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A. 종교개혁기념특강 2017 - 마르틴 루터와 진정한 프로테스탄트 (3)

로마서 1:16-17 / 김형익 목사 / 교리강의 / 2017-11-12

말씀내용
마르틴 루터, 진정한 프로테스탄트 (롬 1:16~17)


1. 왜 우리는 종교개혁을 기념하는가?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당시 학자들의 관행대로 신학 토론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믿는 성경적 입장을 95개로 정리해서 대자보 형식으로 붙여놓은 1517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7년 10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였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늘 우리가 다루는 주제가 그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2. 종교개혁을 보는 시각의 차이
종교개혁은 역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건이다. 카톨릭이 이 사건을 보는 방식과 개신교회가 보는 방식은 정반대다. 종교개혁은 단지 개신교회의 조직적 출발 혹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에 분수령이 되는 사건 이상이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주신 부흥이라는 견지에서 살펴볼 것이다. 종교개혁은 복음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선포함으로써 교회가 다시 살아나게 된 사건이라는 관점이다.

3. 1517년 10월 31일에 무슨 일이 시작됐는가?: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
종교개혁은 루터 자신이나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루터가 붙여놓은 95개 신조를 본 사람들 중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루터를 ‘마지못해 나선 반역자’라고 불렀다. 로마 교황의 주목을 전혀 끌지도 못할 독일인 사제 한 사람이 교황과 거대한 중세 교회를 향해서 이런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는 루터와 교황을 비롯하여 아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고, 또 그 엄청난 결과 역시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본다. 그것을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칼 바르트가 자신이 개혁자로서 뜻밖의 출현을 하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과 같다. “캄캄한 밤중에 오래된 한 성당의 꼬불꼬불한 나선형의 종탑 층계를 기어 올라가는 사람과 같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가늠하려고 손을 뻗치다 보니 손에 밧줄이 하나 붙잡혔다. 그 순간 그는 댕그렁하는 종소리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4.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A. 번개 속에서의 헌신(1505.7.2)과 Erfurt 성 어거스틴 수도원 입회(1505.7.17):
i. “사랑하는 성 안나여, 제가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ii. 루터의 반항의 근원은 철저한 헌신이었다. 중세교회에 대한 반기는 교회가 정해 놓은 길을 따르려는 한 사람의 애틋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려고 한 후에야 그것이 불필요한 것을 깨달았고, 바울이 유대교의 골수분자로서 모든 의를 성취하려고 했기 때문에 유대교의 율법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B. 영적 아버지 슈타우피츠와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교수직(1511년 이후)
i. 거룩하신 분에 대한 공포와 첫 미사
“우리는 주님께 곧 살아계시며 참되시고 영원한 하나님께 바치옵니다.”
“나는 이 말을 읽으면서 완전히 멍청하게 겁을 집어먹었다. ‘내 혀가 뭐길래 감히 그 하늘의 왕께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인간들도 이 땅의 임금 앞에서는 모두 부들부들 떨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내가 누구인가? 감히 하늘의 왕께 눈과 손을 들어올리는 나는 누구인가? 그분 둘레에는 천사들이 옹위하고 있으며 그분의 지시 하나로 땅이 진동하는 판이다. 그런데 비천한 인간인 내가 ‘이걸 원합니다. 저걸 주세요.’하고 말해도 되는가? 티끌, 잿가루, 죄투성이인 내가 살아계시고 영원하며 참되신 하나님께 감히 입을 열다니’하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ii. 무슨 수를 써도 하나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다는 자각과 영적 불안
1. 고해의 실패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떤 때는 내리 6시간을 고해했다. 토해내지 않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기에, 그는 영혼을 샅샅이 뒤졌고 자신의 내면의 동기를 이 잡듯이 살폈다. 그는 7대죄(七罪宗: 교만, 탐심, 욕정, 화, 과식, 시기, 게으름)와 십계명을 훑어내려가면서 그렇게 했다. 그의 고해를 담당하는 사제는 “이보게,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화를 내시는 것이 아니라 자네가 하나님께 화가 나 있는 것 같군. 소망을 가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잊었나?” 라고 말했다고 알려진다.
슈타우피츠는 이런 루터에게, “여보게, 그리스도께 사죄를 받고 싶다면 뭐 좀 용서할 거리를 가지고 들어오라구. 이 따위 시시껄렁하고 자질구레한 죄가 아니라 어버이 살해니, 신성모독이니, 간음 같은 걸로 말야.”
루터에게 중요한 것은 죄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그게 모조리 토해졌느냐 였다. 문제는 자기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을 해냈느냐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해제도는 결국 특수한 죄목들을 다룰 수 있을 뿐, 인간의 본성 자체가 타락해 있다는 사실과 그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경험을 통해서 루터는 알게 된다. 용서를 받아야 하는 대상은 특수한 죄들이 아니라 인간 자신임을 루터는 깨달았다. 변화가 필요한 것은 특별한 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전부였다.

