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Home > 설교말씀 > 언약과 성례 2014 (3) -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리는 성찬

주제설교 - 언약과 성례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언약과 성례 2014 (3) -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리는 성찬

요한복음 14:18-20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4-11-30

말씀내용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리는 성찬> 요 14:18~20


우리는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례의 의미를 오늘 세 번째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례가 언약의 맥락에서 이해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상고했습니다. 세례와 성찬으로 대표되는 성례는 주님께서 갑자기 뚝 떨어뜨려주신 새로운 제도가 아닙니다. 세례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할례와 연속성을 가지고, 성찬은 어린양의 피가 표적이 되는 유월절 식사와 연속성을 가진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이 점에서 세례와 성찬은 은혜 언약의 표요, 인이라고 했습니다. 이 자체는 하나의 표적이고 인으로써 실재를 가리키고 있으며 그 실재는 바로 구속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례와 성찬은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우리 시선과 마음을 그리스도께 향하게 하고, 그리스도를 붙들게 하고 그리스도와 연합됨을 깊이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깊이 가슴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오늘과 다음 주일에 우리는 두 번에 걸쳐 성찬에 관한 말씀을 좀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주님은 떠나셨지만 약속하셨다(요 14:18~20).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밤에 제자들과 함께 다락방에 모여 유월절 식사를 나누신 주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께서 떠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 요한복음 14장의 배경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거의 알아듣지 못합니다. 16절에서 주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어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고 다시 오실 것인데 그때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알 것이라고 하십니다. 비록 주님은 떠나시지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이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제자들은 자신들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은 그들 안에 계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몸으로는 떠나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으시고 부활하시지만, 40일을 지나면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심으로써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 옆에 그들과 함께 계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데, 그들 곁이 아니라 그들 안에 오사 계속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나타냅니다. 신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입니다(롬 6:4). 주님은 몸으로는 제자들을 떠나셨기에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행 7:55,56; 롬 8:34; 골 3:1; 히 1:3; 8:1; 10:12; 벧전 3:22).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보혜사 성령 안에서 또한 신자들과 연합하여 신자들 안에 거하시고,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합니다. 주님은 그래서 그 저녁에 약속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 약속을 그들이 붙잡을 수 있고, 약속하신 바 그리스도의 현존을 누릴 수 있는지를 성찬을 제정하시고 그것을 주님 오실 때까지 지켜 행하라고 하심으로써 확실하게 인쳐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찬과 주님이 신자 안에,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약속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보내시마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과 깊이 관계가 있습니다.

