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Home > 설교말씀 > 다윗 (15). 하나님이 하신다

인물 강해설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다윗 (15). 하나님이 하신다

사무엘하 7:1-29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0-12-19

말씀내용
1. 영원한 언약은 다윗의 왕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약속이다.
작년 10월 18일 주일 아침에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했습니다. <언약과 구속> 시리즈 8번째로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이란 제목이었습니다. 이 풍성한 본문의 의미를 한 번의 설교로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년에 보았던 큰 맥락을 전제로 삼고 본문을 상고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의 왕국을 보게 하셨습니다. 다윗을 통해서 세운 왕국은 메시야 왕국의 그림자요, 상징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언약을 통해서 믿음의 눈을 열어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프레드리히 크룸마허의 말입니다. “다윗은 영적으로 솔로몬이 아닌 다른 아들을 바라보았고 돌들과 나무로 세워진 성전이 아닌 다른 성전을 보았으며, 그의 보좌가 위치한 지상 왕국 배후에 있는 다른 왕국을 보았다. 다윗은 자신이 시온산에서 받았던 왕의 홀과 왕관이 단순한 상징들이었음을 깨달았다.” 다윗은 죽는 날까지 이 언약을 통해서 주신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이후 왕들의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이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이루심을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위대한 본문 가운데서 한 가지 핵심을 붙들려고 합니다. 그것은 다윗이 그의 인생 가운데 배워야만 했던 중요한 일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이 깨달아야만 하는 진리입니다.

2. 성숙한 사람의 마음: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 20:35).
다윗의 삶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후 20여년 이상이 지나서야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왕도 예루살렘까지의 거리는 불과 10 Km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오는데에는 무려 20년이나 걸린 것입니다. 그는 이제 백향목 궁에 거하는 왕입니다. 이때 다윗의 마음에 든 생각은 하나님의 집을 지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 자체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여전히 천막 안에 있다는 것이 못내 불편했던 것입니다. 선지자 나단에게 이 말을 했을 때, 선지자의 마음도 기뻤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마음에 있는대로 행하라고 나단은 격려하였습니다. 사실, 늘 하나님께 이것을 달라, 저것을 달라고 구하고, 문제가 생길 때에만 나아오는 수준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은 때에,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낄 그 때에,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께 뭔가를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평안할 때,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던 어리석은 부자와는 달리, 다윗은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보는 것을 말할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나단이 아마 그랬을 것이고 그래서 바로 수락을 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런 마음을 기뻐하셨고 받으셨습니다(왕상 8:18).

3. 하나님의 응답: 거절
그런데 그 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의 계획을 거절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의 요지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해서 집을 지어준다구?”라고 물으십니다(5). “나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나를 위해서 좋은 궁을 지어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6~7).” “내가 목동에 불과한 너를 불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고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여 모든 전쟁에서 이기게 해주었으며 지금은 네 이름을 세상에서 아주 존귀하게 만들어주었다(8~9).” “전에 유리하던 때와는 달리 내가 이제 이스라엘에게 거처를 주어 안정된 삶을 살게 해주었다(10~11a).” “다윗아, 네가 나를 위해서 무슨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고, 사실 내가 너를 위해서 집을 지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11b).”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이 지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언약은 단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멀리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 그리고 그 메시야를 통해서 이루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한 당신의 건축 계획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즉, 이 하나님의 계획이 다윗의 건축 계획에 의해서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자기 마음에 품은대로 화려하고 멋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다면, 예루살렘은 다윗의 성전 건축에 모든 정신을 쏟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시는 이유입니다. 백성들이 보아야 하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백성들을 위해서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자들은 이 사실을 깨달아야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사람의 위기: 하나님 충만에서 자기 충만으로 넘어가는 순간
유진 피터슨은 이때가 다윗이 하나님으로 가득했던 상태에서 자기 자신으로 가득한 상태로 넘어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고 지적합니다. 이것이 언제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위기의 순간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는 하나님께 의존해서만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힘이 생겼고,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권위도 있습니다.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하나님을 의존하고 살아가고 하나님으로 충만하다가 이제 자기를 믿으려는 마음이 들어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영적 위기입니다. 이제 뭐가 됐다고 생각하게 될 때가 위기입니다. 하나님 충만에서 자기 충만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기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신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 분은 장로가 되더니 사람이 바뀌더라”는 말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바로 다윗이 여기서 경험하는 위기와 동일한 위기를 바르게 대응하지 못할 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목사라는 직분이 때론 어떤 대우를 받게 합니다. 이것이 자신을 착각하게 만드는,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다”는 동기 자체로는 흠잡을데 없이 선한 것이지만, 그것이 키워낼지도 모르는 악한 열매를 사전에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위해서 뭘 하겠다고? 과연 그런 사람이 있었나? 내가 너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네가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란다.”