2. 고행과 면죄부
루터는 수도사로서 로마를 여행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거기서 그는 성 라테라노 성당의 28개 층계인 빌라도계단을 무릎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주기도문을 암송하고 계단에 입을 맞추면서 올라가 할아버지의 면죄를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그가 얻은 것은 “이게 사실이란 것을 누가 알지?”하는 회의였다.

iii. 슈타우피츠와의 섭리적 만남
어떤 위로도 통하지 않는 루터의 도덕적 진지함과 영적 예민함, 그리고 비상한 재능을 간파한 수도회의 주교 총대리인 슈타우피츠는 루터를 도울 길을 고민하다가 자신이 가르치던 교수직 자리를 제안하면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에서 설교와 성경 강의도 해보라고 권했다.
루터는 후일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슈타우피츠 박사를 통해서 나를 구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곳에 빠져서 결국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iv. 신학교수직과 성경연구 그리고 복음 발견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이어서 강의하게 된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것은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상황으로 말하면 수도사로서는 털끝만치도 흠잡을데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분에게 투덜대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바울을 붙잡고 늘어지면서, 그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있을까 계속 생각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곰곰이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죄 없는 것으로 여기시는 그 의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 성경 전체가 새로운 의미를 지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의’ 때문에 내 속은 증오로 차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게 되었고 더 큰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바울 서신의 이 대목이 나에게는 하늘로 통하는 하나의 문이었다……”

C. 들려진 진리의 깃발
복음을 발견한 이후, 루터의 삶은 철저한 성경 연구와 가르침, 설교, 저술로 불태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작정 당대의 로마 카톨릭의 관행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고 그 말씀에 맞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거침없는 비판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경교수로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진리의 깃발이 들려진다는 것은 원튼 원치않든 비진리의 세력과의 전쟁을 불가피하게 했다.

i. 면죄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의
당시 교회는 죄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선에 대해서는 협동적인 입장을 취했다. 죄는 각자 책임져야 하고 선과 공로는 공동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자기 구원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선을 행한 공로가 있는 성인들(마리아도)의 의의 공로는 미지불 상태의 사람들에게 양도될 수 있는 하나의 기금(treasury, fund)과 같았다. 이것을 ‘잉여 선행’이라고 하는데, 잉여 선행의 양도는 교회 특별히 교황?소위, 천국 열쇠를 위임받은 베드로의 후계자?을 통해서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자금 융통을 ‘면죄’라고 불렀다.
처음에 면죄부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을 위해서 고안되었다. 전쟁 중에는 고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돌아오면 일체의 고해하지 않은 죄를 한꺼번에 면죄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 다음 단계로는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가령, 물질로?도운 사람들에게도 같은 혜택이 돌아가게 했다. 점차 이 혜택의 범위는 넓어졌고 교회당, 병원, 다리, 공공건물을 짓기 위한 비용 모금의 방편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중세 교회 수입의 막대한 수원지가 되었다.
그러나 루터가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던 핵심은 결코 교회의 잘못된 치부 행위가 아니었다. 루터 이전 100년 동안도 이런 경제적 착취를 비난하던 말들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이것이 그저 치부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자비에 대한 신성모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너도 나도 발벗고 일어나게 되었다. 게다가 루터 자신은 처음에 이 논의를 학자들의 토론을 위해서 제안했지 결코 일반 대중을 선동할 뜻이 없었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ii. 성례: 모든 은혜는 사제직으로부터가 아니라 믿음으로 온다.
로마 교회에서 미사는 성육신과 십자가 죽으심의 반복으로 간주된다. 그리스도를 제물삼은 제사가 반복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드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핵심은 미사에 있다.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거룩한 변화를 일으킬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육신이 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이 기적을 수행하는 것은 사제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이것은 심지어 사제의 도덕성과 신앙과 무관하며, 떡을 받는 사람의 믿음과도 무관하다. 교황의 권위로부터 신품을 받은 사제라는 직위 자체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의 미사에 대한 견해는 유아세례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유아세례는 중세시대에 사회와 교회를 연결해주는 사회학적 성례의 역할을 하였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이 되고, 시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오직 사제의 직분으로부터 ‘자동으로’ 임하는 효력이었다. 루터는 이것에 반대하면서, “내가 면죄에 대해서는 잘못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여러 성례에 있어서 믿음이 필요하다는 점은 죽어도 취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결국 성례에 대한 루터의 비판은 로마교회의 근간이 되는 성직제도를 무너뜨리는 것이 되었고 이것이 로마교회로서는 참을 수 없는 문제가 된 것이다.

