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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별 강해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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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52) - 천로역정2 (녹음 없음)

민수기 33:1-49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7-03-08

말씀내용
민수기 강해가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민수기 10장을 강해하던 18번째 설교의 제목이 천로역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룰 33장의 본문에서도 더 좋은 제목을 붙일 수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천로역정(2)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실 민수기 강해 전체의 제목을 민수기의 히브리어 이름 그대로 ‘광야에서’라고 붙였는데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천로역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의 문맥과 대략
먼저 오늘 우리가 상고할 본문이 속해있는 문맥을 간단히 일별하는 것이 유익하겠습니다.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에 출애굽의 지난 여정을 소상하게 적은 것으로 모세오경에서 가장 자세한 출애굽 여정의 기록입니다. 3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실 가나안 땅의 경계를 상세하게 동서남북으로 확정해주는 내용과(1~15) 기업을 나눠줄 때 책임자들을 선정해주시는 내용이 뒤따릅니다(16~29).
33장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49절에서는 출애굽 여정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쳤던 장소 42곳의 지명을 밝히고 있고 50~56절은 가나안을 정복하고 또 거기서 살아갈 때의 지침과 함께 그 땅을 제비 뽑아 지파별로 나누는 원리를 제공합니다.
오늘 우리는 33:1~49을 본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고하겠습니다.

모세의 심정
33~34장이 민수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은, 이제 곧 있게 될 모세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부터 여기 요단강 건너로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였습니다. 그 40년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수많이 사람이 죽었습니다. 최소한 60만명 이상이 40년 동안 광야에 묻혔습니다. 그 40년은 광야를 걸은 백성들에게나 특별히 모세에게는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앞둔 모세는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9~12).” 그는 실로 하나님의 노여움의 능력과 진노의 두려움을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천로역정도 그렇습니다. 모세의 고백처럼 수고와 슬픔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지난 40년의 여정을 기록할 때, 모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리 대부분에게는 낯선 지명들이지만, 모세가 이 지명을 하나 하나 기록할 때에는 우리가 읽는 것과는 매우 다른 심정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이 다 기록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장소 하나를 기록할 때면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떠오르지 않았겠습니까?

