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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하나님의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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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정 (2) - 성공보다 중요한 것, 하나님의 열정

출애굽기 33:18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06-12-05

말씀내용
성공보다 중요한 것 출 33:18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의 죄악된 행동을 볼 때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데, 그래도 네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니 내가 너의 삶에 성공을 주겠지만, 너와 함께 살지도, 가지도 못하겠다’고 하시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가장 큰 위기에 해당하는 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크신 은혜로 출애굽이라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백성들은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이후에 그들의 후손이 끊임없이 빠져들었던 우상숭배를 시작하게 된 이야기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경고로 시작되는데, 이것이 경고인지, 은혜로운 약속인지는 잘 분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 본문의 내용
A. 하나님의 경고(1~3절): “내가 함께 가진 않겠지만 성공은 보장하마”
유혹과 착각이 여기에 있다.
착각은 ‘모든 성공은 하나님이 함께 한 결과요, 축복’이라고 단정하는 태도이다. 항상 그렇지 않다. 아닌 경우가 꽤 많다. 조엘 어스틴의 책, <긍정의 힘>같은 것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신앙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책이다.
본문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혹은 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는 않아도 성공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미련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일들이.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은 종종 점검하신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상황은 그리 한가하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테스트하시는 상황은 아니었다.

B. 배경: 금송아지 숭배 사건(출 32)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는가? 32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모세는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랐다. 시간이 충분히(백성들이 생각하기에) 지났지만, 지도자 모세는 내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또 한 사람의 지도자인 아론에게 말했다.
출 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언제나 핑계는 있었다. 모세가 안 내려오니까! 그들이 요구한 것은 ‘자기들을 위한 신’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아론은 금고리를 가져오라고 백성들에게 명했고 송아지 형상을(이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보았던 형상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만들었고, 선포했다.
출 32:4하, 5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백성들은 그 앞에서 제사와 축제를 벌였다(6절).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이 백성을 진멸하겠고 모세에게 따로 큰 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하셨다(10절). 모세는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상기시켜드리면서 용서를 구했고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셨다(14절).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백성을 향하여 돌판을 던져 깨뜨렸다(19절).
모세의 명대로 레위 자손들을 통한 주도적으로 죄를 범한 사람들을 향한 동족 살상의 큰 살륙이 행해졌다(26~29절). 그날 3000명 가량이 죽었다.
그리고 이튿날 또 모세는 기도한다. 모세는 이미 하나님께서 진멸하시겠노라는 뜻을 돌이키신 것을 알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백성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나아가 구한다. 자기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 백성들의 용서를 구한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33:1 이하 말씀이다.

C. 하나님의 명령(4~6절): “단장품을 제하라”
하나님은 모두 단장품을 제하라는 말씀을 하시고(5절) 백성들은 겸비하게 말씀대로 순종하고 엎드린다(4절). 지금 단장품으로 자기를 꾸밀 때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자와 같이 서라는 말씀이다. 마치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 서듯이 말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단장품들이 있을 수 있다. 나를 수식해주는 많은 것들이 있다.
목사 김형익이 아니라 그냥 김형익이다. 아니 죄인 김형익이다.
그것이 명예가 되었든, 직위가 되었든, 직분이 되었든, 또는 경력이 되었든 이런 것들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서는데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서는 것이다. 그것이 부정적인 것들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전과자라 해도 그것은 세상에서 내게 붙혀준 이름일 뿐이다. 그냥 죄인 아무개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조차 우리는 세상에서 우리를 수식해주는 것들을 가지고 만나기가 얼마나 쉬운가? 하나님 앞에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그런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찬송가 349장의 가사는 이렇다:
나 주의 도움 받고자 주 예수님께 빕니다
그 구원 허락하시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큰 죄에 빠져 영 죽을 날 위해 피 흘렸으니
주 형상대로 빚으사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내 힘과 결심 약하여 늘 깨어지기 쉬우니
주 이름으로 구원해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내 주님 서신 발 앞에 나 꿇어 엎드렸으니
그 크신 역사 이루게 날 받으옵소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아멘

후렴은 ‘take me as I am, take me as I am.’이라고 구한다.
얼마나 우리는 이런 자세를 잃어버리고 사는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우리에게는 사람들의 눈이 더 커보이기 때문에, 단장품으로 자기를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눈 앞에서 판단받고 평가받는 ‘성공’이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가느냐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다.
백성들은 단장품을 제하였다.

D. 기도하는 모세와 백성들(7~11절)
하나님은 단장품을 제하면 내가 말하겠다고 하셨다(5절). 그래서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 나아간다.
모세가 진밖에 쳤던 한 텐트가 있었는데 그것을 회막이라고 불렀다고 7절이 설명한다. 그것은 성막을 짓기 전이었으므로 성막이 아니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한 만남의 천막(tent of meeting, 회막)이었다.
모세는 기도했다!
그는 기도하자고 혹은 기도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운동을 일으킬 때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 캠페인을 벌이지 않았다.
그는 그냥 기도하러 회막으로 나아갔다!
이것이 모세가 지도자로서 했던 전부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모세를 볼 수 있었고,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경험했던 것 같다(8절). 그래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을 볼 때 그들도 자기 장막문 앞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도했다고 한다(9~10절).
모세가 무슨 기도를 했는가?

