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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별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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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강해 (23) - 영을 분별하십시오(1)

요한일서 4:1-6 / 김형익 목사 / 주일오전설교 / 2016-08-07

말씀내용
1. 분별의 문제(1)
우리는 3:10~24에서 사도가 말한 것을 바탕으로 4:1~6의 말씀을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서 사도는 형제 사랑으로써 우리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안다고 말했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또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계심을 확신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어떤 사람인지 좀 더 말해야 했고 특별히 성도들이 어떻게 참된 하나님의 자녀를 분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영들을 분별하라는 명령이고,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영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마귀로부터 온 것인지 분별하라는 말입니다. 사도는 한 번은 부정적 명령으로, 한 번은 긍정적 명령으로 표현합니다. “영을 다 믿지 말라”는 것은 부정적 명령이고,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는 것은 긍정적 명령입니다. 영적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고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영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가 필요합니다마는, 일단 초자연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능력과 기적, 치유와 방언 같은 초자연적 현상들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보고 경험했다는 이유로 쉽게 믿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보고도 안 믿는가?”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눈으로 본 것은 다 믿어야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신앙 생활은 분별이라는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분별은 모든 시대, 모든 신자에게 요구되는 본질적 의무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에덴 동산에서 뱀이 하와에게 말을 걸었을 때, 하와는 분별했어야 했습니다. 분별에서 넘어지면 다 넘어집니다.

A. 아합 왕의 시대(왕상 22)
구약 역사에서도 우리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아합 왕이 다스리던 때, 아합은 남왕국 유다의 여호사밧과 동맹하여 길르앗 라못을 치고 싶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한지 묻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아합은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을 불러서 묻습니다.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그런데 경건한 왕인 여호사밧은 어쩐지 찜찜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외에 우리가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 라고 아합에게 묻습니다. 아합의 대답은 솔직합니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 결국은 미가야를 부릅니다. 400명의 선지자 중에 시드기야는 철로 뿔들을 만들어 아합이 길르앗 라못의 아람 사람을 진멸하는 것을 행위 예언으로 보여주고 모든 선지자도 올라가 승리를 얻으라고 재촉합니다. 미가야가 도착하자 아합이 그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미가야가 대답합니다.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아합은 이 말이 미가야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결국 미가야가 말합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은 양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에게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아합이 전쟁에 나가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 누구의 말이 옳습니까? 숫자로는 400:1 입니다. 결국 아합과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갔고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전사합니다. 그들은 분별하지 않았고 듣지 않았습니다.

B. 유다 말기(렘 6:14; 14:14~16; 28:9; 신 18:22; 13:1~3)
선지자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유다 말기는 어떻습니까? 많은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말했고 백성의 치명적 상처를 가벼운 상처라고 말해주었습니다(렘 6:14). 하지만 예레미야는 입만 열면 유다가 바벨론에게 패망할 것이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바벨론에 항복하고 순순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살라고 말합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분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렘 14:14~16).” 평안을 전한 선지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분별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렘 28:9).” 말의 성취 여부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도 같은 것을 말합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그런데, 만일 선지자가 말한대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아신 하나님께서 분별의 기준을 더 상세하게 주십니다. 신명기 13:1~3입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말한 대로 이루어졌다 해도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우리 관심을 모은다면 그것은 가짜라고 것입니다. 모든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해야 하고 이것은 율법에 나타난 하나의 중요한 분별 기준입니다.

C. 예수님(마 7:21~23)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분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주의하려면 그들을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은 열매로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열매는 겉으로 하는 종교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D. 사도들(살전 5:21; 벧후 2:1; 유 3~4)
사도들도 모두 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했습니다(살전 5:21). 사도는 여기서 예언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언이라고 다 믿을 것이 아니라, 테스트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경고했습니다(벧후 2:1). 유다서를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3~4).”
사도들의 권면뿐 아니라, 서신서들의 내용은 초대교회가 얼마나 많은 거짓 교사들로 인해서 혼란을 겪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만이 아니라, 2000년의 교회 역사는 이단들의 역사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수많은 이단들이 발흥했고 사라져간 역사입니다. 하지만 늘 새로운 이단 사상이 새 옷을 입고 출현해왔고, 한국교회의 짧은 역사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즈음, 우리가 겪는 바, 신천지가 교회를 어지럽히는 상황에서만 분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신자들이 이 싸움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이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