애굽에서 모압 평지까지
본문은 출애굽 노정에서 진을 쳤던 장소 42곳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는 약간의 특징이 있습니다. 먼저 1~15절에서는 진을 쳤던 장소의 이름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있었던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간략한 해설이 함께 나옵니다. 이 본문은 애굽의 라암셋에서 시내광야까지의 여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을 지내고 1월 15일에 출발해서 3개월이 걸려 시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출 19:1). 성경에서 이 기간에 관한 내용은 출애굽기 12장에서 민수기 10장까지로 가장 많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여정의 두번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16~36절은 단순하게 거쳐간 지명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지명에 얽힌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없습니다. 여기에는 확인이 불가능한 지명들이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사실상 정확하게 이스라엘의 출애굽 노정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부분은 37~49절입니다. 여기서는 첫 부분(1~15)처럼 역사적 사실들도 지명과 함께 더러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지명들은 대부분 확인이 가능한 지역들입니다. 특기할 사항은, 민수기 20장에 아론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아론의 죽음의 연대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었지만, 여기서는 아론이 출애굽한지 40년째 5월 1일에 죽었으며 그때 그의 나이가 123세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38~39). 이 부분은 민수기 20~22장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자취들
자, 이 출애굽 노정의 기록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모든 성경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로 어떤 유익을 얻게 하시려고 성령님께서 모세를 감동하여 이것을 쓰게 하셨을까요? 33장의 본문이 기록된 신학적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기록은 이스라엘의 천로역정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모세의 천로역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라암셋을 출발하던 날은 애굽 백성들이 지난 밤에 죽은 자신들의 장자를 매장하는 날이었습니다(4). 애굽 전체가 울음으로 가득할 때 그들은 나왔습니다. 그들은 도망치듯이 나온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애굽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나왔습니다(3).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난 까닭이었습니다. 40년 전의 라암셋이라는 지명을 쓰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크신 일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알스본 앞 비하히롯으로 돌아 믹돌 앞에 진을 쳤다고 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 앞에는 홍해 바다가 있었고 뒤에서는 애굽의 바로가 선발된 병거 600대와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쫓아왔습니다(출 14). 진퇴양난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전무후무한 큰 구원을 행하셨습니다. 그들은 ‘바다 가운데를 지났습니다(8).’ 단순히 ‘바다 가운데를 지나’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일을 기록하는 모세의 가슴은 쿵쾅거렸을 것 같습니다. 라암셋을 출발할 때 보다 더 놀라운 구원의 역사, 바다가 갈라지고 바다를 육지처럼 건너는 역사를 그들은 경험했습니다. 모세는 신실하신 하나님, 구원한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일 후 3일 길을 걸어 마라에 이르렀습니다(9). 사흘 동안 물을 얻지 못한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출 15:22~24). 백성의 감격과 기쁨의 유효기간은 3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무를 던져 넣음으로써 마라의 쓴 물을 단 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닙니까?
그들은 마라를 지나서 엘림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로 마라를 지나게 하시지만, 또 때로는 엘림에도 이르게 하셔서 위로와 쉼을 얻게 하십니다. “엘림에는 샘물 열둘과 종려 칠십 그루가 있으므로(9).” 엘림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시는 쉼터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금과 같이 연단하시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불 속에서 연단하기만 하시는 무자비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아버지십니다. 우리의 천로역정이 고단한 여정일지라도 이 여정에는 분명히 엘림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들은 신광야에 이르렀습니다(11~12).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한지 정확히 한 달이 되었을 때였습니다(출 16:1). 그들은 또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고기를 배불리 먹고 싶다는 불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그들에게 고기와 떡을 주셨습니다. 메추라기와 만나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신광야의 하나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르비딤이라는 지명을 주목하게 됩니다(14). 여기서 백성이 또 다시 불평한 것은 마실 물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식으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주심으로 모든 백성과 가축으로 마시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깨어지심으로 백성을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은혜를 계시하신 사건입니다. 백성의 죄악은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닙니까?
그들은 시내 광야에서 무려 1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16).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고 성막을 짓게 하셨으며 제사장과 레위인을 구별하여 세우셨습니다. 이곳에서는 영광도 있었지만, 형 아론을 위시하여 백성의 장로들이 주도적으로 범했던 금송아지 숭배 사건과 그로 인하여 3000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모세는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또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뵙는 생애적 은혜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출 33~34).
모세는 이어서 기브롯핫다아와를 기록합니다(17). 이야기는 훌쩍 뛰어넘어 민수기 11장으로 갑니다. 다시 백성들은 고기를 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들은 만나가 지겹다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그때 백성의 불평과 원망에 전염되어서 그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불평을 쏟아 놓았었습니다. 모세도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모세는 그때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 하나님께서는 바람을 불게하여 어마어마한 양의 메추라기를 보내 상상도 할 수 없는 큰 식탁을 광야에 베푸셨습니다. 하지만, 고기가 그들의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사 큰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탐욕으로 죽임을 당한 가족들을 묻은 곳이 기브롯 핫다아와였습니다.
신광야의 가데스에서는 모세의 누이 여선지자 미리암이 죽어서 묻혔습니다(36: 민 20:1). 이뿐 아니라 이 지역의 므리바에서 백성은 다시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민 20:2~13). 모세는 이때 아론과 함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백성을 향해 노를 발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데 실패했습니다. 이 일로 아론과 함께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40년을 잘 지내온 모세의 크나 큰 잘못이었고, 이 지명을 기록하는 모세는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선언대로, 40년간 모세와 함께 했고 또 모세가 의지하기도 했던 형, 최초의 제사장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었습니다(38~39). 모세는 이곳을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다른 성경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는 많은 지명들을 거쳐서 가나안 남방의 아랏 왕에 대한 이야기를 만납니다(40). 이때 처음에는 아랏 왕이 이스라엘을 쳐서 몇 사람을 사로잡기도 했었습니다(민 21: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기까지 치게 하셨습니다.

교훈과 적용
이 본문을 살피면서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이 광야의 여정 40년을 우리는 얼른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목적지가 분명한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 속에서 언제나 목적지가 분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우리 인생에서도 그런 것을 동일하게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천로역정 40년을 통과한 백성들은 이제 드디어 요단 강 건너에 그 땅을 바라보고 있고, 모세는 그 땅을 바라보면서 40년의 여정을 회상합니다.
너무나 많은 불순종이 있었습니다. 뼈아픈 실패와 죄악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모든 실패와 불순종과 죄악을 지나 지금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기록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가 언젠가 임종의 침상에서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에게도 마라가 있고 르비딤이 있으며 기브롯 핫다아와와 같은 지명들과 사건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므리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덮어 주셨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여기까지 인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쉽게 사라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이미 하나님의 기억 속에서는 다 도말하여 버린 잊어버린 사건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만날 것입니다(사 43:25). 우리는 마라의 물을 달게 한 나무, 신 광야에서 깨어짐으로 물을 낸 반석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임종의 침상을 지나 그 사모하는 은혜의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천로역정은 온갖 죄악과 실패와 불순종으로 얼룩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 현재 여러분은 여러분이 처한 상황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이 수도 없이 그렇게 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덮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우리를 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이 죄를 덮는 은혜의 여정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불평과 원망을 찬송과 감사로 바꾸어내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드렸던 그 어떤 찬송 보다 더 깊은 찬송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게 될 것입니다. 오, 그날의 영광스러움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같이 비천한 인생을 그토록 오래 참아주신 하나님의 은혜, 약속하신 것을 어김 없이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천로역정 인생을 돌아보면서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심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여러분의 마지막이 이처럼 영광스럽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은혜를 사모하면서 함께 이 천로역정을 가십시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우리는 서로를 참아주면서, 서로를 포기하지 말고, 서로를 사랑함으로 이 천로역정을 함께 걸어가십시다. 그 은혜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우리를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