2. 왜 주님은 성찬을 제정하셨는가?
주님께서 그 저녁에 성찬을 제정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왜 우리에게 성찬을 행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A. 과거: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표
주님께서 명시하셨듯이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가장 우선되는 이유는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떡을 떼어주시면서 그리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4,25). 주님의 무엇을 기념합니까?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말씀대로,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성찬에서 받는 떡은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찢기신 주님의 몸을 의미하고,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서 흘리신 주님의 피를 의미합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모두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표입니다. 이것은 과거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구속의 성취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B. 미래: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표와 인
하지만 성찬에는 미래 시제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6절을 다시 보지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가 오실 때까지’라는 말은 성찬을 받는 사람들이 가지는 장래의 소망을 보여줍니다. 성찬은 주님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참여하게 될 어린양의 혼인 잔치의 리허설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자들이 그 날의 영광의 잔치에 어린양의 신부로서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의 축제에 참여할 것을 바라보면서 신자들은 성찬을 받습니다.
C. 현재: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림
그러나 제가 오늘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찬의 현재 시제입니다. 성찬은 과거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념하고 장래에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영광의 날을 바라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찬을 받는 신자들이 현재적으로 누리는 영광스러운 실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신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그것은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반복적으로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을 누리지 않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로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연합한 은혜를 경험적으로 누립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오늘날 많이 무시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본대로, 주님은 몸으로는 떠나셨지만, 성령 안에서 신자들 안에 거하시고, 신자들이 그 안에 거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찬을 통해서 신자들은 그 연합을 가장 깊이 누리고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얻은 칭의와 성화라는 은혜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얻게 되는 이중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누리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성찬은 단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칭의와 성화의 은혜를 누린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찬을 통해서 신자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현재적 유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자체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사실상 성찬을 통해서 약속되었고 보장된 은혜를 누리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가리키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영적으로 그러나 실제적으로 신자에게 오셔서 교제하시고 연합을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3. 어떻게 성찬을 통해서 성도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리는가?
성찬의 현재 즉, 성도가 성찬을 통해서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신비에 속하는 문제이고 교회사적으로도 심각한 논쟁을 겪은 주제입니다. 논쟁이 되었다는 말은 그만큼 이 주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그러하기에 몰라도 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알기를 힘써야 하는 주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하듯이, 주님은 분명히 몸으로는 제자들을 떠나셨고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주님은 신자에게 다시 오셨고 그들과 함께, 더 정확하게는 그들 안에, 그리고 그들이 주님 안에 거하십니다. 성찬은 정확하게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자의 존재를 가장 결정적으로 표현하고 경험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성육신을 통하여 완전한 사람이 되셨으나 또한 언제나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은 혼합되거나 섞이지 않고 분리되지 않으면서 완전히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 중요한 신학적 명제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사에는 이와 관련해서 두 개의 이단이 일어났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을 완전히 혼합시켜버림으로써 오직 하나의 본성만 있다고 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완전히 분리시켜서 이해하는 입장인데, 전자를 단성론이라고 하고 후자를 양성론이라고 부릅니다. 이 두 입장은 교회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는데,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두 본성인 인성과 신성은 혼합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으면서 결합되어 있는 것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과도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비의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결합되어 있는 이 두 본성은 구분은 가능한데, 가령, 그리스도의 신성은 신성의 편재성, 전지성을 가지고 동시에 여기 저기 어디에나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은 인성의 특질상 한곳인 하늘, 곧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입니다. 가령,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을 때, 주님의 인성으로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24:36). 신성으로는 전지하시지만 인성으로는 모른다고 말씀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복잡한 주제를 왜 다루는가 하면, 성찬에서 신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 교리가 중요한 전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는 하늘에 계십니다. 하지만 그 신성으로는 성령 안에서 성찬에 실제로 현존하십니다. 우리는 성찬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할 때,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현존하심에도 불구하고 나뉘어질 수 없으신 온전한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이 도처에 동시에 존재하실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성과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신성이 성찬을 통하여 성도를 만나러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할 때, 그것은 나뉘어진 그리스도가 아니라 두 본성을 지니신 그리스도 자신이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신비에 속한 일입니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가 성찬을 받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우리의 성화의 삶에서의 실패를 위로하시고 거룩을 도우시기 위해서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시고 만나주시고 그 연합을 깊게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이시기 위해서 잡히시기 전에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친히 명령하신 것이 바로 이 성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광야에서 떡을 먹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요 6:55~56).” 비록 이 본문은 성찬을 제정하시는 것과는 무관한 말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을 통하여 얻는 유익의 실재가 무엇인지를 매우 정확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특별한 방식으로 누리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영적인 연합이고 관념이 아닌 실재인 것입니다. 반드시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실재가 아니라, 바로 이 영적으로 신자가 누리게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 역시 실재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성찬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는 수단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신자는 이미 세례로 그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합의 유익을 성찬을 통해서 누리게 되고, 그 연합 자체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성찬을 통해서 가장 큰 은혜와 영적 위로와 힘과 확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누리는 것에 대해서 19세기 미국의 신학자 존 네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가졌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능가하는 훨씬 더 인격적이고 깊은 관계다. 이것은 단순히 법정적 개념 이상으로서, 성령님께서 일으키시는 실제적이고 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재다.” 저는 주님께서 그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제정하여 주신 이 성찬을 통해서 의도하셨고 약속하신 이 모든 축복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례와 함께 주님께서 제정하신 성례인 성찬이 얼마나 중요한 은혜의 수단인지를 우리가 알게 되기를 바라고, 믿는 자들이 성찬을 받을 때 큰 은혜를 기대하고 준비하고 간구하며 성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