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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언약과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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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구속(3) - 구속언약 (2)

에베소서 1:20-23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09-08-30

말씀내용
<구속언약(2): 언약의 보상> 엡 1:20~23


지난 주일 우리는 성 삼위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맺으신 구속언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의 창시자가 되시고,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언약의 실행자가 되시며, 성령 하나님은 언약의 적용자가 되신다는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중보가 되시기를 자원하심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들을 위한 언약의 보증인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받을 모든 율법의 저주와 죽음의 형벌을 대신해서 받으셨으며 율법의 모든 의를 이루심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그 보증인이 되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모든 자를 그리스도처럼 보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볼 내용은, 이 구속언약의 중심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조건을 다 성취하심으로써 어떤 보상을 얻으시는가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구원이 그 보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하신 일: 몸을 예비하시고(히 10:5; 눅 1:35; 히 4:15; 고후 5:21) 성령을 부어주심(요 3:34; 사 42:1; 61:1; 눅 4:18~21).
본래 구속언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셔서 율법에 온전히 복종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은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야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3:16).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를 보내셨을 뿐 아니라, 그 아들이 모든 언약의 조건을 실행할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제공해주셨습니다. 가령, 죄의 오염에서 면제된 몸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신 것입니다(눅 1:35). 이로써 사람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신 사람으로 오셨습니다(히 4:15; 고후 5:21).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해주셨습니다(히 10:5). 또 그 아들이 세상에서 메시야로서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요 3:34; 사 42:1; 61:1; 눅 4:18~21). 그러나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또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구속언약의 조건을 다 이루셨을 때, 성부 하나님께서는 무엇으로 보상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언약의 조건을 다 성취하셨다는 의미(요 19:30)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남기신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무엇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까(요 19:30)? 구속언약의 모든 조건을 남김없이 다 성취하셨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십자가 죽으심만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성육신에서 시작하여 인간으로서 사셨던 33년의 생애, 그리고 율법 아래서 율법의 요구를 성취하신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이 모든 구속언약의 조건을 다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더 남겨진 일이 없습니다.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남겨진 것은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위한 구속언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몫을 다 이루셨습니다. 이제 성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일을 받으시고 그 아들에게 보상을 주셔야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언약이라는 것은 조건과 보상이 중요한 내용입니다. 조건은 ‘하라’ 또는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조건 성취에 따라서 보상과 형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와 맺으신 구속언약 속에서 당신의 조건을 온전하게 만족시키셨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보상이 주어져야 합니다. 그 보상이 무엇입니까?