언제나 이런 위험이 존재합니다. 그 위험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생각하고 계획을 하지만, 그 생각에 너무나 사로잡히는 바람에 하나님 자신을 잊어버리게 되는 경우입니다.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교회당을 건축한다고 하지만, 정작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하나님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위험입니다. 교회 일에 열심이면 열심일수록 넘어지기 쉬운 위험이고 위기입니다. 사람이 선한 일에 열심을 낼 때 그리고 그 일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인정하고 박수 갈채를 보내주기 시작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신앙이란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더욱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를 의지하게 되어야 하는데, 정작 그렇지 못한 경우를 너무나 많이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할수록 더욱 절박하게 주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살아야 하는데 거꾸로 ‘이제는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거꾸로 가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매우 조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5. 거절을 받아들이는 태도: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라(18).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의 제안을 거절하시자,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18). 이 말은 언약궤가 있는 곳으로 가서 앉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정말 위대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고맙다. 지어라” 하셨으면 다윗은 바로 일어나서 건축을 위한 준비와 모든 명령을 시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절 응답은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앉게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일 때,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사울의 생명을 귀히 여길 때 보다 더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선한 제안을 거절하시고 하나님의 의도를 나타내 보여주실 때, 다윗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시험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험은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다윗은 멈추었습니다. 자기가 뭔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려던 계획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들어가 앉았습니다.

우리가 많이 경험하게 되는 문제는 너무나 바쁘다는 것입니다. 목사도 바쁘고 장로도 바쁘고 온 교인이 바쁘고 교회 전체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바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바빠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잘못된 하나님 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내가 바쁘게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만 하나님께 죄송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수동적으로 움직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나태한 것을 조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한 위대한 행동의 의미를 우리가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왕은 어느 누구보다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때로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 동의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앉아있게 되면 우리가 일으킨 그 많은 먼지가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열정보다 더 큰 열정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정을 가지시고 세상을 돌리고 계시다는 것을 비로소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똑똑해서 세운 계획대로 특유의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고 일을 한 것처럼 보였는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앉아있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의 계획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탁월하고 치밀하고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앉음으로써 자신이 자기의 권위와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왕이기를 내려놓는 대신, 자신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 그리고 그분의 주권 앞에 순종하는 왕이 되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실로 위대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왕,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왕, 그가 다윗인 것입니다.

6. 기도: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그가 무슨 기도를 했는지 압니다. 본문 19~29절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의 내용입니다. “나 같은 자가 어떻게 여기 왕위에까지 이르게 되었는가?”를 다윗은 묻습니다(18). 다윗은 하나님과 같이 광대하시고 참되시며 큰 일을 이루시는 분이 어디 계신가 물음으로써 하나님을 찬송합니다(20~22). 하나님과 같은 분은 어디에도,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말합니다(23).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고 하신 말씀을 언급하면서 이제 자기는 이것을 자기 기도의 제목으로 삼겠노라고 말합니다(27). 그는 마지막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은혜만이 자기 집(왕국)을 영원히 복을 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린 것이라고 고백하고,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뭘 한다”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될 것입니다.

7. 장로장립에 관한 적용과 교훈
저는 오늘 장로장립예배에 전할 말씀을 별도의 관련 본문을 선택하는 대신 다윗 시리즈의 순서대로 하기로 결정을 했는데, 이 본문이야말로 오늘 장로로 임직을 받으시는 두 분과 우리 모두가 들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장로로 임직받으시는 두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장로가 되었으니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겠다고 생각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주실 줄 압니다. “네가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위해서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한다면 사람들은 네가 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보아야 할 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는 두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는 것처럼 복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 메시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도록 섬기시는 두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두 분 장로님이 세워짐으로써 온전한 교회가 되는 죠이선교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함께 간직해야 할 교훈은 무엇입니까? 역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혹시라도 “이제 장로님 두 분이 세워졌으니 교회 일은 잘 돌아가겠구나. 이제 장로님들이 나서서 앞장 서서 모든 일을 다 열심히 하시겠지” 라고 생각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장로님들께 일을 맡기고 우리는 이제 팔짱 끼고 있으면 되겠지”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로님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우리 모두가 쓰임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할 때, 이것은 우리 모두의 나태함과 수동성을 부추기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기에 그 누구보다도 열심으로 자신의 생애 전부를 드려서 성전 건축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성전 건축에 대한 준비를 할 때 다윗이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며, 그러기에 그 일 자체에 사로잡혀서 하나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디 다윗 뿐입니까? 아닙니다. 다윗의 주변에 수많은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다 함께 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게 된다면, 백성들 또한 하나님이 하시는 거룩한 일에 자신의 생명 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장로님 두 분을 세우는 일이 그렇습니다. 작년에 우리들이 투표로 선출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은 너희가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세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았기에, 두 번이나 사울의 생명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세웠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모두가 그것을 알기를 바랍니다. 장로로 세움을 받으시는 두 분 뿐 아니라, 우리 모든 교우들께서 그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신비한 방식으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욱 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시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왕국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그 나라는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또한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께 속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분의 장로님께서 지나친 부담에 눌리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분은 교회를 유지하고 성장시키도록 부름을 받지 않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치는 장로인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듯이, 이제 두 분의 장로님께서는 떨어진 말씀이 여러 양무리의 심령과 생활 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지를 살피며 물을 주고 돕는 역할을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 속에서 우리는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여러분 중의 유력한 어떤 분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