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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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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2) - 지금이 구원의 때입니다

호세아 10:1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3-04-13

말씀내용
<지금이 구원의 때입니다> 호 10:12b


1. 지금 이 시간 일어날 구원을 기대하십시오.
우리가 지금 이 시간 보다 더 진지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요?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나와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왔던 예배이고, 어쩌면 여러분에게 그것은 더 이상 어떤 감동도 설레임도 주지 못하는 하나의 형식이 되어 왔을지도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보다 더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진지해질 수 있는 시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 이 시간에 말하는 사람은 저입니다만, 성경은 이것이 단지 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성경과 성령으로 증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설교라는 형식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시간에, 자기 인생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는 일들이 일어난 것은 교회 역사에 수없이 많은 증거들이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이 시간에 여러분이 들려지는 말씀 앞에서 자신을 투명하고 진지하게 돌아보고 겸손한 심령으로 은혜를 구한다면, 여러분 가운데 아직 회심하지 않은 분들이 지금부터 약 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구원을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그런 기대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에,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저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오늘과 같은 소위 전도설교의 범주에 들어가는 설교를 들을 때, 나는 예외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설교보다도 이 설교를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가 바로 나의 구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2.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의 회심 이야기
저는 오늘 예외적으로 찰스 스펄전의 회심에 관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함으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길지만 그 자신의 설명을 인용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두 곳에서의 인용을 합한 것입니다. 그가 15세였던 1849년 12월의 어느 주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눈이 많이 오던 주일 아침. 나는 아주 작은 감리교회의 예배당에 왔습니다. 그곳에는 열 너덧 명 정도가 앉아 있었고 그들은 아주 큰소리로 찬양을 하고 있었고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서인지 예배시간에 오시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매우 말라 보이는 한 남자가 설교를 하려고 단위에 섰습니다. 그는 다른 설교자들처럼 교육을 잘 받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사야 45장 22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들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저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다른 말이 전혀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이 본문 말씀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했습니다. 저는 그가 했던 말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나는 이 언덕에서 나의 영혼을 사망 가운데로 던지는 고뇌 속에 있도다. 나는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 달려있다. 나를 앙망하라! 나를 바라보라! 지금 이 말씀을 하고 계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을 앙망하는 것, 그것만이 당신이 해야 할 전부입니다. 어린 아이라도 그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거의 백치에 가까운 자라 할지라도 그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도,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눈을 들어 그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 말을 마치고 난 후 잠시 멈추더니 2층 좌석 아래 제가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곳에 앉아있는 젊은이는 참으로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가 그렇게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제 마음 상태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젊은이, 만일 당신이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당신을 위한 소망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당신의 죄를 깨끗이 씻을 가능성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는 초기 감리교도만이 할 수 있을 듯한 어조로 그는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앙망하십시오! 바라보십시오! 젊은이여! 지금 이 순간 그분을 앙망하십시오!” 그 때 나는 ‘구원의 길’을 보았습니다. 더 이상 바라 볼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제 영혼을 묶었던 쇠사슬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제가 죄에서 해방된 자유인이자 천국의 상속자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영접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습니다. 단순히 예수님을 바라 보는 것으로만 절망에서 건짐을 받은 것입니다. 내가 구세주를 발견하고 그의 사랑을 알게 되었던 그 행복한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였고 그 소중한 말씀은 나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했습니다. 그 날의 기쁨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뛰고 춤출 정도로 기뻤습니다. 아무리 열정적인 표현을 쓰더라도 그 순간의 기쁨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이후로부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많은 경험의 나날들이 지나갔지만 그 날에 느꼈던 환희만큼이나 충만한 위안을 느끼게 했던 것은 결코 없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뛰쳐나가 그 감리교 형제들과 함께 열광적으로 외쳐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나는 용서받았다. 나는 용서받았다. 오 한량없는 은총이여. 죄인이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의 영혼의 쇠사슬이 끊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이며 더러운 진흙과 끔직한 지옥으로부터 건져 올림을 받았고 나의 발은 단단한 바위 위에 서 있으며 나의 앞길도 탄탄히 다져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교회에 들어갔던 10:30과 12:30 사이에는 나에게 분명히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절망에서 일어났습니다. 너무도 기쁜 마음이 들어 나는 가족들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언가 위대한 일이 내게 일어났어요.' 이 집안의 장자가 구세주를 발견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들었을 때 그 날 우리 집은 온통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 놀랍고 감격스러운 일은, 깊이 쌓인 눈 위로 하염없이 더 많은 눈이 내리고 있던 그날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인의 절망의 상황을 먼저 보십시오.
이런 놀라운 구원의 일을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하셨습니까? 물론 체험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제가 묻는 것은 그런 일이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의 교회 생활에 대해서 묻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일이 여러분의 삶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저는 저의 견해를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아니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과 견해를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적이 없다면, 신명기 28장에 쓰여진 저주의 그 긴 긴 목록은 바로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고, 어느 정도의 재산을 모았고, 안정된 직업과 직장을 가지고 있으며, 원만한 사회 생활을 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자녀들이 훌륭하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은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저주 외에는 없습니다. 그 저주는 어떤 영향력 있는 인간의 저주가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셨고 만유를 심판하실 하나님의 저주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세상을 사는 동안 그런 저주를 인식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는 순간, 그 저주를 몸소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도무지 그런 하나님의 저주를 깨닫지 못하는 삶이 지속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도리어 저주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인생의 어떤 순간에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고, 세상 풍속을 좇고 마귀를 따르고 있는 자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들은 다 육체와 마음의 욕심을 따라서 살며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사람들입니다(엡 2:1~3).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은 자들이고, 그 마음의 정욕대로 행하는 결과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진 자들이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진 자들입니다(롬 1:21,24,28).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사형을 선고하셨다고 말합니다(롬 1:32). 이 세상의 법정에서도 사형을 선고 받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인데, 만유의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사형을 선고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인의 실존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지금 그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세가 말한 것을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시 90:11)?” 죄의 삯이 사망이고(롬 6:23), 사람에게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지만 그 후에는 심판이 따를 것이라고 성경은 선언합니다(히 9:27). 죽는 것으로 우리 인생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4. 묵은 땅, 당신의 마음을 기경하십시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기 위해서, 파종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땅을 갈아엎지 않고서 파종을 하는 것은 어리석고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선지자는 여러분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아무리 복된 복음의 씨가 뿌려진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 밭이 기경되어 있지 않다면, 여러분의 마음 밭이 묵은 땅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수고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 밭이 기경되어 있지 않다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네 가지 밭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이 뿌려집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오래도록 뿌려졌을 것입니다. 수십 년 혹은 수 년 동안 여러분에게 복음의 말씀이 뿌려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의 땅은 너무나 딱딱해서 씨가 흙 속으로 파고 들 수가 없습니다. 씨가 뿌려지는 즉시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고 맙니다. 사단이 들은 말씀을 다 빼앗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집니다.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반응하지만, 흙이 얇아서 씨가 제대로 심겨지지 못하여 싹이 나오는 듯 하다가는 곧 죽어버리고 맙니다. 어떤 씨들은 가시떨기에도 뿌려집니다. 복음의 말씀이 여기서는 가시들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질식하고 맙니다. 혹시 이것은 여러분의 마음의 상태를 설명해주는 말씀들은 아닙니까? 이 땅들이야말로 기경되어야 할 묵은 땅들이 아닙니까? 굳어진 땅을 갈아엎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밭에 있는 돌 뿌리들을 다 긁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거진 가시덤불을 다 걷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호세아 선지자가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한 말씀의 의미입니다. 묵은 땅을 기경하지 않고서야, 딱딱하게 굳어버린 땅에 복음의 씨를 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돌 뿌리들을 긁어내고 가시덤불을 거두어내지 않는다면 복음의 말씀을 듣는 것이 무슨 선한 결과를 낼 수 있겠습니까? 그날 그 설교자가 찰스 스펄전을 지적하여 말씀을 할 때, 스펄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경된 마음입니다. 여기에 뿌려진 하나님의 복음의 씨는 그의 심령 깊은 곳에 심겨졌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그 복음의 열매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맺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지자가 말하는, 묵은 땅인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기경하는 일에 얼마나 관심이 있었습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외모를 가꾸고, 여러분의 성공적 인생을 위해서 일과 사업과 가정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비교할 때 여러분의 마음을 기경하는 일에 정녕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스펄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을 경작하지 않는다면 사단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그 마음을 경작할 것입니다.” 옳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동의가 되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을 경작하지 않고 있던 그 긴긴 세월 동안, 여러분의 부드러웠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해 졌으며, 얼마나 돌짝 밭이 되었으며 얼마나 가시덤불이 가득한 아무 것도 심지 못한 땅이 되었는지를 말입니다.

