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Home > 설교말씀 > 요한일서 강해 (24) - 영을 분별하십시오(2)

권별 강해설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요한일서 강해 (24) - 영을 분별하십시오(2)

요한일서 4:1-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08-14

말씀내용
2. 분별의 기준(2~3)
구약의 사례에서 잠깐 언급되었지만, 여기서 사도는 분별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2절에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 혹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은 출처와 기원이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반대의 경우는, 본문에 다양하게 반복되는 바, ‘적 그리스도의 영’(3), ‘세상에 속한’(5), ‘미혹의 영’(6)입니다. 분별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라는 말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를 입으심을 고백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이 아니라 적 그리스도의 영입니다(3). 이 서신의 독자들은 이미 귀가 따갑게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해서 들어왔습니다(2:18). 사도는 지금 적그리스도라는 말로써 교회를 어지럽혔던 영지주의 분파인 가현설 이단자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를 뒤흔들고 교회로부터 나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된 육체를 입으실 수 없으므로, 예수라는 인물의 수세 시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셨다가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기 전에 영이 떠났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처럼 잠시 보였을 뿐(가현), 실제로 육신을 입으셨거나 육신을 가지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이들을 다른 교리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고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사역과 깊이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을 설명하실 때, 그 가장 중대한 사역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5:26; 16:14).” 그래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2:3).
오늘날 성령 사역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소위 다 ‘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는, 이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주의 말씀대로, 영을 다 믿지 말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 분별 기준이 무엇입니까? 그 성령 사역이라 불리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성경대로 선명하게 드러내고 높이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별의 기준입니다.
2:18~23에서 사도는 이미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가의 여부를 적그리스도 분별의 기준으로 제시하면서,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다고 말했습니다(2:23). 그런데 여기서는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성령의 영감을 받지 않은 것이므로, 그에게는 성령이 없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르게 말하지 않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성령님도 계시지 않은 것입니다.

3. 염려 말고 그 말씀만을 따르라(4~6)
사도는 이제 서신의 독자들을 ‘자녀들아’라고 부르면서 위로합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 보다 크심이라”고 말합니다(4). 분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속했고, 적그리스도를 이긴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기었나니’라는 말은 결정적 승리가 이미 성취되었고 현재까지 그 효과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완료형 시제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사실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싸운 싸움이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싸우신 싸움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당신의 죽으심으로써 죄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을 죽이신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5~57).”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김은 그들의 강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하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의 강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복음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4~6절에는 흥미로운 인칭 대명사의 변화들이 보입니다. 4절에 ‘너희’, 5절에 ‘그들’ 그리고 6절에 ‘우리’가 나옵니다. ‘너희’는 모든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그들의 말을 듣느니라”고 했으니,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며,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라고 했으니 ‘우리’는 사도들과 사도들의 복음과 가르침을 계승한 참된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여기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 사이의 중요한 차이가 보입니다.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이로써 세상은 자기 정체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2:15~17에서 언급한 세상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고 세속적인 방향을 향하여 가는 체제, 정신, 마귀의 영향력 아래서 번창하는 악한 체계와 정신과 관습과 그 모든 것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 임금입니다(요 14:30; 16:11). 세상 곧 마귀의 자녀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의 말을 듣습니다. 세상은 ‘우리’ 곧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는 ‘이로써 아느니라’고 다시 한 번 선언합니다. 여러분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에 반응하십니까? 참된 말씀에 반응하십니까, 아니면 혹하게 하는 거짓 말씀을 기웃거리며 거기에 반응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하나님께로서 온 영인지 적그리스도의 영인지 또는 진리의 영인지 미혹의(미혹하게 만드는) 영인지 분별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종과 세상에 속한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십니까?

4. 적용과 교훈
A. 분별은 모든 신자의 의무다.
분별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입니다.사도 바울은 한곳에서 영들 분별함을 특별한 성령의 은사로 묘사하기도 하지만(고전 12:10), 이것은 또한 모든 신자에게 요구된 피할 수 없는 책무이기도 합니다.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말씀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살전 5:21)! 종교개혁자들이 바르게 주장했듯이, 아무리 연약하고 비천한 신자라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을 전하는 자를 분별할 개인의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까다로운 사람이나 의심대장들로 만드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우리는 까다로운 의심대장이 되지 않고 신실하고 따뜻한 성도로서 분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베뢰아 사람들이 그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행 17:11)” 사람들이었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열린 마음으로’ 혹은 ‘트인 마음으로’라는 뜻입니다. 까다로운 마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받은 말씀을 성경을 통하여 더 확실하게 알고자 연구하고 공부했습니다. 이 과정이 분별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교회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자라다 보면, 우리는 점점 더 참된 것과 거짓된 것,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자연히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바라고 기대하는 바입니다.
혹시라도 은사나 신유나 어떤 체험적이고 초자연적 현상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덥썩 믿어버리는 잘못을 행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사탄이 능력, 표적, 거짓 기적을 다 베풉니다. 거기에 속아 멸망하는 자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왜 미혹을 당합니까?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고 말합니다. 기준은 다시 진리입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라는 말은, 데살로니가후서 2:11~12에서 뜻이 명확해집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미혹을 당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믿고 진리를 사랑하는 대신 불의와 세상을 사랑합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라는 말은 ‘진리를 사랑하기를 거절했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열심이 없고, 배우기를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얼마나 열정적인가는 분별의 기준이 아닙니다. 진실함도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가 기준입니다. 가르치는 교훈이 성경에 부합하는지를 살피십시오. 경험이나 환상을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성령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성령님만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성령님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 적그리스도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B. 오직 진리에만 반응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신학과 교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참 위험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가 많은 시대를 삽니다. 심지어 신학과 교리는 없이, 말씀만 가르친다는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조명하시면 진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게 합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면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면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게 하고 그분을 더 사랑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영을 분별하고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길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오직 진리에만 반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라는 복된 영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 예외 없이 이 복된 은혜를 누리게 하시기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