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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4).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역대상 29:1-30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1-05-22

말씀내용
뛰어난 신학자였던 윌리암 레인(William Lane)은 암에 걸린 후에, 자신의 제자인 크리스천 음악가인 마이클 카드(Michael Card)가 사는 테네시 주로 옮겨옵니다. 그리고는 제자에게 말합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너에게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죽는지를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다 죽게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 아닐까요? 어떻게 죽고 싶으십니까? 어떤 죽음을 원하십니까? 본문은 다윗의 죽음, 다윗이 어떻게 죽는가를 보여줍니다. 한편으론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든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를 네게 보여주고 싶구나.”

사실 다윗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본문 외에도 열왕기상 1~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본문이 각각 다른 부분들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역대상 29장이었지만, 열왕기상의 본문과 함께 다윗의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1. 아비삭 이야기: 죄를 이기는 이야기(왕상 1:1~4)
먼저 사무엘하가 끝나고 열왕기상으로 이어지는 다윗의 마지막에 대한 설명은 아비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하게 됩니다. 다윗은 나이 많아 늙었고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생각한 것은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서 왕을 모시고 왕의 품에 두면 왕이 따뜻함을 얻으시리라 생각하고 수넴의 아비삭이란 처녀를 왕의 옆에 두게 됩니다. 성경은 그녀가 “심히 아리따운 자”라는 설명을 덧붙이고 두번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합니다.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합니까? 성령님께서 이 이야기를 다윗의 생애 마지막에 넣은 것은 다윗의 삶에 정리할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여자로 인해서 넘어진 사람이었습니다. 여자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치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삶의 마지막 부분에 이 문제를 정리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마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것에 대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세 번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것과 같이 말입니다. 다윗은 이 아름다운 여인을 옆에 두고도 동침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다윗에게 “네가 이제는 승리했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의 생애 마지막에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에 가장 수치스러운 범죄를 이렇게 인정하심으로써 덮으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부끄러웠던 수많은 일들을 하나님께서 덮어주시는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어찌 편안하게 죽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덮으실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때문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가 발라진 집마다 죽음의 사자가 넘어간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흘리신 피가 적셔진 사람의 모든 수치를 하나님께서는 그 피로 덮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자들이 누리게 되는 은혜입니다.

2. 오직 하나님!: 성전 건축 준비 완료(대상 29:1~22)
우리가 두번째로 주목해야 할 다윗 생애의 마지막 부분은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 그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고 죽음을 맞이하는 부분입니다. 이 대목의 이야기는 그의 삶 전부가 어떻게 하나님 한 분을 위해서 존재하는 삶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그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A. 드림: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최고/최상을 하나님께 드림(2~9)
i. 왕의 드림: (2~4)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다윗이 자신의 인생의 최상의 것,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성전 건축을 위해서 다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루 아침에 된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허락 받지 못한 이후에 평생 이 준비를 해왔습니다. 자기의 아들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조금의 부족함도 느끼지 않도록 말입니다. 2절에는 그가 ‘힘을 다하여 예비했다’고 말하면서 그 목록은 금, 은, 놋, 철, 나무, 마노, 박을 보석, 꾸밀 보석, 채석, 다른 보석들, 화반석 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3절에는 그 외에도 하나님을 전을 사모해서 자기 ‘사유의’ 금, 은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여기 ‘사유의’라는 말은 가보급 재산, 즉 재산목록 1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다윗이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소유 가운데 최고/최상의 것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질은 오빌의 금으로써 당대 세계 최고의 금이었고 순은이었습니다. 양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인데, 금이 112톤에 해당하는 중량이고 은은 260톤에 해당하는 중량입니다.

ii. 신하(지도자들)들의 드림(6~8)
이렇게 왕 다윗이 기쁨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물품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본 신하들, 지도자들 또한 감동을 받아 기쁨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iii. 백성의 드림(9)
지도자들의 헌신은 다시 백성들의 헌신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들도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자신들의 가진 것을 ‘성심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이들의 헌물은 단지 물질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원함이었고 ‘온 마음을 다하여’ 드린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놀라운 광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 한 사람의 헌신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흘러내려온 하나님의 백성 전부의 헌신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받아 누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었고, 그 최상/최고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B. 왕의 마지막 기도(10~19)
수많은 기도를 시편에 남긴 사람, 다윗의 생애 마지막 기도가 여기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물론 마지막 기도라기 보다는 기록된 기도 중 마지막 기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다면 그 내용은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다윗은 왕으로서 온 백성 앞에서 공적으로 기도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10~19절입니다. 이 마지막 기도는 다윗의 삶의 몇 가지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엿보게 합니다.

i. 하나님의 주권(12,14,16,25)
먼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징이었습니다. 그들의 기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이었습니다. 12절을 봅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만유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이 누리는 모든 부와 권세와 귀함이 나온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것은 인간이 크게 되고 강하게 되는 것이 주께로 말미암고 주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배우고 사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이 사실을 배우셨습니까? 다윗은 자기 손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14절과 16절에서 고백합니다. 뭔가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게 본래 하나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역대상 마지막 부분에 새 왕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무리의 목전에서 심히 존대케 하시고 왕의 위엄을 주셔서 그 전 이스라엘 모든 왕 보다 뛰어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5). 사람을 높이고 존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다윗의 고백을 다시 확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깨닫고 고백하는 것의 정도는 그 사람의 신앙의 정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시금석과 같은 것입니다.