성부 하나님의 첫번째 보상, 부활(행 2:32; 3:15; 4:10; 5:30; 10:40; 13:30,33,34,37; 롬 8:11; 10:9; 엡 1:20; 골 2:12; 벧전 1:21; 시 16:8~11; 행 2:25~28).
첫번째 보상은 죽은 아들을 살리시는 성부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십시오. “그(성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보십시오. 그는 성령의 충만을 입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하기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고 했습니다(행 2:32). 성부 하나님께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신앙고백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말할 때마다 많이 반복됩니다(행 3:15; 4:10; 5:30; 10:40; 13:30,33,34,37; 롬 8:11; 10:9; 엡 1:20; 골 2:12; 벧전 1:21). 성경에서 이 부활사건은 단순히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고만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영원 전에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구속언약의 조건과 보상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가령, 시 16:8~11에서 보게 되는 메시야 시편의 내용이 바로 그 구속언약의 성부 하나님 편에서의 보상을 설명하고 그것에 대한 성자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날 바로 그 구약의 구절을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선포하는데 끌어옵니다(행 2:25~28).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과 언약 조건의 성취를 성부 하나님께서 ‘다 성취된 것’으로 받으시고 주신 첫번째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보상(엡 1:20~22): 승천, 보좌에 앉으심,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심, 교회의 머리되심.
보상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읽으신 본문을 살펴보면,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살리시고 하늘에 올리사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셨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그 이름을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습니다(엡 1:20~22). 이 구절들을 바울 사도가 쓸 때, 그는 분명히 영원 전에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께 언약하신 그 보상의 내용을 주시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앞서 썼던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던”(엡 1:4~5) 바로 그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언약의 성취를 받으시고 주신 보상으로서 소개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읽은 구절들입니다. 여기는 받으신 보상이 전체적으로 설명되어있습니다.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권세,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심, 교회의 머리 이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언약 성취에 대한 보상으로써 성부 하나님께서 주시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심(엡 4:15; 5:23): 교회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여기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하나를 좀 더 확대해보겠습니다.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엡 4:15; 5:23). 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의 보증인이 되셔서 피흘리심과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를 남김없이 다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셨기에 더 이상 그리스도의 언약의 보증되심을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치루어야 할 댓가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아는 자들이, 즉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가 대표가 되셔서 그분의 의로움을 믿음으로 거저 받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더 이상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죄인이 된 인류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즉 아담 안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창 3:9),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주 음성 외에는 더 기쁨 없도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영적 주소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라는 것이요, 그것이 또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교회는 참 교회, 비가시적 교회를 말합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그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가입함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약의 보증인이 되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참 교회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보상: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시 110:1~4; 요 6:37,39, 44)
그리스도께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그들을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또한 영원 전의 구속언약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구약의 시편에 예언된 내용입니다. 시편 110:1~4을 보십시오.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언약 성취를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성부 하나님의 맹세입니다(시 110:4).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시 110:3). 이것보다 확실한 예언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신약성경에서 우리가 최근에 상고한 바 있는 요한복음 6장을 보십시오. 37절에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이미 성부 하나님과의 언약 속에서 그렇게 주기로 된 자들, 즉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선택하신 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39절에서도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을 때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4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로 이 사람들이 누구냐하면 사람 편에서 설명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약의 보증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참 교회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보상: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심(요 17:24; 4~6; 고후 4:6)
이 내용을 가장 자세하게 볼 수 있는 본문은 요한복음 17장입니다. 이 본문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메시야로서의 마지막 사명을 남겨두시고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신 위대한 본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주님은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하신 것이 성자 그리스도의 사역이었습니다. 언제 무엇을 하라고 주셨습니까? 영원 전,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 구속언약이 있었다는 것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구절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이 언약 조건의 성취를 근거로 하여 주님은 보상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5절입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이제 영광의 보좌에 다시 오르셔서 본래의 영광을 누리시며 성 삼위 하나님의 기쁨을 나누시기를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언약의 직무를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택하신)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주님은 언약 직무를 성취하심으로써 아버지의 택하신 자들을 당신의 것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이다”라고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이것도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언약의 직무를 근거로 하여 주장하실 수 있는 보상입니다. 그리스도의 것으로 주어진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에게(엡 5:22~33) 그리스도께서는 성자 하나님의 본래의 영광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신부인 교회는 이 근거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확실성은 신부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는 것,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을 다 이루셨다는 사실에 달려있는 것이기에 세상은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신랑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신부가 가지는 최고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기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했습니다(고후 4:6).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마음에 비추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보상: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심(행 2:33; 요 14:27; 16:7).
여기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의 보상 가운데 또 하나를 보게 됩니다. 바로 성령 하나님을 보내신 일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신 것과 같이, 성령 하나님을 보내지시 않으셨다면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으며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믿을 길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성령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에 부어지셨습니까? 왜 주님의 성육신과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왜 그 때였습니까? 이것도 역시 영원 전에 맺어진 구속언약의 내용이었다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강림 후,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행 2:33). 보혜사 성령님은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대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분이십니다(요 14:27). ‘내 이름으로 보내신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메시야로서 성취하신 언약의 모든 조건들 위에 근거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의 사역을 다 이루신 근거 위에서만 오시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는 주님의 말씀도 같은 맥락입니다(요 16:7). 여기서 주님이 떠나신다, 가신다 하는 것은 바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도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주님께서 다 이루시고 승천하셨을 때, 그 성취의 근거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의미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택한 자의 심령에 적용하시는 것(고후 4:6; 3:18).
성령님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모든 자의 심령 속에 적용해주시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댓가를 치루셨고 언약의 조건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 보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사람들인 교회를 주셔야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령 하나님을 교회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모든 택한 자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믿을 의지를 주시고, 믿음을 주십니다. 중생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미 영원 전에 인간의 구속을 계획하시는 성 삼위 하나님의 구속언약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디에서도 당황스러움이나, 조급함을 가지고 말씀하시거나 기도하시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되,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의 비추임을 받고서 비로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고후 4:6).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주의 영광을 보매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되는 변화, 즉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를 이루게 됩니다(고후 3:18). 이 모든 것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언약 직무 성취에 근거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의 미래 영광(계 21:1~5)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주제는 하나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미래 영광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장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한계시록 21:1~5입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고 있습니다(계 21:1). 그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과는 전혀 다른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죄로 말미암아 철저하게 오염되어서 다 썩어짐에 종노릇하게 되어있는 세상이었고 그 결과로 죽음과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런 모든 죄악과 죄의 결과들을 다 멸하시고 심판하심으로써 새로와진, 구속함을 받은 새로운 질서를 가진 세상이었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새 예루살렘이란 다름아닌 교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신부의 모습이었습니다(계 21:2). 그 모습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순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구원이 완성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주름잡힌 것이 없는 그리고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미래의 영광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이 모습으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기에 그렇게 영광스럽게 변화될 자들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참으시고 인내하시고 기다리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근거에서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입는 것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언약을 성취하신 근거에서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또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라는 음성입니다(계 21:3~4). 하나님의 구속 언약이 이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압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맹세가 이루어질 것을 압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고난과 눈물과 슬픔을 참을 수 있습니다. 인내함으로 우리는 그날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날이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잘잘못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되신 성육신과 율법 아래 사심과 그분의 죽으심으로 이루어진 구속 언약의 성취 때문인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확신이 있는 것입니다. 오, 우리의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