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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에서 확신으로 32 - 하나님 중심적 예배 (12) - 예배는 시작입니다

고린도후서 13:13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4-01-19

말씀내용
<예배는 시작입니다> 고후 13:13



1. 축도는 파송을 의미한다.
오늘 우리는 예배의 마지막 순서인 축복기도, 즉 축도에 대해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축도는 왜 예배 중에 행해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예배는 축도로 마치는 것일까요? 축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배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축도가 끝나기 전에 나가야 빨리 주차장에서 차를 뺄 수 있고, 불편하게 인사를 청하는 사람들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축도를 시작하려고 하면 이미 일어서서 예배당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축도를 하려고 하면 이제 점심 봉사를 한다든지 교회에서 이런 저런 봉사를 하시는 분들의 마음은 이미 사역으로 가게 되고 축도를 시작하자 마자 나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도를 마치고 나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면서 예배 장소를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축도가 예배 의식을 마치는 순서인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축도는 의식으로서의 예배를 마치는 순서이자, 동시에 삶의 예배 속으로 들어가는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축도는 굳이 비교하자면 졸업식이 가지는 의미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졸업이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축도는 졸업 이상입니다. 축도는 의식으로서의 예배와 삶으로의 예배를 절대적으로 연결합니다. 축도는 이제 교회로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며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도록 사람들에게 성 삼위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파송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성 삼위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이제 세상으로 나가라는 파송입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예배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예배에서 다시 확인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기 백성들을 그냥 내보내지 않으시고 언약적 축복을 약속하심으로써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2. 선교사 파송 예배
선교사 파송 예배에 참석해 보셨습니까? 그것은 선교사 자신에게는 매우 비장한 순간이고, 교인들에게는 사랑하는 친구를 온 마음으로 축복하며 선교지로 내보내는 큰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1991년 7월 8일은 아내와 제가 80일이 된 인성이와 함께 인도네시아 주재 선교사로 파송받는 예배가 있었던 날입니다. 참석한 분들은 선교사로 파송받는 저희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었고, 저희는 저희를 보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기를 각오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이런 특별한 예배가 물론 있지만, 우리가 드리는 매 주일의 예배도 사실상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파송하시는 선교사 파송 예배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백성들을 선교사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방 땅으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보내시고 우리는 보냄을 받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 그대로 입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특정한 사람들, 선교사들만을 대상으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게 되는 사도들에게 이 말씀을 하심으로써 주님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보냄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사실상, 매 주일의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보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세상 속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당신은 지금 선교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부여 받습니다. 오래도록 우리 교회가 새벽기도 장소로 사용했던 락빌에 있는 The First Baptist Church of Rockville 에서 아침에 기도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붙여놓은 팻말을 수년간 아침마다 보았습니다. “You are now entering the mission field.” 또 어떤 미국 교회에서는 목사님께서 예배를 마치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고 합니다. “예배는 마쳤습니다. 이제 섬김이 시작됩니다(The worship has ended, now the service begins).” 축도는 사실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3. 성 삼위 하나님의 축복이면 충분하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일반적으로 많은 목사님들이 축도를 하실 때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사용합니다. 반드시 이 구절을 가지고 축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구절들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구절은 특별히 축도로서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예배는 예배의 대상이신 성 삼위 하나님을 인식함으로써 그리고 그분을 송축함으로써 시작합니다. 그것이 보통 송영입니다. 예배를 마치는 것도 시작과 마찬가지로 성 삼위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선포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중심적 예배는 성 삼위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성 삼위 하나님으로 마칩니다. 우리 자신의 상황으로 시작해서 우리의 느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송함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불변하는 언약의 축복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파송하실 때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채워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또 두 벌 옷이나 신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주셨고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오늘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말 돈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살 수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세상으로 돌려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면 충분하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성령의 영감으로 무엇보다 가장 문제가 많았던 교회인 고린도 교회에게 쓰는 두 번째 편지를 마치면서 이렇게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으로 축복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이보다 더 강력하고 이보다 더 확실한 축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A.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사건을 설명할 때 요한복음 1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4,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제거한다면 기독교와 성경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 있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은혜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만을 받아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모든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서도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하고, 우리의 삶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 안에서 거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그 은혜를 인하여 힘을 얻습니다. 이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들어줍니까? 그리고 이 은혜는 우리로 얼마나 감사하게 합니까? 이 은혜야말로 우리의 강퍅하고 못된 심령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닙니까? 우리는 정말 이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B.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두 번째로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가능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요 3:16).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모진 고통과 환난을 겪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한, 견딜 수 있습니다. 아니,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불신앙적 태도이고 죄성이 고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바울 사도가 성령의 영감으로 쓸 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고린도 교인들이여, 여러분이 정말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 때,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지고 우리는 그 사랑에 감격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이 사랑을 알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이 사랑을 알 때, 우리는 모든 환경에서 자족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299장의 찬송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일을 하는지를 너무나 잘 설명합니다.
하나님 사랑은 온전한 참 사랑 / 내 맘에 부어주시사 충만케 하소서
내 주님 참 사랑 햇빛과 같으니 / 그 사랑 내게 비추사 뜨겁게 하소서
그 사랑 앞에는 풍파도 그치며 / 어두운 밤도 환하니 그 힘이 크도다
하나님 사랑은 온전한 참 사랑 / 내 맘과 영에 채우사 새 힘을 주소서.