ii.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은혜를 드러냄(13, 14)
다윗의 기도에서 두번째로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과 은혜를 한껏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는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13). 그리고 참으로 놀라운 기도를 합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14).” 성경에 나오는 어떤 설명보다도, 어떤 고백보다도 은혜를 잘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그는 은혜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자기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최고/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렸는데, 정작 하는 말은 “나와 내 백성에게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는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이 백성들과 더불어 경험하고 있는 이 기적의 모든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드릴 수 있었던 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 고백이 있습니까? 이게 은혜입니다. 이게 은혜를 제대로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이런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이것은 죄인인 인간의 본성에서 자연히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 변화의 본질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영감으로 말한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에베소서 1:6입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예정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아들 되게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저 주신 바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너무나 영광스러운 그런데 우리에게는 거저 주어진 그 은혜를 찬미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에베소서 1장의 주석과 같은 역할을 여기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남은 모든 진액 마저도 다 하나님께 돌려드리고 싶어하는 심정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와 소유와 모든 것이 조금도 예외 없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은혜의 역사입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받은 증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드리면서도 드린다는 생각 보다는 받은 게 너무나 감사하여 그 마음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의무로 드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그것을 하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그거 해야 하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그리고 더 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증거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예루살렘 교회가 경험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나누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일입니다. 그 원인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성령의 역사에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는 삶으로 드러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죽음의 순간에 그것을 가장 멋지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증거는 물질의 소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C. 예배로 마치는 삶(21~22a)
기도를 마치고 다윗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송축할 것을 권하고 명합니다. 죽어가는 인간이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할 수 있는 이 보다 더 복된 말이 어디 있습니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라” 이튿날, 다윗은 하나님께 성대한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일천 마리의 수송아지, 일천 마리의 수양, 일천 마리의 어린 양과 전제를 드렸는데 이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린 풍성한 제물이었습니다. “온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풍성한 그림입니까? 이것이 역대기가 기록하고 있는 다윗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의 마지막은 예배였습니다!

D. 기쁨이 충만한 죽음(9,14,17,22)
역대상 29장을 정리하면 그것은 기쁨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은 왕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다 ‘즐거이’ 드렸다고 적어도 7번 반복해서 표현됩니다. 또 이 자체가 너무나 기뻤다고 적어도 4번 반복해서 강조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지막 시간은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했습니다(9). 기쁨이 충만한 죽음, 이것이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죽는 방식인 것입니다.

3. 잘 마친 삶(28; 히 13:7)
다윗의 삶을 정리해주는 한 마디 말이 성경에 덧붙여져 있습니다. 28절입니다.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다윗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때 결코 그를 본받고 싶고, 그가 걸었던 험한 길을 따라가고 싶은 생각이 자연히 들지 않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말이 참 험한 인생의 길을 걸어온 다윗이라는 인물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라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가 참으로 복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처음도 과정도 다 중요하지만, 마지막 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결말이 중요합니다. 수많은 위기가 그의 인생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잘 마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4. 은혜의 이야기: 주를 보라!
그래서 이제 다윗의 생애에 대한 일련의 설교를 마치면서, 정리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다윗의 이야기는 은혜의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나를 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보면 더럽고 냄새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주를 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인생에 찾아오신 그리고 오래 참으심으로 나를 만들어가신 주를 보라고 말합니다. 그 주님의 은혜는 먼저 죄를 이기게 하시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주의 은혜는 죄를 이기게 하실 뿐만 아니라, 죄를 이기는 은혜입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거룩을 이루게 하시는 은혜이기도 하지만, 그 은혜는 다윗이 범한 어떤 죄악 보다 더 커서 그 죄악을 삼키고 마는 스나미와 같은 은혜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의 인생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고 드러낸 삶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삶처럼 죄와 은혜를 잘 보여주는 삶이 있을까요? 그래서 다윗은 생애 마지막에 오늘 우리가 상고한 말씀에 있는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놀랍게 증거합니다. 자기의 최고/최상의 것을 드리면서도 내게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는 힘을 주셨으니 그게 감사하다고 말하는데서 그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고 것은 절정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놀랍게 찬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죽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죽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인생,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는 인생을 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으로 마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마치는 죽음을 죽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마치는 은혜를 철저하게 증거합니다. 이 은혜의 이야기는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주를 보라!”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 다윗은 죽어서도 말합니다. “주를 보라!” 은혜의 주님, 다윗을 만드신 주님을 보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의 생애도 은혜의 이야기로 만들어가실 것을 알고 그분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은혜를 증거하는 시간이 되는 것, 이것이 다윗을 통하여 주께서 하나님의 사람이 죽는 방식을 가르치는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