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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 - 언약과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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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과 구속 (2) - 구속언약 (1)

에베소서 1:4-5, 히브리서 7:22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09-08-23

말씀내용
<구속언약 1: 언약의 보증이신 그리스도> 엡 1:4~5; 히 7:22


만일 어떤 아버지가 자식의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고 자식이 경험하게 될 실패도 예측해서 미리 그 대비책을 세워 자식이 그 때 볼 수 있고 실패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 대단하고 훌륭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아버지는 없습니다. 그저 이야기 정도는 해 줄 수 있겠지요. 자신의 실패의 경험들을 미리 충분하게 또 깊이있게 나눔으로써 훗날 이것들을 자신의 간접 경험으로 삼아서 잘 이겨나가도록 해주는 아버지라고만 해도 훌륭한 아버지일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더 익숙한 아버지상은 자식이 실패할 때, 자식을 책망하고 비난하는 아버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이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 아버지가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전능하신 최고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실패를 미리 다 아시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완전한 그리고 무조건적인 대책을 세워놓으신 아버지라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우리는 오늘 구속 언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그리고 성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상고해보려고 합니다.

구속언약: 영원 전에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엡 1:4; 3:9,11)
성경에 구속언약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지만, 성경 전체가 가르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주제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질문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셨는가? 물론 저는 수 차례에 걸쳐서 이 질문이 중요한 질문이며, 성 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기뻐하시면서 또 교제하시면서 완전하신 행복을 누리고 계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금 더 나아가서 성 삼위 하나님은 그 안에서 서로를 향하여 흘러넘치는 영광스럽고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시는 가운데 무언가를 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고, 언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신학자들은 그것을 구속언약이라고 말합니다. 구속언약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영원 전에 맺어진 언약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전지하신 삼위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 구속의 계획을 세워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구절들이 이것을 입증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구절을 오늘 우리가 같이 읽었습니다. 창세 전의 이야기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그 때 택하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들이 되도록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3:9,11을 보십시오.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만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입니다. 말하자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구절만으로는 이렇게 추측하기가 어려울 것이기에 오늘 우리는 여러 구절들을 더 살펴볼 것입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예정에 없던 사고로 인하여 차선책(plan B)을 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이미 영원 전부터, 창조 이전부터 삼위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당신의 계획대로 성취해가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성 삼위 하나님의 협동 사역이다.
성 삼위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세우신 인류 구속의 계획은 하나의 언약의 형태였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습니다’(엡 1;4). 그리고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인된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시는데, 성자 하나님은 자원함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와서 선택받은 자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성령 하나님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모든 택한 자들에게 적용하여 구원을 이루어주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서 영원 전에 맺어진 언약의 내용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구속의 드라마라고 말할 때, 이 구속의 드라마의 서막이 바로 이 구속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은 성 삼위 하나님의 협동 사역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그 구원의 계획을 주도하시고, 성자 하나님은 자원하여 인간의 머리로서, 인간의 중보자로서 율법 아래 세상에 오셔서 죽으심으로 택함받은 자들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택한 자들에게 적용하시는 것입니다.

구속언약의 중심은 중보자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엡 1:3~5)
여기서 우리가 조금 깊이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자 하나님,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구속언약의 중심에는 죄인의 중보자인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에베소서 1:4,5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했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도가 받아누리는 모든 은혜와 특권과 축복은 다 구속언약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엡 1:3).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죄인들의 중보자가 되실 수 있고, 어떻게 그분의 죽으심이 우리를 대신하는 죽으심이 될 수 있는가? 그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경건하고 악한 자가 주님을 믿을 때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시는 것은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인가? 성도의 신앙을 끝까지 변치않도록 지켜주심으로 그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가?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믿어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설명해주시는 만큼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유익하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큰 확신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확신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주신 일을 우리가 너무나 단순하게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오는 현상일 뿐 아니라, 그 진리가 우리 속에 충분치 못하기 때문에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도 우리 속에서 그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재료가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는 성령님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우리에게 적용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매우 다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힘이 있습니다. 여간해서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바로 확신의 문제입니다. 확신이 없이도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성도의 영광스러운 특권을 너무나도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가 구속언약이라는 주제를 오늘 다루는 것은 여러분의 신앙을 확신으로 인도하는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 될 것입니다.

