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Home > 설교말씀 > 민수기 강해 (47) - 절기들

권별 강해설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밴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 블로그 보내기

민수기 강해 (47) - 절기들

민수기 28:16~29:40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7-01-18

말씀내용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절기와 기념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의 사이클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들로,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일,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초하루 또는 월삭, 1년에 한 번 돌아오는 절기들인 유월절과 무교절, 칠칠절, 나팔절(신년축제), 속죄일, 장막절 등이 있습니다. 이중에서 유월절, 칠칠절, 장막절을 이스라엘 3대 절기라고 부릅니다. 이때에는 모든 이스라엘의 남자는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와 하나님을 뵈어야 했습니다. 이 기회에 특별히 이스라엘의 3대 절기를 제대로 정리하는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어떤 의미에서 이 3대 절기들을 제정하셨고 지키라고 요구하셨는지를 상세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유월절/무교절
먼저 유월절과 무교절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절기로 종종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구분 없이 사용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밤에 애굽에서 나왔고, 이어지는 7일이 무교절이었습니다. 유월절이 구원의 사건을 보여준다면 무교절은 성도의 성화를 보여줍니다. 무교절을 지키는 7일은 신자의 전 생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완전수입니다. 무교절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의 주변에서 누룩을 제거해야 했고 누룩이 없는 빵인 무교병을 먹었습니다.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이 없다는 것은 죄와 단절된 삶을 의미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을 구분하여 좀 더 살펴보지요.

A. 유월절: 구원을 기념함
애굽에서 나오던 첫 유월절의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각 가정 마다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하셨고 그 밤에 서서 급히 양고기를 먹고 애굽을 떠날 것을 명하셨습니다. 죽음의 사자는 양의 피가 발려진 모든 집을 건너 지나갔고(pass over) 양의 피가 발려지지 않은 모든 집의 장자와 짐승의 초태생을 멸하였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건너갔다는 의미에서 유월절, 영어로는 Passover 라고 불립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에서 1월 14일로 제일 먼저 오는 명절입니다. 유월절이 제일 먼저 오는 절기라는 점은 그들의 시작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에 기인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와 삶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그들의 오늘을 설명해주는 것은 유월절에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념하라고 하실 때,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기념함으로써 자신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날 다 죽었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의 장자는 그날 밤에 다 끊어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은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린양의 피를 보고 그들을 넘어갔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월절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구원받은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가 구원받은 사건, 그것은 내가 구주를 영접한 날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날입니다. 그 사건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내가 믿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셨고 그 피가 흘려짐으로 그를 믿는 모든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그를 넘어갔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신자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십자가에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 순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사는 한, 그는 겸손할 것이고, 그의 입에서 불평이 사라질 것이고, 그는 모든 환난을 견디고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원의 은혜를 망각하기 시작하면 그는 자신을 신뢰하는 교만에서 결코 자유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월절은 구원을 기억하고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B. 무교절: 성화의 의미를 기억함
두번째로 무교절과 관련해서 생각할 교훈이 있습니다. 유월절은 한 날이지만, 무교절은 7일 간 이어지는 기간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교절이 유월절로 시작하는 까닭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과 무교절이란 말을 혼용하곤 했습니다. 무교절에 먹는 무교병은 누룩 없는 빵입니다. 누룩은 성경에서 한 번의 예외를(마 13:33) 제외하면 언제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누구나 유월절 전에 집에서 모든 누룩을 제거해야 했습니다(출 12:15). 누룩은 부패와, 죄성이 가지는 무서운 전염력을 상징했습니다. 유월절로 시작된 구원받은 신자의 삶은 누룩 없는 삶, 거룩한 삶을 요구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들이 받은 구원의 의미를 생각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바울 사도가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고 명했다는 것을 아십니까? 고린도전서 5:6~8을 보지요.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8절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는 명절은 무교절입니다. 사도는 7절에서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유월절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무교절을 지키자고 말합니다. 물론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는 방식대로 지키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는 무교절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그것을 기념하라는 것입니다.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 무교병으로 지키자”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거룩함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이 세상의 방식에서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지켜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는 삶의 성화를 가르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에서 시작되어(중간에 쉼이 없이!) 7일 동안(이것은 온전함, 완전함을 뜻하는 상징이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제 온전하게 무교절을 지키는 삶임을 증거합니다) 무교절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의 삶을 살도록 그 부르심을 상기시켜 주십니다. 이것이 무교절의 의미입니다.

