞에 있는 쁄라의 땅에 이른 순례자들의 평안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 중에는 연약한 자도 있고 강한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어다(8,15,21,31).”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7. 적용과 권면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정말 순례자입니까? 여러분은 멸망의 성을 떠나 천성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까? 여러분의 목적지는 정확합니까? 여러분은 성경이라는 지도를 잘 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 지도를 따라서 걸어가고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는 순례 여정을 시작하였으나 아직 좁은 문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계시고, 그곳을 지나 더 많은 길을 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가 참으로 순례 길을 출발한 분들이라면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몇 가지 권면을 드립니다.

A. 포기하지 마십시오.
앞서 말한대로, 많은 사람이 이 여정을 시작하지만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출발한 사람이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절망의 늪에서 바로 실망하고 돌아가버린 온순이라는 사람을 반면 교사로 삼으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B. 좁은 문으로 들어가 십자가를 대면해야만 합니다.
천로역정에는 좁은 길 옆의 담을 넘어 들어온 사람들, 허례(Formalist)와 위선(Hypocrisy)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허례와 위선과 같은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오는 것보다 쉽고 또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그렇게 해왔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들은 좁은 문을 통과해 온 사람들과 자기들이 아무 차이도 없고 자기들도 양심을 따라 잘 살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를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몇 년을 교회를 다녔든지, 여러분이 얼마나 양심에 따라서 살았든지,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을 볼 수 없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일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를 각성하고 자신의 영적 진상을 깨닫고 죄의 무게를 인식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거기서 회개와 믿음으로 죄사함의 은혜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는 자리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원을 참으로 그리고 계속적으로 열망하며, 하나님께 구원하시는 자비와 은혜를 구하십시오. 다른 길은 없습니다.

C. 영적 나태를 경계하십시오.
크리스천은 곤고산 언덕 아래서 발목에 쇠고랑을 차고 잠자던 세 사람, 천박(Simple), 나태(Sloth), 거만(Presumption)을 만납니다. 이들은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아무 염려도 없이 살아가는 영적 나태와 무지와 미련을 드러내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런 영적 나태를 조심하십시오.

D. 자비심 양(Mercy)과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십시오.
자비심 양은 크리스티아나처럼 초청장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녀에게는 영적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좀체 확신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크리스티아나와 동행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신다는 약속만을 믿고 순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좁은 문을 들어갔고 마지막까지 순례의 여정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악심을 버리고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결코 거절하지 않습니다.

E.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걸어가십시오.
영적 순례의 여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그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나타내 보이시는 여정입니다.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교회에 목회자를 세우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함으로써 인도하십니다. 크리스티아나의 일행에게 담대를 붙여주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 순례 길을 걸어가면서 목양을 잘 받으시는 순례자들이 되십시오.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인도할 수 있는 순례자들이 되십시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F. 그리스도를 주목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이 바라볼 분은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여러분의 순례 길의 모든 순간에 시야에서 그리스도를 놓치지 마십시오. 참된 목회자는 여러분의 눈을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만을 바라보십시오. 고난이 닥칠 때, 절망의 늪에 빠질 때, 여러분의 믿음이 식어가는 것 같을 때,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마귀는 마치 벽난로의 불을 끄려는 사람처럼, 여러분 안에 성령으로 붙여진 불을 끄기 위해서 끊임없이 물을 퍼부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된 신자의 가슴에 있는 성령의 불은 꺼지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을지언정 결코 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벽난로 뒤편에 서서 끊임없이 기름을 부어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분을 여러분의 믿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자, 이제 지난 7년 교회를 붙잡아 주셨고, 교회와 우리 인생에 베푸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기이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앞으로 우리의 순례 길에 교회를 통하여 베푸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 베푸실 기이한 일을 바라보십시다. 그리고 이 말씀과 권면들을 기억하면서 행복한 순례자들로 함께 걸어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