5. 마음을 경작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묵은 땅이 되어버린 우리의 마음을 경작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아무리 여러분의 마음이 굳은 상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뭔가를 깨닫게 하시고 죄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시고 혹은 여러분의 심령이 찔림을 받게 하시고 하나님을 정말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묵은 땅을 기경하시겠다고 찾아오시는 시간들입니다. 그때에는 여러분이 의지를 발동하여 선택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 한 가닥 은혜의 끈을 붙잡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인도하심을 따르든지 아니면 그것을 태만히 여겨 성령님을 떠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한 가닥 빛을, 은혜의 끈을 내려주실 때 그것을 여러분은 굳게 잡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쟁기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이 쟁기가 없이 어떻게 그 굳은 땅을 기경하실 참입니까? 이런 마음의 찔림이나 감동이 있을 때 그것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전심으로 구하셔야 합니다. 그 쟁기를 굳게 잡으십시오. 그 깨어난 양심이 다시 잠들게 하지 말고, 부드러워진 의지를 다시 굳어지게 하지 마십시오. 이것들이 더욱 더 커지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삶에서 죄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끊어내십시오. 불신앙적인 모든 환경을 잘라내십시오. 지난 주에 말씀 드린 대로, 주어진 모든 은혜의 방편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교회의 모든 공적 예배에 최선을 다해 참석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교제에 참여하십시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의 묵은 마음을 능히 기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호세아 선지자의 지적에 동의하신다면 지금 이렇게 구하십시오. “제 마음이 묵은 땅이고, 길가요, 돌밭이며 가시덤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것들을 다 긁어내고, 걷어내며 갈아 엎어 버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의 밭을 갈아 엎어주시옵소서. 복음의 씨가 뿌려지기에 합당한 밭,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결실할 수 있는 밭으로 만들어주시옵소서.”

