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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언약과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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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구속 (12) - 언약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

로마서 11:25-2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09-11-15

말씀내용
<언약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 롬 11:25~26



1.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 백성을 낳는다.
오늘부터 세 번에 걸쳐 우리가 언약과 구속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생각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마지막 토픽은 바로 교회입니다. 성경이 교회를 지칭하는 한 가지 방식은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죠이선교교회를 존재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의 백성으로 그리고 하나의 국가로 묶어준 끈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것이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모세의 시내산 언약에서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홍해를 건너고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그들에게 언약으로 십계명과 여러 명령을 주시고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출 19~24). 그래서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안에 있는 자들이고, 이방인들은 언약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불리웁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너희가 외인이었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입니다(엡 2:12).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 중에 매우 중요한 한 구절은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는 것인데, 여기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한 백성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은 두 개의 백성을 향한 별도의 계획과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고, 신약 성경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으로 두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를 만드시고, 그 둘을 향한 각각의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세대주의라고 말합니다. 이 구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가와 맺은 시내산 언약 그리고 신자들과 그들의 후손과 맺으신 은혜 언약의 관계를 오해함으로써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두 개의 백성,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해서 하나님은 각각을 위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신다고 생각하게 될 때, 구약의 예언들을 이해하는 바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생기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는 가르침이 특별히 미국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스터디 성경의 원조인 Socofield Bible (1909)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과 교단에 받아들여지면서 더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 제가 이런 신학적 입장에 대하여 모든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토픽인 이스라엘과 교회의 문제를 다루는데 국한해서 필요한 만큼 다루려고 생각합니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게 되면 구약의 예언 중 어떤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예언이고, 어떤 것은 교회를 위한 것인가를 구분해야 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먼저 답부터 말씀 드리자면, 이런 해석은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개의 백성을 향한 별도의 계획과 목적을 가지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열매입니다.

3.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 성경의 통일성, 일관성
왜 이렇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성경을 해석하는 열쇠가 성경의 통일성이며 일관성이라는 전제에서 그런 것입니다. 성경은 한 구절, 한 구절을 뽑아서 어떤 견해를 입증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1500년에 걸쳐 40여명의 사람들이 쓴 책이지만, 놀라울 정도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하나의 외적 증거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성경의 해석자라는 성경해석의 원리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니라”고 한 것이 이것을 가리킵니다(사 34:16). 우리가 이스라엘과 교회의 문제를 살필 때에도 이 원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몇 가지 성경말씀을 직접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별도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성경이 정말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4. 구약의 약속과 예언들
먼저 구약의 예언과 약속들 가운데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별도의 계획이 있다고 주장되는대표적인 몇 구절을 보겠습니다.
A. 요엘 2:28~32? 행 2:16~21
먼저 요엘 2:28~32입니다. 말세에 성령을 부어주시되,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실 것이라고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것은 그 자체로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어주실 것이란 약속입니다. 물론 32절에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도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것입니까? 이 예언의 의미를 성경이 스스로 해석한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직후에 베드로가 설교한 것입니다. 행 2:16~21에 베드로는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말씀이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신약의 교회의 탄생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나중에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성취를 남겨둔 것이 아닙니다.

B. 암 9:11? 행 15:14~19
하나님께서 멸망한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회복하시리라는 소망을 주는 듯이 여겨지는 또 하나의 구절은 아모스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9:11~12을 보면,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를 소유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이스라엘 국가의 미래에 대한 예언일까요? 그런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행 15:14~19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은 이미 성취된 것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바로 이방인들이 주님을 찾게 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언급한 다윗의 장막은 국가 이스라엘 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의 후손인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야고보는 성령의 영감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C. 사 65:17~25? 계 21:1~3
마지막으로 구약의 예언을 한 군데만 더 살펴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65:17~25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고 있습니다(17).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시고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겠다고 하십니다(18~19). 어려서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고, 일찍 죽는 노인도 없을 것입니다(20). 인간이 나무처럼 오래 살 것이며(22),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고 나의 성산에 해함과 상함이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25). 여기에 명시한 예루살렘과 성산은 분명히 이스라엘 국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해석이 그렇습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는 언급은 유일하게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서 보고 기록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계 21:1 이하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천국의 완성에 대한 놀라운 환상을 말합니다. 전혀 이스라엘 국가 수립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입니다.