iii. 수도원 제도: 그리스도 안에 계급도, 헌신의 차이도 없다.
루터는 수도사 서약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사랑과 자유의 원리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수도사 서약의 기초는,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끝나지만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은 완전한 덕목을 갖추라는 권고를 지키도록 하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거짓된 가정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수도사복을 던져버리고 목숨을 걸고서 수녀들의 탈출을 돕기까지 한다. 그는 구출된 수녀 중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는 축복을 얻게 된다.

iv. 파문도 두렵지 않다.
루터는 비록 자기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가고 자신도 거기에서 발을 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깊이 들어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파문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했을 법 하지만, 결국 성경의 진리에 섬으로써 파문도 두렵지 않다고 선언하게 된다. “파문이란 금지 조치 때문에 이미 마귀에게 할당되지 않은 사람이 새롭게 마귀의 자식이 되지 않습니다. 영적인 교제를 갈라놓는 분은 하나님 뿐입니다. 우리는 파문상태에서 죽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판결이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저주받은 사람이 참으로 회개하면 여전히 구원받을 수 있으며 만약 그 판결이 부당하다면 그는 그대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D. 위기: 보름스(Worms)의회(1521, 38세)
시간이 흘러갈수록 루터의 소책자들이 온 유럽으로 퍼져가면서 로마교회에는 불리한 정세가 형성되고 있었다. 결국 루터 문제의 해결은 로마교회가 아니라 로마교회가 위임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보름스에서 의회를 개최하여 골치아픈 루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많은 제후 앞에 선 루터는 자기가 쓴 책들과 주장들을 철회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오랜 변론 뒤에 이렇게 말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철회할 수도 없으며 철회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서슬퍼런 황제의 권위 앞에서 자신의 목숨이 걸린 순간에, 그는 자기가 깨달은 복음의 진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루터의 언명은 루터에게 파문과 죽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이제 루터는 하나님 외에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E. 하나님의 시간표(1521~22)
하지만 루터 자신은 적극적으로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면에서 그를 보호해주었던 인물이 있었으니, 비텐베르크를 관할하는 삭소니의 선거후(왕과 같은) 프리드리히였다. 프리드리히는 비밀리에 루터를 납치하여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인도한다. 루터는 거기서 수염을 기르고 가명을 사용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잠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시간표에 의한 것이었다. 고성(古城) 바르트부르크에서 루터는 외로움, 적막함, 우울증, 불면증과 싸워야 했던 가장 힘든 시간 중 한 때를 보내야 했다. 마치 갈멜산의 싸움 뒤에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 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는 이 내적 싸움 속에서 12권의 책을 저술했고 무엇보다 신약성경의 독일어 번역을 완성했다. 그는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거의 10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은 여기서 루터를 보호하셨을 뿐 아니라, 개혁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결코 해낼 수 없었던 일, 독일어 성경번역을 하게 하셨다. 성경은 독일인들에게 모국어로 읽혀질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실 수 있게 되었다. 후에 루터는 구약성경의 번역까지 다 마치게 된다(1534).

F. 개혁의 방법: 기도와 말씀의 능력
i. 원치 않는 방향: 급진운동들의 출현
개혁의 중심지 비텐베르크로 돌아온 루터가 본 것은 과격한 방식으로 폭력과 강제가 동반된 개혁이 진행되는 슬픈 현실이었다. 그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이런 성급함과 횡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저는 기도와 설교 밖에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얼마나 많은 걸 이루셨나 보십시오. 말씀이 이 모든 일을 해낸 겁니다. 마음만 먹었더라면 나는 보름스를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었습니다마는…”

ii. 인쇄업과 문서 전쟁: 하나님의 섭리
분명히 루터가 사용한 개혁의 방법은 기도와 말씀 뿐이었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또 하나의 섭리적 도움이 있었다. 이것은 구텐베르그가 1450년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놀랍게 성장한 인쇄산업이었다. 인쇄업자들은 놀라운 속도로 루터가 쓰는 소책자들을 찍어날랐으며 이것은 날개가 달린 설교가 되어 유럽 전역으로 흘러들어갔던 것이다. 실제 종교개혁은 소논문의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종교개혁이 한창이던 1521년부터 1524년까지 4년동안 독일에서 발행된 소책자의 수는 이후 수백년 동안의 독일 역사에서 어느 4년 동안의 수보다 더 많았다.

