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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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성숙 34 - 기도하는 신앙 (11) -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에베소서 6:18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8-03-11

말씀내용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엡 6:18)


우리는 지난 두 주에 걸쳐, 기도란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필요를 넘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쁘신 뜻을 따라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우리의 기도가 우리 자신을 벗어나 형제들, 성도들, 교회,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주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천박함
우리의 기도에서 우리 스스로 놀라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장 깊고 가장 거룩한 자리에서 우리의 천박함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가 아뢰는 말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말은 우리 인격입니다. 특히 우리가 충분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관계 속에서 하는 말보다, 편안한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잘 보여줄 것입니다. 기도의 말은 어떻습니까? 기도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온 세상을 심판하실 심판주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가장 두렵고 떨리는 자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아이가 아버지께 나아가듯 은혜의 보좌로 담대히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떻든지 기도의 자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거룩하고 깊은 자리임에는 분명합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무슨 말씀을 하나님께 아뢰는가는 우리 신앙의 인격, 수준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오직 우리 자신의 필요들만을 구한다면, 모든 간구가 다 이기적인 것들이라면, 이건 너무 천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 좀 더 예의를 갖추시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도의 영역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자기를 속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정직하게 나아가되 이런 이기적인 천박함에서는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태도를 벗어나는 길은, 지금까지 거듭 강조했듯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될때, 우리는 자신의 이기적 성향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내 인생과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심을 알고 신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뭔가를 주시는 것은 반드시 내가 이것과 저것을 달라고 구했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이런 지식과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자신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기적 천박함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2.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기도를 권면하는 18절에서 사도가 강조하려는 것은 뒷 부분에,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의 마지막 인사 전에 나오는 마지막 권면에 해당합니다. 에베소서의 마지막 권면은 사실 6:10부터 시작하는데 영적 전쟁에 이기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우라는 권면입니다. 이 권면의 끝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기도를 강조합니다. 기도는 사도가 말하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신갑주로 무장할 것을 권면한 사도는, 이 모든 것 위에 기도를 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18절에서 사도는 특별히 '모든' 이라는 단어를 네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 '항상'(=모든 때, 모든 상황에서), '항상'(=모든 참음과 인내로: 항상 힘쓰며), '여러(=모든)'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바울 사도가 '모든'이라는 단어를 이 짧은 구절에서 4번이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특별히 사도 자신이 기도를 강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지요. 우리는 이미 성령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사 탄식함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롬 8:26~27).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권면은 로마서 8:26~27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 욕심을 떠나지 못할 것이고, 모든 것을 자기 뜻, 자기의 원함을 따라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는 '모든 기도와 간구'라고 기도를 강조하면서도, '모든 상황 가운데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너희가 기도를 많이 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때든지, 무슨 상황에서든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임을 기억해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에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 천박함을 벗어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는 권면으로 이어집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너 자신 말고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기적 필요를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려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말로 '여러 성도'로 번역된 말은 사실 '모든 성도'를 의미합니다. 에베소 성도들이 이 말씀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그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아니, 우리가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해야하는 거였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런거는 목사님이나 장로님이 하는 게 아닌가? 어떻게 일반 성도인 내가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지?"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것이 에베소서를 마치면서 바울 사도가 에베소의 모든 성도에게 주는 마지막 권면입니다. 이 말씀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A. 우리 모두의 싸움이다.
사도가 이 권면을 주는 맥락을 살펴보십시오. 사도는 마귀를 대적해야 하는 영적 전쟁의 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건해져야 하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사도가 말한 부부의 관계(5:22~33), 부모와 자녀의 관계(6:1~4) 그리고 종과 상전의 관계(6:5~9)도 모두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탄은 어떻게해서든지 우리를 넘어뜨려서 우리의 영적 삶이 무너지게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우리 개인만 잘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모든 관계들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의 영적 삶, 영적 싸움은 언제나 내 아내나 남편, 자녀들이나 부모, 또는 직장에서 맺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관계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마귀를 대적하는 싸움을 잘 싸워야 합니다.
이 전쟁은 혼자서 싸우는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싸우는 싸움이고, 성도들은 함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싸움을 싸우는 전우들이기에, 우리가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마귀와 대적하는 큰 싸움 가운데 있다는 큰 그림이 없이는, 우리가 이렇게 기도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보면서, "오, 주님! 저 형제를 살려주시고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셔서 우리가 감당해야할 싸움을 감당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미숙한 자매를 보면서, "오, 주님! 저 자매를 주의 말씀과 기도로 양육하시고 기르셔서 주의 나라의 멋진 군사로 쓰임받게 하옵소서." 이 영적 싸움이 나만의 싸움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함께 싸워야 하는 싸움이기에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나라가 임하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B. 형제를 사랑하는 길이다.