사실, 시간이 있다면 더 많은 구약의 예언들을 살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난 3년간 새벽기도회에서 모든 구약의 선지서들을 다 다루는 가운데, 상세히 다루지는 못했을지라도 다 다룬 내용들입니다. 구약의 예언들이 상징적으로 영적 이스라엘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명칭을 문자 그대로 국가 이스라엘의 장래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성경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5. 주님의 말씀: 이스라엘 자손이 예루살렘에 돌아가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언급이 없다(마 8:11~12).
우리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님의 말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구절만 보겠습니다. 마 8:11~12에서 주님은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나라의 본 자손은 분명히 이스라엘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이 구절만 아니라, 주님의 모든 말씀을 보더라도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이 미래의 어떤 날에 예루살렘에 돌아가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언급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왜 주님께서는 단 한 번의 언급도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6. 사도들의 말씀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사도들의 말씀입니다. 대표적으로 바울 사도는 여러 곳에서 동일하고 일관된 메시지를 성령의 영감으로 썼습니다. 첫째로 유대인과 헬라인의 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이상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라고 했습니다(골 3:11). 또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는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했습니다(2:14). 그리고 이어서 이로써 “우리 둘(이스라엘과 이방인)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2:18). 하나님은 이 두 존재를 하나 곧 교회로 통일하셨고, 두 개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백성, 곧 교회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고 곧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인 것입니다(갈 3:29). 우리가 사도들의 서신서를 주의깊게 읽어볼 때, 그들이 구약의 예언과 그리스도의 성취 사이 어디에서도 이스라엘 국가와 교회를 구분하는 것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7. 천년왕국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왕국인가?(계 21:1~6)
그러면 우리는 이제 그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천년왕국이란 주제인데, 유일하게 요한계시록 20:1~6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천년왕국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복음주의 학자들 간에도 많은 해석의 차이가 있고 역사적으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본문에서도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일관성있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본문이 가리키는 천년은 사단이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감금되는 천년입니다(1~3). 사단이 그 후에는 잠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년은 순교자의 영혼들과 모든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는 기간입니다(4~6). 그렇다면 이런 질문들이 가능합니다. 이 천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상에서 일어날 일을 말함인가, 천상적인 일을 의미하는가? 역사상 미래의 어느 시기를 말함인가, 현재적인 것인가? 정확히 천년인가, 상징적 긴 기간인가? 복음주의 안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갈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성경적이라고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소위 무천년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해석입니다. 이것은 천년왕국이란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복음시대를 가리키며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죽은 성도들과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복음의 진리와 성령으로 천상으로부터 죽은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시는 천년의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간이 마치면 주님의 재림이 있을 것이고, 이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 이전에는 적그리스도의 나타남이 있을 것이고, 대배교도 있을 것입니다. 천년 동안 마귀가 결박을 당한다는 것은 주님도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마태복음 12:28~29을 보십시오. 주님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증거이며,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고서야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한다는 비유를 드셨는데, 여기 결박이란 단어가 바로 계 20:2에서 사용된 결박과 같은 단어입니다. 또 누가복음 10:17~18을 보면, 주님께서 보내신 70 제자가 돌아와서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라고 하자,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하신 것도 사단의 권세가 이미 묶이고 떨어졌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의 시기는 사단이 결박당함으로써 과거에 했던 식으로 나라들을 속일 수 없으며 복음의 진리가 전파됨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미혹함에서 벗어나게 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사단이 결박되었다 함은 사단이 복음의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고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모두 함께 모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복음 시대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천년 왕국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 후에 잠깐 놓임을 받은 후에(계 20:3), 하나님의 원수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치러 모이게 될 것입니다(7~8).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 전 마지막 때에는 이런 큰 영적 싸움이 치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전쟁의 종결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저들을 불로 소멸하실 것이고 미혹하는 마귀를 불과 유황 못에 던질 것입니다(9~10).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단계에 걸쳐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오시는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설명입니다. 그러면 4절에서 언급한 사람들의 영혼은 누구인가? 순교자들이 여기 기록된 것인데, 5절에서 나머지 죽은 자들이 불신자들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기에 4절에는 순교자들을 대표로 하여 모든 죽은 성도들이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여기 ‘살아서’라는 단어와 5절에 ‘첫째 부활’이라고 한 것은 육체의 부활을 말함이 아니라, 죽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는 모습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는 4절의 보좌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에서 언제나 하늘의 보좌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이 천년 통치는 지상에서 있게 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육체로 부활한 사람들이 하게 되는 통치도 아닙니다. 이는 순교한 영혼들과 죽은 모든 성도들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승천하사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둘째 사망은 지옥으로 가는 것, 불못에 던지우는 것을 말함인데, 이들 믿음 안에서 죽은 모든 성도들에게 둘째 사망은 없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 본문을 함께 상고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세대주의 전천년설이라는 견해는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해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지상왕국을 제안하셨지만 그들이 거절했기 때문에 천년왕국이 미래의 어떤 날로 연기되었으며, 그 사이에 마치 괄호와 같이 교회의 시대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재림도 두 단계로 임한다고 믿습니다. 첫째는 휴거입니다. 주님은 땅에까지 내려오시지 않으시고 그 때 구약 성도를 제외한 신자들이 부활하게 되고, 생존한 신자들은 영광의 몸으로 변화되어 휴거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인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올라가 7년 동안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7년은 다니엘의 예언에 의한 것인데, 지상에서는 이 기간의 후반부에 대환난이 있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회심이 있을 것입니다. 7년이 끝날 때, 주님은 교회와 함께 두번째 재림하셔서 원수를 멸하시고 아마겟돈 전쟁을 승리로 종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이 때 팔레스타인으로 모이게되고 생존한 유대인들이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돌아와 구원을 받고 구약과 신약이 다 성취됩니다. 사단은 이 때 무저갱에 던져져 결박당하고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지상에서 시작됩니다. 대환난에서 죽은 성도들이나 구약 성도들이 이 때 부활합니다. 이것이 이들의 계 20:1~6의 해석입니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 있는 보좌(지상)에 올라 왕국을 지배하는데, 교회가 아니라 주님께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천년왕국의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이 기간에 어디 있느냐 하면 하늘의 예루살렘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는 유대인들로만 시작한 지상의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천년왕국이지만, 나중에 이들이 낳아 기른 자녀들 중에는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생기게 될 것이고 천년 후에 이들이 풀려난 사단에 동조하여 성도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주님은 결국 사단을 불못에 던지시고 모든 죽은 불신자 심판(백보좌)이 있게 되며, 새 하늘, 새 땅이 창조되고 부활한 성도들의 천상의 예루살렘이 내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교회의 구별은 영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대주의 전천년설의 주장인데, 이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에 지나치게 매달림으로써 범하는 오류와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두 백성으로 보는 전제로 인하여 성경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시간 관계상 지금 이 견해가 왜 비성경적인지를 일일이 설명드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종말론을 다룰 기회에 상세하게 다룰 계획입니다.