G.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확신과 갈등
루터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마 교황이나 황제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그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던 마귀와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1527년 그의 고질적 우울증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은 죽어가는데, 자신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다. 루터를 괴롭힌 비난은 루터는 자기가 순교자가 되지 않고 많은 순교자들을 만든다는 조롱이었다. 루터의 우울증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특별히 자신에게 선하시다는 믿음을 놓치는데서 기인했다. 어쩌면 그의 전생애는 우울증에 대한 투쟁이자, 믿음을 위한 하나의 싸움이었다. 이런 약함은 늘 루터를 마귀의 공격에 노출하게 만들었다. 루터는 친구에게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지? 나도 모르겠어. 사탄이 내게 이렇게 횡포를 부린 적이 없으니까. 자신있게 말하건데 나는 지금껏 재물, 명예, 영광을 생각하고 추구한 적이 없네. 지금도 대중의 적대감 때문에 낙심하는 것은 아니라네. 사실 그들이 더 기승을 부릴수록 나는 힘이 솟구치지. 그러나 이 점, 자네가 놀랄지 모르지만 내 속에서 일어나는 절망의 파도는 그게 아무리 작다 하더라도 물리칠 힘이 없군. 그러기에 이런 종류의 두려움이 생기면 그게 아무리 작은 두려움이라 해도 다른 종류의 큰 두려움을 물리치고 말지. (하지만) 내가 깃발을 버리고 달아날까 염려하지는 말게.”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지낼 때, ‘너 혼자만 옳은거냐? 너 혼자만 현명한거냐? 지나간 수백년이 다 잘못이란 말이냐? 만약 네가 틀렸고 따라서 너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영원한 지옥으로 끌고 간다면 어떻게 할 셈이냐?”라는 말을 되뇌이곤 했다.
그는 많은 찬송시를 썼고 작곡도 하였는데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내 주는 강한 성이요’는 그가 우울증으로 가장 힘들어하던 1527년에 시편 46편을 묵상하면서 만든 찬송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아멘

