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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언약과 성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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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성례 2016 (2) -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

갈라디아서 3:26-29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09-18

말씀내용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세례> 갈 3:26~29


우리는 세례가 무너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세례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지요. 하바드 대학의 입학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무슨 약속이나 한 듯이 뇌물을 받았든지 어떤 이유로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자격 없는 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1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해보지요. 물론 자격을 갖춘 학생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많은 학생들은 무자격자였습니다. 그런 경우를 상정할 때, 더 이상 하버드 대학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고, 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의 영광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가르치는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전체적인 수준은 일반 학교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하락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일어나기 힘든 일입니다마는, 이런 일이 지난 세월 동안에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표요, 인입니다. 세례가 무너지면 교회는 무너집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가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는데도 주님께서 명하신 규례를 어기면서까지 세례를 베푼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성례인 세례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동시에 이와 같은 부정적 질문을 다룰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1.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마 3:13~15; 막 10:38; 눅 12:50)
먼저 우리가 주목하려고 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때 요한은 주님께 세례 베풀기를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주님께서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하시자 요한은 허락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마 3:15).
세례 요한의 세례와 관련해서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구약 성경 어디에서 세례를 명령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 대답은 ‘없다’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할례는 명하셨으나 세례는 명하신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어떤 근거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이며,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까요?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는 의식이 신구약 중간기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교의 완전한 개종자로 인정되려면 그는 신앙고백(유대교의 율법을 받아들임)을 하고, 할례를 받고 이방인의 부정을 씻기 위해 정결 의식인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세례는 유대인이 아닌 개종하는 이방인들이 받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받게 명했으니 이것은 매우 도발적인 행위였습니다. “너희도 태생적 유대인이기는 하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이방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선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죄 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이것은 주님 자신이 요한의 세례가 주는 메시지대로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고 선포하시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신 말씀은 당신께서 구원하실 자기 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해서 그들과 같은 죄인의 자리에 서 계심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일이고, 이 세례 사건은 앞으로 오게 될 십자가 사건을 그대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주님께서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려고 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일찍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주님은 ‘받을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물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암시하는 말씀이라는 것이 문맥상 너무나 확실합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세례와 동일시하십니다. 주님은 왜 십자가의 죽음을 세례라고 표현하십니까? 지난 설교에서 우리는 성례가 표라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새 언약 아래서 세례를 명하시는데, 그것은 옛 언약 아래의 표인 할례와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례는 남성 성기의 끝 부분을 잘라내는(cut off) 의식입니다. 여기서 ‘잘라낸다’는 표현은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심판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하나님께 잘려나가야 하는 존재라는 고백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받을 세례라는 표현으로 십자가 위에서 율법의 저주와 죄의 형벌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져 나가는 심판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할례로부터 이어지는 세례의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상입니다. 세례는 죄에 대한 심판의 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눅 12:50).

2. 세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표(27; 롬 6:3~4)
이런 맥락에서 성례로서 신자가 받는 세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모든 일에 우리가 연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3~4).”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의 장사 지냄 속에서 장사 지낸 바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부활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나는 죄책을 지고 형벌을 받아야 하며, 율법의 저주 아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하나님에게서 잘려나가야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내가 받을 세례를 십자가에서 받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알고 인정하기에 주님께서 명하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일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 27절에서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좀 어색해 보이지만, 헬라어를 직역한 것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baptized into Christ 즉, ‘그리스도 안으로 세례를 받는다’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감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물세례라는 형식을 통해서 ‘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자신과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세례는 단순히 심판의 표만이 아니라 생명의 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고, 신자는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죽음과 생명에서 연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순히 교회에 가입하는 통과의례가 아니라, 모든 신자의 인생에 있어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로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3. 누가 세례를 받는가(26~27; 요 1:12)?
그렇다면 누가 이 영광스러운 세례를 받습니까? 27절은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첫째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한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이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믿음이 생기거나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라고 말씀하신 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다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는 단순히 외적 의식이 아닙니다.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영적으로 깨끗하게 죄 씻음을 받았다는 내적인 사실을 표현하고 밖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세례는 입양 증명서와 같은 것입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다,” “너는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다”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미국 시민권을 얻는 사람이 선서 절차를 통해서 시민권을 법적으로 받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의식이 중요한 만큼, 준비와 자격 조건이 분명하게 요구됩니다. 세례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할 때, 여기에도 분명한 자격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제 교회 나오신 지 1년도 넘었으니 세례를 받으시지요?’하는 권유를 통해서 세례를 받거나, 군대에서 초코파이로 신병들을 유혹해서 수세자의 수를 늘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의 타락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일일 것입니다. 결혼이 타락하면 결혼식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여길 것이고, 인생에서 몇 번이라도 결혼식을 올리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날 텐데 교회가 바로 그런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자기 인생을 거는 결혼을 아무나 하고 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1년 사귀었으니 결혼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면 이 사람이 나와 평생을 함께 부부로서 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살피고 또 살필 것입니다. 서로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식은 너무나 기다리고 바라는 영광스럽고 즐겁고 행복하고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순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형식적으로 결혼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약속도, 실재도 없는 공허한 의식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이 오늘날 교회의 세례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 비극입니다. 세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그리스도와 깊은 사랑에 빠진 사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세례는 결코 공허한 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 최고의 영광스러운 순간이며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27~28; 고전 12:12~13):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다.
27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을 말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신분을 누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종의 옷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의 옷을 입은 것이고, 더럽혀진 음녀의 옷이 아니라 순결한 신부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신분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들은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은 또 하나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사람들을 분리하는 장벽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할 때, 그것은 신자들이 한 성령으로 지어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됩니다. 28절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역사상 모든 사회에는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나누는 기준들이 존재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같은 혈통의 장벽, 종과 자유인 같은 물질의 소유에 따른 사회 경제적 장벽, 그리고 성의 장벽들이 있습니다. 역사상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도 도무지 하나가 될 수 없는 장벽을 둔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사도는 선언합니다. 이 말은 본래 사람이 가진 정체성이나 기질이나 독특성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또 이 말은 ‘하나가 되라’는 명령이나 권고가 아닙니다. 이 말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 곧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에게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고린도전서 12장 12~13절을 봅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여기서도 바울 사도는 ‘세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지요. 이 구절은 성령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신자들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시고 한 몸, 곧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이 성령님의 내적 역사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이전에 자기들의 정체성을 말해주던 혈통이나 모든 신분을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한 성령을 마신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정하신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례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 안에서 성령님께서 행하신 일,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시는 이 일을 외적으로 드러내는 표와 인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단순히 사람이 행하는 의식을 넘어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성령의 은혜를 베푸시는 성례입니다. 형식적인 유니폼을 하나 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말처럼 우리의 전 존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바뀐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리스도와 공동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이전의 모든 차별과 분리의 장벽은 다 무너졌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이 민족과 화해하고, 원수가 입을 맞추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의 근본적인 차이이고 그 정점에는 세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각종 사회적 구분과 장벽들에 의해서 갈라지고 나누어진 세상을 향한 강력한 증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출발합니까? 세례가 그 출발점입니다.

