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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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성숙 10 - 말씀 위에 선 신앙 (3) -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

고린도후서 3:18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7-07-16

말씀내용
성경과 하나님의 영광(고후 3:18)
우리는 신앙의 토대로서의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이해하려면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살폈습니다. 성경은 인간 지성으로 온전하게 파악될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히 인간 저자들의 작품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된 정확하고 오류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인간 저자들을 감동하여 오류없이 기록하게 하신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성경을 주신 궁극적 목적이라는 사실을 지난 주일에 상고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계속 살펴볼 주제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문이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것은 성화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어떻게 그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닮아가는가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봄으로써 닮아간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보는 것 vs. 성경을 보는 것(요 1:14)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믿거나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14을 보지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렇게 독생자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마 16:16).
우리는 예수님 당시 사람들과 달리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직접 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은 예수님을 직접 보는 것에 비하여 조금도 열등한 방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온전하게 드러내고, 성령님께서 그것을 드러내실 때, 사람을 덮고 있던 수건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맥락에서 읽어야 합니다.

죄인의 딜레마: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죽는다(출 34).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내려오자, 모세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아론과 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직접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는 못할지라도, 모세의 얼굴에 반사되는 광채를 본다는 것도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하지만 그들은 금송아지를 섬겼던 고로, 모세의 얼굴에 반사되는 광채를 보는 것 조차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쓰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 백성을 향한 배려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도록 막은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최고의 기쁨이고 영광이고 행복인데,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살 자가 없다는 것이 죄인의 딜레마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벗겨지는 수건(고후 3:16)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보지 못하게 하는 수건이 벗겨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 영광을 봄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되어가는 길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대신하여 율법의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를 남김 없이 받으셨기 때문에,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서 죽지 않을 길이 열렸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고후 3:16).” 이것이 죄인이 거듭날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전에도 성경을 읽었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오래도록 다녔을 수도 있습니다. 주일학교에서부터 말씀을 배웠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감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수건이 벗겨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자, 그 즉시로 사람은 성경에서 그토록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일이 시작됩니다. 사도 바울은 18절 하반절에서 이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난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수건이 벗겨져서 성경에서 하나님을 보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당신을 보이신다(삼상 3:1,19~21).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된 방식이 아닙니다. 물론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책으로서의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또 완성된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말씀으로서 당신을 드러내셨고 보이셨습니다. 말씀으로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관된 방식이었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써 그 모든 것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때마다 선지자를 세우셔서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시는 그 말씀을 믿고 청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의 시대로 가보겠습니다. 사무엘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던 시대에 대해서 사무엘상 3:1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는 자들이 심히 적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지만,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컫는 이스라엘도 있었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감격하고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물었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것은 2절 말씀,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어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라는 표현에서도 암시됩니다. 당시 영적 지도자요, 제사장인 엘리의 눈이 어두웠다는 것은, 그 시대 하나님의 사람의 표준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무엘이라는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이 등장하기 전, 역사의 현실이었습니다. 본문을 좀 더 보면, 사무엘이 자라가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고 합니다(삼상 3:19). ‘사무엘의 말’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는 뜻입니다. 20절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휘귀했었는데, 사무엘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아, 이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구나!”라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디어 다시 말씀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사무엘을 통해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이 하반절에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사무엘에게 나타내셨습니다. 언뜻 보면,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뭔가를 보여주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은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사무엘은 눈으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들음으로써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성경은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다.
오늘날, 구약의 선지자나 신약의 사도들은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었고,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그 말씀을 기록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완성된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더 이상 우리는 선지자나 사도를 통해서 직접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통 계시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다 이단이고 사이비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완성된 계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구약이나 신약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의 성도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역사에 등장하던 시기처럼, 말씀이 희귀한 시대일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때일수록 사이비와 이단들이 창궐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랑곳하지 않고, 꿈이나 환상이나 기타 비상한 체험과 같은 직통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현상과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혹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여기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한다’는 말씀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현상과 기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사탄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데살로니가후서 2:11~12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지 않고, 성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하지 않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사탄의 미혹에 노출될 뿐 아니라, 미혹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삶
이런 의미에서 신앙생활이란 무엇입니까? 신앙생활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신앙생활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수건이 벗겨져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사람입니다. 수건이 벗겨졌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만일 여러분이 성경을 사랑하고 있다면, 그것은 수건이 벗겨졌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런 은혜를 구하면서 성경으로 들어가고, 성령님의 조명하심을 구하면서 성경을 읽습니다.

‘은혜 받는다’는 말의 의미
우리는 종종 “은혜 받았습니다.” 혹은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은혜라는 말보다 신자의 삶, 신앙 생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말은 없습니다. 은혜는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호의’로 정의됩니다. 인간이 웬만해서는 인간에게서 은혜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게 될 때, 느끼는 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칼빈이 말한 이중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두 가지는 별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신을 알게 되고, 자신을 알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말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살아가는 본래적인 교만은 오직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때, 무너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요, 아무 것도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만한 선한 것을 가지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주신 모든 사랑을 감당할 수 없는 은혜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에게서 당연히 보게 되는 것은, 그가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무가치함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는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고 은혜를 받은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은혜 받은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아야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자신만만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명령과 강압과 공포감 조성으로 우리를 몰아가시거나 변화시키시지 않으십니다.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애정을 가득 품고, 하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은혜가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가?
은혜는 결코 위선자나 종교적 율법주의자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감동하면, 그는 큰 기쁨과 감사와 감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말을 듣고 하나님을 마치 허영심 많은 사람처럼 오해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자신만이 전부라고 하시는가?”묻습니다. C.S.Lewis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찬양?하나님에 대해서건, 다른 무엇에 대해서건?에 대한 아주 분명한 사실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찬양을 찬사나 인정이나 경의를 표하는 일로만 생각했습니다. 찬양은 기쁨이 자연스럽게 넘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 세상은 온통 찬양으로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시인을 찬양하는 소리, 여행지의 풍경을 찬양하는 소리, 좋아하는 게임을 찬양하는 소리, 날씨, 포도주, 음식, 배우, 자동차, 말, 대학, 나라, 위인, 아이, 꽃, 산, 진귀한 우표, 희귀한 딱정벌레, 심지어 정치인이나 학자들을 찬양하는 소리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대한 저의 거부감은, 이렇듯 다른 모든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기쁘게 하고 있는?실로 하지 않을 수 없는?일을 하나님이라는 최상의 가치 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어리석게도 거부했던 데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찬양하기 좋아하는 까닭은, 찬양이 단순히 우리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완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인들이 서로에게 거듭거듭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찬사를 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그들의 즐거움이 완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대답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까닭은 단순히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를 포함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우리 안에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냅니다. 루이스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 찬송과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기쁨의 완성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선하심과 영광에 겨워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높이는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그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삶은 성경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성경이 우상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안에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뵐 수 있고, 성경 안에서만 우리는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우리의 봉사도,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초해야 합니다. 성경을 떠난 그리스도인의 삶은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한 번도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 본 적이 없으시다면, 하나님께 수건을 벗겨주시기를 간청하면서 성경을 날마다 펼치십시오. 거듭나게 하시는 그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맛보아 아는 분이라면,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조명해 주셔서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 은혜를 받고 살기를 구하십시오. 말이 아니라, 진짜 은혜를 받고 살게 해주시기를 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