8. 본문 이해
A. ‘온 이스라엘’의 구원은 재림 전에 있게 될 유대인의 대규모 회심 사건이다(롬 11:26).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으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한 백성인 교회만 존재할 뿐이라는 근본적인 성경의 가르침으로 볼 때, 이 부분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많은 학자들은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표현에서 온 이스라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합한 교회라고 이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9~11장 사이에 한 번도 바울 사도는 교회라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때, 아무 언급 없이 갑자기 이스라엘이 영적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쓴다는 것은 합당한 해석은 아닐 것입니다. 분명히 이것은 민족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여기 ‘온’이라는 표현인데 이것은 100% 혈통적 이스라엘은 다 구원받는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대단히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대규모로 회심을 하게 될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주님의 재림 전에 이런 사건이 있을 것입니다. 롬 11:25에 의하면 대략 이 시기는 이방인 선교가 상당히 진척이 되어서 복음이 전세계에 편만히 증거된 어떤 시점이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라고 불릴 만한 엄청난 사건임에 분명합니다(롬 11:12). 이 사건은 또한 수많은 이방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가져다 주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롬 11:15). 즉, 이방인 선교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란 말입니다.

B. 하나의 뿌리를 가진 감람나무의 두 개의 가지가 이스라엘과 이방인이고, 이 둘은 하나의 언약 백성을 이룬다(롬 11:16b~24).
그러나 사도는 이스라엘을 향한 계획과 이방인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는 앞서 한 비유를 들고 있는데, 그것은 한 감람나무에서 나온 원래의 가지가 꺾여졌다고 말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생 감람나무 가지인 이방인들을 그들의 믿음으로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주셨습니다. 원래 가지도 그들의 불신으로 꺾여진 것을 기억할 때, 이방인으로서 접붙임을 받은 가지들도 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비유는 두 개의 감람나무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방인도 믿는 자들은 다 여기에 붙여진 가지들인 것입니다. 즉, 하나의 뿌리를 가진 감람나무의 두 개의 가지인 셈입니다. 이 둘은 하나의 언약 백성, 곧 교회인 것입니다.

9. 하나의 참된 언약 백성들에게 보장된 영광스러운 미래를 주목하라!(계 21:1~8)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구속 언약 속에서 계획하시고 목적하셨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언약 백성을 만들어내었는데,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스라엘도, 이방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좋은 생각을 가지고 모인 단체나 조직이 아닙니다. 인간의 뜻이 교회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언약 속에서, 언약을 통해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의 아직은 다 드러나지 않은 장래는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우리는 그 언약 안에서 우리 교회의 미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그것을 보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1~8). 아멘.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토록 놀라운 언약 백성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이 과연 그 언약 안에 있는 언약 백성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며,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 언약과 아무 상관없으며,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믿고 있습니까? 그 피로 언약 백성이 되셨습니까? 그 피를 절망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 아직 준비되지 못한 분들께 간곡히 말합니다. 여러분의 더러운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분께 매어달리십시오. 여러분을 이 비참한 결과로부터 건져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구주가 되어 주시고, 왕이 되어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도 살고, 영원히 사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시간을 끌고 언젠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간곡히 말합니다.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당신의 인생을 맡아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당신 자신의 굴복이 없다면 그 언젠가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오래도록 교회를 다녔다는 것으로 자신을 확인할 뿐, 그 이상 지금은 주님을 느끼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는 분들께 간곡히 권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겉모습을 가지고 살아온 삶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심령이 과연 언약 안에 있는지 어떻게 알 길이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분명하게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그날에 우리 모두가 영광의 몸을 입고 부활하며 영광스러운 언약의 백성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말씀드립니다. 저는 주님 앞에서 설 때에 제가 이렇게 여러분에게 경고와 권고와 부탁을 드렸다는 것을 말씀드릴 것입니다. “오, 자비하신 우리들의 아버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의 자녀로, 언약의 백성으로 삼아주시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