E. 모세의 기도(12~18절):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옵소서.”
처음에 모세는 ‘함께 가주십시오’라고 구했다(12~13절).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달라는 중보기도였다. 하나님은 응답을 주셨다.
출 33:14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기도를 접는다. 보통 우리는 여기서 만족한다.
그러나 모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더 구했다. 더 큰 확신 을 모세는 구했다(15~16절). 하나님은 또 응답을 주셨다.
출 33:17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보통 여기까지 오는 신자들도 많지 않다. 즉각적인 응답으로 우리는 기도를 끝낸다.
그러나 모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아니 끝까지 나아가길 원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이다.
출 33:18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었다. 우리가 평생에 수많은 기도를 한다고 할지라도 이것을 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결정적이고, 더 고상한 기도를 할 수는 없다. 이것은 아무라도 그냥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다. 이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두가 다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알아야 한다.
이런 기도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는 있다.
모세는 그것을 구했다. 이것이 기도의 절정이다.

F. 하나님의 응답(19절):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보여주겠다.”
하나님은 응답을 주셨다. “내가 내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에 지나게 하겠다. 비록 내 영광을 보고 살 자가 없으나 내가 너를 반석 틈에 숨겨두고 내 손으로 덮어두고 네 앞에 지나면서 내 영광이 지날 때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출 33:19~23).
하나님은 영광을 보여달라는 말에 ‘내 모든 선한 형상’을 보여주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모든 선하심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너무나 아름다와서 우리의 삶을 다 빼앗겨 버릴만큼 매력적이고 압도적인 것이다.
모세는 그것을 보았다. 이제 모세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성공도 성취도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성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깨달았다.
모세의 삶은 엄밀하게 말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가나안 목전에서 성공과 성취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정말 성공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2. 교훈
A. 하나님 없는 성공은 무의미하다.
하나님 없이 성공할 생각처럼 어리석고 미련한 것은 세상에 없다. 개인의 삶에서도,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유혹에 넘어갈 수 있고 착각에 속을 수 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인생에 와서 거짓말을 속삭일 것이다. 하나님 없는 성공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이다.
모세는 하나님 없는 성공에 대하여 한 발자국도 내디딜 생각이 없었고 그러지 않았다.
여러분의 사업, 여러분의 사업보다 중요한 인생을 놓고 여러분이 구하는 가장 깊은,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 없는 성공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살아가는 실패를 당신은 원하는가? 분명히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가장 미련하고 비참한 실패한 인생이다.
죠이선교교회의 성공은 무엇인가?
죠이선교교회의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죠이선교교회의 사이즈 자체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매 주일, 아니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성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B.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면 치장물을 제거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영적 치장물들을 제거하고 살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며, 하나님에게 좋은 인상을 드릴 수 있는 것이 되지 못한다. 선지자 노릇한 것도, 주의 이름으로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것도 소용없다(마 7:22~23).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는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벌거벗은 자와 같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겸손함을 구하자.
하나님 앞에서 나를 보도록 구하자.
세상의 눈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눈 앞에 존귀하고 사랑스런 사람들을 발견해보자.

C. 기도는 운동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운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할 것이다. 기도하자고 떠벌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도할 것이다. 나는 목회자로서 기도가 얼마나 우리의 영혼에 중요한 것인지를 가르칠 것이며, 기도할 것이며, 기도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그러나 기도운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모임을 가질 수는 있지만, 기도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기도회의 성공을 바라는 프로그램으로서의 기도회는 없을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기도하는 사람을 낳을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생명의 전수 방식이다.

D. 더 큰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수준에서 경험한 은혜에 절대로, 절대로 만족하지 말라. 더 큰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은혜를 과거에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은혜는 다함이 없어서 그보다 더 큰 은혜를 하나님은 예비하고 계시다. 천국에 이르러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듯이 주님을 보게 된다 할지라도 거기서조차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토록 다함이 없는’(우리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고 있는 것인지 알고는 있을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더 큰 은혜를 사모하라. 지금 당신이 얻은 은혜에 절대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라.
어디까지 나아가야 하는가?

E.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구하는 것이 최고의 기도이다(요 17:24).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구하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과 오고 오는 세대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이렇게 구하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에게서 보게 되는 영광이 바로 아버지의 영광이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미리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께 직접 구했다. 영광을 보여달라고.
이것은 이 시대에 잊혀진 기도이다.
모세가 드렸던 기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거의 들어본 적도 없고, 알려고 해본 적도 없는지 모른다.
나는 이것이 두렵다.
하나님, 우리에게 모세의 기도를 가르쳐 주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기도여야 할지 모른다. 이제 내가 전하는 시리즈의 말씀은 바로 이 기도의 의미를 보다 깊게 우리 생각과 마음 속에 전달해주는 말씀이 될 것이다.

영광을 보여주옵소서라고 구하기 전에, 그 영광이 내게 성공보다 소중하고, 인생의 아니 영원의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아름답고 최고의 것임을 알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