언약의 보증(surety)이신 그리스도(히 7:22; 엡 5:23)
구속 언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임하신 역할은 모든 택한 자들을 위하여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일이었습니다(히 7:22).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고 한 것은 새 언약의 보증이라는 말인데, 이 언약의 틀 속에서 주님이 하신 일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한 보증이 되신 것입니다. 보증이란 단어 자체가 법적 용어입니다. 보증(surety)이 의미하는 것은 법적으로 다른 사람을 대표하여 피보증인의 이름으로 그의 이익을 위하여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택한 자의 보증이 되신다는 말씀은 그들의 채무를 해결하고 지불 능력이 없는 백성의 모든 빚을 대신해서 갚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위한 머리가 되신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 머리라는 개념은 그들 모두를 대표한다는 개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말합니다(엡 5:23).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그의 백성 모두가 죽은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은 그의 백성 모두가 산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아담이 인류의 머리로서 범죄한 것이기에 그의 범죄와 그 효력이 모든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다고 말씀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롬 5:12~19; 고전 15:20~23, 45~47).

하나님의 택함받은 백성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롬 5:12~19; 고전 15:20~23, 45~47)
모두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니라, 한 사람 즉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이 인류의 머리로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모두가 죄인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로마서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롬 5:12). 이 아담의 문제는 제가 행위언약에 대해서 다룰 때 더 상세히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만일 우리가 원죄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믿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도 알지 못할 것이며 믿을 수 없을 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내가 지은 어떠 어떠한 죄들만이 죄라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주님을 구세주로서 필요로 하기는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원죄를 거부한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복음의 모든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별히 인류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다는 나쁜 소식은 더욱 더 받아들일 수 없을 것입니다. 율법이 모세에게 주어지기 전에도 아담이래로 모든 인류는 비록 아담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사망에 매여있는 종이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씀합니다(롬 5:14). 이것은 오직 한 사람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롬 5:15).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죄인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도 역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온 은혜입니다. 아담은 바로 이 오실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상이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죄인이 되었으나, 다시 한 사람으로 인하여 의인이 된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문제는 도대체 이런 논리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이 바로 구속언약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에 성삼위 하나님 안에 맺어진 이 언약 속에서 스스로 자원하여 담당하고자 하시는 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율법의 저주와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감당하는 ‘언약의 보증’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백성의 보증인으로서 하신 것이기에, 우리 자신이 행한 것과 법적으로는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이며 법적 효력을 완전하게 가지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 법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지신 언약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주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행하신 모든 사역은 언약적 직무를 수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구속언약의 내용(요 17:4,6; 4:34; 12:49; 14:31)
우리는 그런 증거를 어디서 발견하게 됩니까? 요 17:4에 주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었다”고 말씀합니다. 언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이것이 바로 영원 전에 성 삼위 하나님 안에서 맺으신 구속언약의 증거입니다. 6절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은 언제 주신 것입니까? 오늘 읽은 본문과 같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구속언약 속에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사람들입니다. 요 4:34에서 주님은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바로 구속언약 속에서 성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뜻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사이에 이미 언약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요 12:49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룰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다”는 말씀이나, 요 14:31에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다 구속언약의 존재를 말해줍니다.