5. 복음의 진리가 흐려지고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
지금까지 우리는 16세기 중세 교회의 모습과 어떻게 루터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개신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는가를 보았다. 우리가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교회는 그렇게 개혁되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개혁된 상태를 가지고 있는가? 개혁교회의 오랜 모토를 생각해보라.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중세말의 교회, 루터가 보았던 교회와 비슷하게 성경에서 일탈한 그래서 교회의 전통과 관습이 성경보다 더 힘있는 교회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목사들이 자신의 종교적 권한을 행사하고 부를 축적하는 교회들을 보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교인들은 진리에 무지하고 이생의 축복과 번영에 몰입되어 이런 비성경적 지도자들과 교회를 유지하는데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중세 로마교회의 면죄부 판매의 최고의 전도사는 테첼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동전이 헌금통 바닥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연옥에서는 영혼이 튀어오릅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면죄부가 존재하지 않는가? 물론 성인들의 잉여선행 같은 개념은 인정하지 않지만, 신종 면죄부는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에 보편적인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구원파적 믿음주의(easy believism)다. 면죄부가 치명적 해독을 끼친 것은 그것을 통해서 구원과 무관한 헛된 확신이 생기는 문제이다. 현대 교회가 가진 쉬운 구원의 확신, 쉽거나 무의미한 교회의 멤버십의 문제다. 죽은 부모님의 영혼을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준다는 효심 자극의 면죄부는 오늘날 가계에 흐르는 저주와 같은 인간의 약점에 호소하여 헌금을 부추기는 모든 행위와 연결된다.
현대판 면죄부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적어도 중세 교회에서 구원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였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던 것이 천국과 지옥의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모든 관심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의 번영을 구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로 오며, 교회는 그것을 약속함과 동시에 천국 구원도 보너스로 약속해주는 것 같이 느껴진다. 저 세상도 놓치지는 않아야겠지만, 이 세상은 더더욱 놓칠 수 없는 가치인 셈이다. 그래서 지고 못살고, 손해보고 못살고, 잃고는 못사는 교인들이 즐비하다. 교인들끼리의 소송은 비일비재하며, 교회는 시장이 되어버렸다. 교회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과 책망 그리고 교정과 변화를 받는 곳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클럽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마켓팅 전략이 들어와서 교회는 실용주의 철학의 온상이 되어버렸다. 실용주의가 복음의 진리를 대치한 것이다. 교회는 더 이상 진리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과 우리 주님의 새언약을 경험할 수 없는 격전장이 되어버렸다. 교회마저도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할 수만 있다면 양떼가 아니라 염소떼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교인은 목양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대상인 고객이 되어버렸다.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대신, 고객들이 다시 찾도록 감동어린 만족을 온갖 프로그램으로 제공해 주어야 하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미래의 목사가 될 적지 않은 신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설교자, 교인들을 향한 애정어린 관심과 사랑 안에서 진리로 양육하는 목회자로 준비되기 보다 교회 안의 각종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자로 자신을 연마하는데 열중한다. 교회는 말씀 사역자로서의 목사가 아니라 각종 프로그램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진행하는 PD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목사는 진정한 소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 외의 전문분야(specialty)가 없으면 청빙/취업 자체가 어려워졌다. 선교는 교회 성장의 방법론으로 전락해 버린 느낌도 든다. 복음은 없는데 선교는 하겠다고 하는 것은 정말 놀랄 기적이다. 선교를 빙자한 관광여행, 이루 입에 담을 수 없는 실태들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교회들에서 행해지기도 한다.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A. 진리에 관심 없는 교회여, 성경으로 돌아가라.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리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중세 시대에는 자기 말로 된 성경을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성경에 대한 무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면, 오늘날 어디에서나 성경을 구할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시대에 성경에 대한 무지는 아무런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여러분을 성경을 빙자하여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스스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이 가져온 말할 수 없는 효과였던 것이다.
루터 자신은 1533년 이런 글을 적었다. “나는 해마다 성경을 2번씩 읽어왔다. 성경을 크고 강한 나무, 성경 안에 기록된 말씀들을 작은 가지들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가지들에 무엇이 달려 있는지, 그리고 그 가지들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열망에 불타올라 모든 가지들을 두드렸다.”
반면에 오늘날 교인들은 쉽게 믿으려고 한다. 목사 설교 일주일에 한 번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전부라면 어떻게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온전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믿는 사람은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말씀은, 거듭나고 영생을 얻은 사람은 말씀에 대한 식욕이 생기고 말씀을 먹게 된다는 것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함이 없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짓되고 불안한 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감화가 없이 어떤 거룩한 변화가 우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온갖 프로그램을 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온갖 교회 봉사는 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교회가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루터의 말을 들어보라. “성경은 많이 길어 마시면 마실수록 더 목마르게 하는 이상한 샘물이다.”
능력을 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일,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 안에 회복되는 일을 구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기도의 제목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6. 진정한 프로테스탄트가 되라
개신교를 영어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한다. 개혁이 한창이던 1529년 신성로마제국 의회가 다시 슈파이어(Speyer)에서 열렸을 때, 그 결정사항은 개신교에 심각하게 불평등한 내용이었다. 개신교 지역의 카톨릭 교인은 자유가 보장되고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카톨릭 지역의 개신교인에게는 자유과 보호가 보장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이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공식적인 항의를 하였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 것도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하나님 앞에서 공적으로 항의하고 증거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Protest는 공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것이다. 프로테스탄트는 그렇게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과연 프로테스탄트라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위에 서있는 진정한 프로테스탄트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은 아무 것도 동의할 수 없다고 우리는 천명하고 삶에서 그 말의 댓가를 지불할 작정인가?
마르틴 루터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 그것이 프로테스탄트의 신앙과 삶이다. 성경의 진리,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루터가 보여준 용기, 세상 최고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용기는 어디서 나올 수 있겠는가? 진정한 프로테스탄트가 되기 위해서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모든 방법론에서 돌이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16세기에 이 복음의 진리로 교회를 소성케 하셨다면 오늘도 교회를 다시 소성케 하는 것은 오직 성경의 진리, 복음의 진리 뿐이다. 진정한 프로테스탄트들이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