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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언약과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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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구속 (8) -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

사무엘하 7:1-29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09-10-18

말씀내용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 삼하 7:1~29(8~1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에, 우리가 보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언약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읽은 다윗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은 1절에 소개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방의 대적들을 파하시고 다윗과 그 나라에 평안을 주셨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자 다윗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둘 만한 합당한 성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2). 다윗이 이 계획을 선지자 나단에게 말하자,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언제 나의 거할 집을 지으라고 했느냐? 내가 나를 한 목자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언제 어디서나 너와 함께 하여 네 모든 대적을 멸하고 네 이름을 존귀하게 해주겠다. 사사시대와는 전혀 다른 평안을 주겠다. 그리고 네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이루어주겠다. 네가 죽을 때, 네 몸에서 낳은 자식을 세워서 그 나라를 견고히 하겠다. 그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해서 성전을 건축할 것이고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겠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네 후손이 죄를 짓는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네 자손의 왕위와 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주신 약속, 영원한 언약입니다.

1. 다윗에게 주신 언약(삼하 7:11~16)
A.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이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다(대하 7:13~16).
다윗에게 주신 언약은 바로 이런 내용인데, 그 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주신 왕권이 다윗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주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3~16). 그리고 여기에 구체적으로 덧붙여진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 왕들이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시겠지만, 사울에게 하신 것 처럼 그 왕위를 빼앗는 일은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B. 다윗언약의 영원성은 다윗 자손의 신실함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삼하 23:5).
이 본문에서 ‘영원하다’는 말이 3번 반복해서 나옵니다(13, 16). 영원히 왕위를 지속시키겠다는 하나님의 맹세이자,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다 영원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언약에 이처럼 영원하다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기에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언약의 영원함은 결코 다윗 자손의 실실함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나도, 어떤 다윗의 자손이 하나님을 배반해도,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언약은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이란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이렇게 해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주신 언약도 다윗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겠습니다’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아니, 네가 나를 위해서 뭘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할 것을 내가 알려주마”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참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제가 주님을 위해서 뭘 하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아니,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실함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인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하나님을 아십니까? 이런 하나님을 믿으시는 것입니까?

2. 하나님의 주권
여기서 우리는 잠시 이스라엘 왕정의 역사가 시작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왕정이 아니라 신정이었습니다. 그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무슨 국가의 위기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 평범한 인물 중에서 사사를 세워서 위기를 극복하게 하고 나라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사사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이스라엘에 왕이 없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시다라고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400년을 사사시대로 보낸 백성들이 마지막 사사라고 불리우는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했습니다.

A.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삼상 8:7; 신 17:14~20).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는 죄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 요구는 왕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정을 거부하고 왕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독특함을 버리고 이방 나라들과 같이 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의 요구가 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해서 왕이 세워지게 될 것을 암시하신 적이 있습니다(신 17:14~20). 이것은 정확한 예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왕을 달라는 요구는 죄였지만, 왕을 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사용하십니다. 죄 조차도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시는데 쓰실 수 있는 능력 이것을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과 행사를 거스릴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특별히 우리가 금요예배 때 출애굽기를 통해서 더욱 분명하게 보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왕정이 행사되는 이스라엘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내시려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B. 다윗 왕국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승귀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신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의 승귀(높아지심)와 하나님 나라의 모든 특성과 영광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특징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왕국을 설명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왕, 만왕의 왕이라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로 주어지는 것인가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은 얼마나 복된 나라인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왕을 요구한 백성들의 잘못을 당신의 거룩한 뜻을 위해서 쓰신 것입니다.

3. 언약의 흐름: 여인의 후손(창 3:15)?셈의 후손(창 9:27)?아브라함에게서 날 자(창 15:4)?유다지파(창 49:10)?다윗(삼하 7)?다윗의 후손
그럼 여기서 우리는 잠깐 언약의 흐름을 한 번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가면 좋을 듯 합니다. 처음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은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고 에덴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이 약속을 그들의 소망으로 붙들고 살았습니다. 그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가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노아를 통하여 예언을 하시는데, 하나님은 특별히 셈의 후손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후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에게서 날 자를 축복하시고 그 자손을 통하여 온 세상 모든 민족을 축복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을 낳은 야곱이 죽기 전에 자기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장면에서 네째 아들인 유다를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창 49:10을 보십시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실로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이견이 많지만, 그것이 메시야의 호칭이든 아니든, 메시야를 암시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왕이 유다에게서 나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처음에는 여인의 후손, 그리고 셈의 후손으로 좁혀지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으로, 다시 유다 지파로 좁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유다 지파의 다윗에게 이제 하나님은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주십니다. 그것은 다윗의 후손에 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4. 다윗 언약은 성취되었는가?
그래서 결국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다윗 언약은 성취된 것입니까? 어떻게 성취된 것입니까?

A. 이스라엘 왕국, 하나님 나라의 상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의 홀을 주심으로써 왕정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백성의 관심이 더욱 땅의 것과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것에서 점점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눈에 보이는 왕국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오해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달라는 백성의 요구에 응하셔서 왕을 주시고 왕국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왕국의 특성과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상징으로 주신 것이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 역사에서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복음과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게 한 부분이고, 또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거부하게 된 원인이 된 것입니다. 상징을 실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B. 왕들의 실패와 다윗 언약에 대한 불안감(시 89:49).
이 문제는 유대의 역사 속에서 계속 제기되었었습니다. 유대 열왕의 역사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왕들을 비교하시는 기준은 다윗입니다. 왕들이 잘못 행할 때마다, 그리고 유대 왕국의 위기의 때마다 다윗 언약을 기억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이전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시 89:49)?” 왕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행하신 것처럼 왕위를 빼앗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 것을 그들은 기억했습니다. 결국 유다 왕국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고 유다의 다윗 자손의 왕권은 끊어져버렸습니다. 그러면 다시 묻습니다. 결국 영원하다고 하는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은 휴지조각이 되고, 물거품이 된 것입니까?