주님의 성육신은 구속언약의 성취이며 성부께 대한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이다(갈 4:4; 출 21:5)
이것을 주님의 지상사역 가운데 성육신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셔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의 대답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언약의 보증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셔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언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 4:4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그리스도께 죄로부터 오염되지 않은 한 몸을 예비해주심으로써 성자의 순종적인 언약 수행을 지원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잉태하여 여자의 몸으로 나게 하신 성육신 사건입니다. 여기에는 성자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자발적인 순종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언약의 보증인이 되시는 중보자의 직임을 자발적으로 맡으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자발적 순종의 그림이 모세의 율법 안에 그려지는데, 출 21:5을 보십시오. 히브리 종이 안식년이 되어 풀려나게 되었는데, 그가 이렇게 주인에게 말합니다.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하지 않겠노라.” 그는 주인의 집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종 시절에 결혼한 아내나 낳은 자식은 주인의 소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홀로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인데, 그가 주인을 사랑하고 처자식을 사랑함으로 이제 자원하는 종이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인 교회를 그리스도께 신부로 주셨기에 주님은 그들을 향한 사랑으로 인하여 스스로 종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빌 2:7).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오신 것도 구속언약의 성취이다(갈 4:4).
주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신 것은 또한 율법 아래로 오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즉, 주님은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이시고, 율법을 만드신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매이실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대로 종주왕이 봉신과 언약을 맺을 때 그 언약은 봉신에게 지키라고 주는 것이지, 종주왕이 그 언약에 매이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세상에 오실 때 그 율법 아래로 오셨습니다. 갈 4:4에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이란 말씀이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아들의 명분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약의 보증인으로서 완전한 자격을 갖추시기 위해서 율법 아래 있는 죄인의 자리에 정확한 조건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상의 삶 속에서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고 사셨습니다. 할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으나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으셨고,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으나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세례를 받으셨으며, 하나님을 온 마음, 생명을 다하여 사랑하시고 이웃을 그와 같이 사랑하심으로써 율법을 문자의 수준에서가 아니라 완전한 의도의 차원에서 완전하게 지키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께 의무적으로가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을 하사 택한 자들의 보증인으로서 사람이 되시고 율법 아래 오사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빌 2:8).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부가 될 백성들을 사랑하여 자신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심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신 것입니다(엡 5:25~27).

십자가에 죽으심은 구속 언약 성취의 절정이다(창 2:17).
구속언약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께 자발적인 완전한 순종을 보이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신 절정이 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요 13:1).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2:17). 물론 아담은 범죄후에, 하나님과 단절됨으로써 영적 죽음을 경험했고, 결국은 육체적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모든 세대마다, 사람마다 죽어야 하는 이 변함없는 사이클은 인간의 운명처럼 되었습니다. 인간은 도저히 이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의 죽음의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으로써 죄인에게 주어진 죽음의 존재를 죽이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 죽음의 사이클을 벗어나 영생을 선물로 받게 될 자기 백성을 구속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있었던 구속 언약을 따라서 행하신 언약의 수행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우리의 완전한 중보자가 되시고, 언약의 보증인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고, 사셨으며 또 죽으셨습니다.

결론: “창세 전에 죽임 당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확신”(계 13: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는 사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를 위한 언약의 보증이 되시는 것은 바로 영원 전에 성 삼위 하나님 사이의 흘러넘치는 기쁨 속에서 맺어진 구속언약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고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읽은 본문을 보십시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창세 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자기 백성을 택하셨고, 그를 구원하여 당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로 삼으시기 위해서 구속언약을 맺으셨고, 성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이 거룩한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이 되어 율법 아래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온전하게 복종하시기로 하심으로써 우리를 대신하는 언약의 완전한 보증이 되셨습니다. 이 구속언약이 창세 전, 영원 전에 맺어진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기도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아셨고, 선택하셨고, 사랑하셨고, 그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8을 보십시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여기 이 구절은 “창세 전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도 번역이 될 수 있는데, 이 구절은 성 삼위 하나님의 구속언약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는 구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2000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는 이미 구속언약 속에서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죽임을 당하신 존재로 계신 것과 같았고 이 근거 위에서 성부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저와 여러분이 얻은 구원은 결코 우리 인생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 아니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바로 영원 전에 성 삼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아셨으며, 선택하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없는 자로 영광스럽게 세우시기 위해서 언약을 맺으셨고 그 언약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되었다는 이 장엄하고도 엄청난 사실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 영원 전에 맺으신 구속 언약을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취하셨고 또 지금도 그리스도의 언약의 보증되신 사역을 성령님께서는 모든 택한 자들에게 증거하고 적용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열매입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우리가 얻은 구원은 결코 우리의 잘잘못에 의하여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영원 전의 하나님의 계획 곧 구속언약으로 말미암아 완성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성 삼위 하나님 사이에 맺어지신 영원히 불변할 언약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흔들릴 수 없는 것입니다. 결코 이 구원을 흔들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는 성 삼위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