6. ‘그렇다면’ 구원은 당신에게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한 후, 바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선지자는 ‘나중에 검토해 본 후에’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네 죄값을 네가 다 치르게 한 후에’라고 말씀하지도 않았습니다. ‘네 말을 네가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보고 나서’라고 말씀하지도 않았습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움의 기준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는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합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비처럼’ 내리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어주실 은혜와 축복을 기다리지 못하고 한 순간이라도 더 빨리 우리의 첫 번째 믿음의 반응을 보시고 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복음의 교리가 가르쳐주는 바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을 다 보시고 난 후에,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첫 번째 순종인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바로 그 즉시 성령을 주시고, 우리가 영원히 누릴 그 모든 복을 미리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이 곧’이라는 이 말 보다 더 은혜로운 말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로우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쯤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날이 오겠지 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그런 막연함 속에서 여러분의 심령이 점점 더 굳어져가고 묵은 땅이 되어 가는 것은 혹시 아닙니까? 언제까지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막연한 희망 속에서 여러분은 늙어갈 것이고, 병들게 될 것이고, 때로는 죽음의 순간을 맞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막연한 미래의 날에 우리의 귀중한 영혼을 걸고 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의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라는 말에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묵은 땅인 마음을 인정하고, 기경하기를 정녕 원하고, 주님 앞에 그 은혜를 간절히 구한다면, 이것이 ‘지금’ 여러분의 정직한 마음의 상태라면, 하나님을 대신하여 분명하게 말씀 드립니다. 구원은 여러분에게서 결코 멀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은혜는 선지자가 말한 대로,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그날은 막연한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구원의 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썼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6~10).”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시간에, 오늘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묵은 심령에 하신 모든 말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정녕 믿고 그렇기에 여러분의 입술로 예수를 여러분의 주라고 시인한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고 그 구원의 사건이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구원이 가깝다는 사실을 실감하실 수 있도록 제가 어떤 한 사람의 회심 이야기를 더 소개하지요. 제가 세례를 베풀기 전에 수세자에게 묻는 다섯 가지 질문은 이러합니다.
1.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긍휼이 아니면 소망이 없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합니까?
2. 당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들의 구주라고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복음에 제시된 것처럼,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만을 의지합니까?
3. 당신은 이제, 겸손히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답게 살기로 노력할 것을 결심하며 약속합니까?
4. 당신은 여러분의 최선을 다해서 교회의 예배와 사역을 위해 교회를 받들기로 약속합니까?
5. 당신은 교회의 치리와 권징에 복종하며, 교회의 순결과 평화를 도모하기로 약속합니까?

저는 만일 이 질문들이 진심으로 믿어지고 고백할 수 있다면 이미 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며, 모든 죄의 사함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구원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정말 뜻밖의 반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질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저는 왜 울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 질문들 하나 하나가 믿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분명하게 이것들을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순간에 그는 이 모든 질문들이 믿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는 그의 회심이 참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약간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마는, 제가 여기서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여러분에게서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선지자가 말씀한대로,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입니다. 지금이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내려주시는’ 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말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7.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능숙하지 않은 설교자를 통해서 전해진 이사야 45:22의 말씀을 사용하여 스펄전을 구원하셨습니다.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왜 스펄전만이겠습니까? 왜 여러분은 아닙니까? 그분만을 앙망하십시오. 그분만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시고, 여러분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을 다 아시며 용서할 채비를 다 갖추고 계시는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탕자가 했던 것처럼 그분께로 돌이키십시오. 그분의 자비와 무한한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실 만큼 우리의 죄를 미워하셨고 그 죄를 공의롭게 심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긍휼이 아니면 소망이 없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들의 구주라고 믿으며, 복음에 제시된 대로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만을 의지한다고 하나님께 말하십시오. 그리고 겸손히 성령의 은혜를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답게 살기를 원한다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오늘 밤, 아니 오늘 오후 홀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 시간까지도 만일 여러분이 아직 구원의 은혜를 입지 못했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약속하신 대로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발견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약속하신 대로 공의를 비처럼 내려주시기까지, 그런 은혜를 입으시기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야곱이 말한 것처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며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께 쏟아내십시오.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에게 구원은 멀지 않습니다.

[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18-09-22 12:20:05 설교게시판에서 복사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