C. 성령 하나님의 교통(교제)
세 번째로 바울 사도는 ‘성령의 교통하심’을 말합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교통하심은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입니다. 성령의 교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교제는 어떤 것입니까? 성령의 교제의 원형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교제입니다. 완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시고 온전한 기쁨으로 서로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며, 이렇게 서로를 영화롭게 하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관계가 바로 성령의 교제의 원형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교제가 하나님의 교회인 고린도 교회에 있기를 기도하고 축복합니다. 이런 교제가 있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먼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지요. 성령님께서는 그 일을 하십니다. 막막한 때, 마음이 아무 은혜도 느끼지 못하고 사랑도 느끼지 못할 때, 성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참된 성령의 교제가 하나님의 교회에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의 교제가 있게 되면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뒤에서 사람들이 속삭이고 수군거리는 것은 필시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누군가를 칭찬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기뻐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사랑스럽고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형상으로 빚어가실 사람들이라는 것을 바라보면서, 때로는 연약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낼지라도 그들은 그 아름다운 소망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고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일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형제 사랑이 아닙니까?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다면, 그 교회 안에서 때때로 벌어지는 갈등과 불화와 반목 가운데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교통하심, 곧 성령의 교제입니다. 이런 교제는 세상에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심령 속에서 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교통하심은 자기 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형제를 더 사랑하고 싶게 하고, 형제에게 자기 자신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이것은 얼마나 놀랍게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님의 역사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성령의 교통하심, 이 축복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교회의 소망은,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들에 있지 않고 바로 성삼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성자의 은혜와 성부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교회가 되게 만드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은 성 삼위 하나님의 이 축복의 약속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으로 충분합니다.

4. 은혜와 기쁨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이 축도의 의미를 충분히 알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이 변함없는 약속을 확인시켜주심을 알고, 예배의 자리를 떠나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일상과 세상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은혜와 기쁨을 가지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당의 주차장을 떠나실 때, 기도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이런 것을 새로운 또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오, 주님, 이제 저는 삶 속으로 들어갑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저의 모든 삶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을 제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저는 성 삼위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을 확인하고 이 자리를 떠납니다. 그리고 제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해주시고, 제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은 우리가 예배에서 축도 이후에 반주가 나올 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하는 내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배당을 떠나면서 우리는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직장에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자리에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축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언약 백성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사실을 매 순간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순간만이 아닙니다. 그 예배를 통해서 삶의 예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축도의 내용,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5. 예배의 성공은 예배당을 떠나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예배의 성공은 예배 시간에 무엇인가를 깨닫고, 마음이 울컥하고 감동을 받았는가에만 있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하게 되는데,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아서 하는 결단일수록 힘이 있고 지속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마음이 감동이 되었을 때, 우리가 은혜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는 이후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은혜를 받은 증거가 아닙니까? 그래서 예배의 성공은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예배당을 떠났을 때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는 시작입니다. 선교사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힘은 이 예배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를 닮는 삶,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삶이 예배에서 나옵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결단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결단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언약입니다. 이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축도를 받을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매 주일의 예배가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고 찬송과 기도, 헌상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감동을 받는 예배가 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는 준비될 필요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축이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우선 순위는 절대로 양보하지 마십시오. 예배가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게 하십시오. 선교사가 파송 예배에서 선교지에 나가는 자신의 각오를 밝히고 기도를 부탁하듯이, 우리는 매 주일의 예배 후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이제 나가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선교적 삶을 살겠노라고 고백하고 성 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하시니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선교지인 가정으로, 일터로 파송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이런 은혜를 우리가 늘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