우리가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먹을 것이 필요하면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에 더하여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래리 크랩은 그의 책 [파파기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제 방식으로 풀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기도는 아이가 아빠에게 나아가 말하는 것과 같은데, 아빠에게 나아가서 형 이야기도 하고 동생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형이나 동생이 이런 저런 잘못을 했으니까 혼내주라는 말이 아니라, 형이나 동생이 멋진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고, 더 훌륭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친구와 만나서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좋지 않은 이야기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친구와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말씀드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학교에 다녀와서 엄마에게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들을 말하고 친구들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바로 '모든 성도를 위하여' 하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령, 어느 형제를 위해 기도한다고 해봅시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지금 그 형제가 생각나요. 지난 주일 그의 얼굴이 어두워보였어요. 다가가서 묻지는 못했는데, 그가 혹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세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그의 삶에 무거운 짐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짐도 가볍게 해주시고,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경건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도와주세요." 가령, 이런 겁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벧샬롬 교회 안에 이렇게 형제를 생각하고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 공동체는 얼마나 따뜻한 형제 사랑의 공동체가 되겠습니까? 물론 나와 잘 맞는 몇 사람과 만나서 함께 식사도 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너와 잘 맞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우리의 사랑과 기도의 대상이 되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형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 아버지, 저는 그 형제가 많이 불편하고 힘들어요. 그 형제가 더 성숙해지고 주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하지만 제게도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는 넉넉한 사랑도 허락해주세요." 모든 성도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도전입니다. 오늘 오후에 우리는 21명의 벧샬롬 새가족이 되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말로만 가족이 아니라, 실제로 성령님께서 하나되게 하신 것을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는 가운데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힘써 지켜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엡 4:2~3). 오늘 벧샬롬 교회의 새가족으로 환영을 받으시는 모든 분들도 역시 가족으로서 이 책임을 감당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가족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함으로써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성도를 위하여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가? (엡 3:16~19)
좀 더 들어가보십시다.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려고 하는데, 정작 그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주의 명령으로 들으시고, 형제를 위해서, 벧샬롬의 모든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겠다고 생각하고 행하기 시작하신다면, 여러분의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전과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기도를 먼저 시작하고 나면 그 사람을 좀 더 알고 싶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교제할 기회가 주어지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통해서 이미 그 사람 안에서 하신 일들을 보게 될테니까요. 물론 더 가까이 교제하면서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면서 우리의 기도는 더 구체적으로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좋은지, 성령님께서 이미 성경에 기록해놓으셨습니다. 그 한 예가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에베소서 3:16~19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먼저 성도들의 속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그들의 겉사람을 자세히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기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들의 믿음과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세번째로는 그들이 사랑 안에서 뿌리내리고 터가 굳건해지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식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달아 알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해지기를 축복하십시오.
물론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더 많은 성경구절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 수 있겠습니다마는, 이것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성경을 읽어나가시면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할 기도의 제목들을 점점 더 풍성히 얻게 되실 것입니다.

4.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많은 기독교인의 사랑을 받는 노래 가운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당신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 사랑으로 돌봐 주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당신이 외로이 홀로 남았을 때 /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마음을 / 그대 홀로 있지 못함을
조용히 그대 위해 /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정말 때로는 내가 기도할 수 없을만큼 지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날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적지 않은 성도들이 날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냥 그럴거야"라는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자신이 그렇게 해보았고 그런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알고 확신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귀한 힘과 격려입니까? 이것이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를 개별적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 바라봅니다. 이런 점에서 한 사람의 지체가 모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는 그만한 책임을 가진 존재로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사실, '모든 성도를 위하여'라는 말은 오늘 우리가 살펴본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지상에 세워진 모든 주님의 교회가 우리가 기도해야 할 '모든 성도'입니다. 더 넓게는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성도들도 있습니다(요 10:16). 우리는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교회에 한정하여 적용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점점 우리의 기도의 지경이 넓어져야 합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이 노래의 가사가 벧샬롬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믿어지고 체험되는 가사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