여기서 다윗 언약의 영원성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영원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은 오늘날 많은 유대인들과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시 다윗의 왕통을 세우셔서 이스라엘 왕국을 재건하신다는 약속일까요? 아니, 오히려 이 영원성에 대한 강조는 이 언약이 다윗의 자연적 후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는 갈라디아서 3:16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다윗 언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다윗의 아들은 직접적으로 솔로몬과 또 이어지게 될 그 자손들이지만, 사실 여기서도 영원한 이 언약은 영원하신 한 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너무 비약일까요? 히브리서 1장을 보십시오.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영감으로 이 본문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 1:5).” 이 구절은 시편 2:7과 삼하 7:14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편 2편에 대해서는 다음 주일에 살펴보려고 하고, 오늘 본문인 삼하 7:14을 보면 그것은 솔로몬을 지칭하는 것이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다는 것으로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남겨진 성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이루어지느냐 하면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특히 히브리서 기자가 성령의 영감으로 해석한 다윗 언약의 내용입니다.

5. 다윗의 믿음
그렇다면 다윗 자신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그는 단지 자기는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인지라 성전을 짓는 것은 합당치 않고 자기 아들 솔로몬이 지을 것이며, 유대 왕국이 자기 후손의 왕권이 끊어지지 않음으로써 영원하리라고 생각한 것일까요? 이것이 전부일까요? 우리는 다윗이 이 언약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선지자로서 기록한 시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A.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삼하 7:18, 21; 행 2:30).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서 영원한 언약의 말씀을 주셨을 때,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18).”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메시지를 깨닫기 위하여 진지하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 앞으로 들어가 앉았습니다. 종종 우리에게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는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그 자신이 승승장구하여 사방의 모든 대적을 다 꺽은 왕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자기가 얼마나 작은 자인지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오늘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토록 큰 은혜를 주시고도 뭐가 부족해서 내게 이렇게까지 영원한 언약을 말씀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여기서 19세기 독일의 신학자인 프레드리히 빌헬름 크룸마허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윗은 영적으로 솔로몬이 아닌 다른 아들을 바라다 보았고 돌들과 나무로 세워진 성전이 아닌 다른 성전을 보았으며, 그의 보좌가 위치한 지상 왕국 배후에 있는 다른 왕국을 보았다. 다윗은 자신이 시온산에서 받았던 왕의 홀과 왕관이 단순한 상징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윗은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될 언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21절을 보십시오.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라는 말은 단지 그가 들은 메시지, 언약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더 핑크는 이렇게 해설합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말씀에 관한 것이었고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하나님 자신이신 말씀에 대한 언급이다.” 위의 크룸마허와 핑크의 주장이 억지라고 생각되십니까?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의 충만을 입은 사도 베드로가 다윗의 언약 이해에 관해서 주는 말씀은 본문 해석에 대단히 중요한 열쇠입니다. 사도행전 2:30, 31을 봅니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영원한 다윗의 왕위에 앉게 하실 것을 알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윗도 모든 구약의 성도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고 그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그 믿음 안에서 죽은 인물입니다. 다윗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 한 분과 관계되었다는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바로 다윗이 남긴 수많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시들인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신 이 영원한 언약에 감동하여 메시야에 대한 예언시들을 쓰게 된 것입니다.

B. 죽어가는 왕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었다(삼하 23:3~5).
다윗이 죽어서 하나님께 가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이 언약을 기억했고, 이 언약을 붙들었습니다. 사무엘하 23:3~5을 봅니다. 23장은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고 시작합니다(1).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는 것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나의 모든 구원과 나의 모든 소원을 어찌 이루지 않으시겠는가 말합니다. 온 세상과 그 모든 영광이 자기의 시야에서 사라져가는 시간에, 그는 자기 평생에 모든 구원과 모든 소망이었던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매달렸습니다. 죽음에 임박해서 그는 자기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본 것입니다. 그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많이 시달린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자식들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외함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5절 하반절에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케 하셨으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식들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자기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깨어지지 않고 변하지 않도록 하실 것임을 믿은 것입니다. 이제 죽어가는 왕은 아무 것도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우발적인 사건들에 대한 하나님의 완벽한 대책이 있으시다는 것도 확신합니다. 그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이 언약 속에서 지상의 다윗 왕국의 영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붙들었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았던 것입니다.

C.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마 1:1)
하나님은 참으로 신실한 하나님이십니다.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때가 차매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셨습니다(갈 4:4). 신약성경의 첫 책인 마태복음의 첫 구절은 그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언약은 이렇게 성취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중생이라는 기적에 의해서 생겨나며 이로써 하나님을 반역하던 죄인들이 왕이신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백성들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의 성취를 경험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아무 것도 그 성취를 막을 수 없습니다. 다윗 자손 왕들의 부도덕함과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은혜의 언약을, 그 맹세를 이루셨습니다. 어떤 근거에서 말입니까?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순종과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그 언약을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선지자로서 이것을 바라보았기에, 감격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도 후에 범죄하여 넘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살아간 다윗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 자기 자녀를 향하신 그 모든 언약은 우리의 신실함에 의해서 유지되고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과 헤세드에 의해서 유지되고 성취될 것입니다. 다윗에게 베푸신 그 은혜를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베푸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