5. 하나님의 인침: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28~29).”
사도는 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하나 더 말합니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은 장차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을 받게 될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언약이 그들의 것이 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례는 세례받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치는 행위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속한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나를 그리스도의 손으로부터 빼앗을 수 없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이것뿐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은 신자는 세례라는 표를 통해서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나님에게서 끊어지는 심판의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고 인치시는 일이 세례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의식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 없는 연약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주시려고 표와 인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마귀의 강력한 역사가 자신을 엄습한다고 느꼈을 때 종종 “나는 세례 받았다!”고 크게 외침으로써 마귀를 대적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는 세례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는 “나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넘보느냐?”고 외쳤던 셈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이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알지도 못하고 누릴 수도 없는 은혜입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강력한 은혜인 것입니다.

6. 세례의 영광!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많은 약속들을 봅니다.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신다는 약속과 함께 그 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언약을 세우시면서 그 표로 할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실 때에도 그 구원의 표로 유월절을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속죄일의 규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염소 두 마리를 준비하여 한 마리는 제단에서 잡아 그 피를 지성소의 속죄소 위에 뿌리게 했고, 한 마리는 광야로 끌고 가서 그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멀리 사라지게 만듦으로써 죄 용서에 대한 표를 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백성들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라는 말씀을 가슴에 새겼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표는 중요합니다. 표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신랑과 신부가 서약 후에 교환하는 반지는 서로에게 약속을 생각하게 해주는 표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자는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고 그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표를 얻습니다. 세례로써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모든 사람들은 다 한 성령을 마신 사람들이요, 그 성령님께서는 이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만드십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영광과 비교할 수 있는 영광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이 세례의 영광입니다. 오늘날 세례의 영광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세례의 영광이 무너진 교회 안에는 인간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세례가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진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명하신 성례로서의 세례를 온전히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세례의 의미와 본질을 더욱 깊이 알게 하시고 세례를 받은 신자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그 은혜와 영광을 더욱 누리게 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답게 거룩하게 살아가십시오. 언제나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세례를 아직 받지 않으셨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모인 순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그러므로 세례 받기를 사모하십시오. 세례를 통해서 여러분은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며, 그리스도의 몸의 존귀한 지체가 됩니다. 세상에 이보다 영광스러운 것, 영광스러운 순간은 없습니다. 이 일은 여러분에게 일어나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명하신 세례를 받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죄책을 지고 죄의 형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며,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으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도 없는 존재임을 알고 두려워 떨어야 마땅합니다. 이 세상에서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더 두려운 사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복된 영광을 얻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하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회개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렇게 구하고 찾으며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거절하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으니(요 6:37) 그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십시오.
한 가지 더 권면하고자 합니다. 세례를 받았으나 참된 믿음과 고백이 없이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참된 회심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참 믿음으로 세례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표가 되게 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그것이 아니면, 여러분이 받은 세례는 아무 의미도 없는,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무시하는 죄악이 될 것입니다. 오, 참으로 세례 받아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영광에 이르게 해주시도록 참된 믿음을 구하시고 그 믿음으로 응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결코 그렇게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거절하시거나 그들을 내쫓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은혜를 구하는 분들은 실로 복된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