2. 칠칠절/오순절/초실절/맥추절
이제 칠칠절을 살펴보지요. 칠칠절은 유월절을 지내고 일곱 안식일을 지낸 뒤 50일째를 가리키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불립니다. 이외에도 유월절에 보리추수를 시작하여 50일간 보리추수를 완료했기 때문 맥추절이라고도 불립니다. 보리 추수를 완료하고 그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린다는 점에서는 (맥추의) 초실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절기입니다.

A. 맥추절?유교병을 드림(레 23:17)
맥추절은 영어로 the feast of harvest 니까 추수의 기쁨과 감사가 있는 절기입니다. 이것은 첫 보리 이삭을 바치고 50일이 되어 보리 추수가 완료되는 날 즉, 낫을 처음 댄 날에서 50일이 되는 날입니다. 이제 보리 추수가 완료되어 그 많은 수확과 결실을 드리는 풍성함의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이 때만큼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누룩이 있는 유교병을 드렸다는 점이 매우 특이합니다(레 23:17).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각기 고향에서 새롭고 좋은 누룩을 넣은 두 덩어리의 밀가루 빵을 가지고 성소에 와서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과 함께 드리면 제사장이 주 앞에서 흔들어 드리게 되어있었습니다(레 23:17~20). 왜 맥추절에는 누룩을 넣은 유교병을 드리도록 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신다는 것을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룩이 섞여 있는 삶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받아주시는 것은 그 누룩 섞인 빵과 함께 드려지는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소 한 마리, 숫양 두 마리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맥추절의 이 특이한 제사를 통해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떤 은혜로 하나님께 용납을 받은 존재인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유교병을 드리는 맥추절의 제사는 신약의 성도들로 하여금 “너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명령입니다.

B. 초실절-부활의 첫 열매로 마지막 부활을 소망함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맥추절은 초실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초실절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가 있는데, 레위기 23:9~14의 본문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나누어집니다. 분명히 이 본문은 무교절에 행할 일로써 주어지는 명령인데, 10절에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따라서 견해가 나뉩니다. 비록 막 여물기 시작한 곡물의 첫 이삭이지만 이것을 첫 열매로 보고 초실절이라고 한다면 초실절은 무교절의 한 날과 겹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본문이 가리키는 초실절은 무교절 기간과 겹치는 첫번째 초실절입니다. 그러나 곡식이 완전히 익어 추수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점에서, 맥추절이 초실절로 불리는 것은 합당하고 이것을 두번째 의미의 초실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 참 아름답고 귀한 일입니다. 과거에 한국 교회에 ‘성미 제도’도 일종의 첫 열매 개념이었습니다. 밥을 지을 때, 주부가 첫 공기는 하나님께 떼어둡니다. 그렇게 모아진 쌀을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바치곤 했습니다.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앞으로 수확하게 될 모든 이삭이 다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첫 열매라는 말은 독특하게 우리 구주께 사용되었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말은 앞으로 그 첫 열매처럼 다른 모든 열매들도 잘 익을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은 다 주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활로써 확증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과 영광의 부활로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 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부활하여 영광의 주님을 맞을 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라는 부르심과 명령이 바로 이 초실절의 의미입니다.

C. 오순절-마지막 추수의 시작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고 있는 칠칠절이 신약 성경에서는 주로 오순절이라고 불리는데 여기서 잊어버릴 수 없는 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주님께서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후, 50일이 지나 오순절이 왔을 때 약속하신대로 주님은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교회에게 부어주셨습니다(행 2:33).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위대한 영적 추수가 일어났습니다. 남자들만 무려 3000명이 그 날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맥추절이 보리 추수의 절기라면, 신약에서 오순절은 영적 추수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심으신 것을 이제 모든 열방 가운데서 열매로 추수하기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날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은 모든 열방으로부터 그 열매를 거두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 열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마지막 추수가 이미 시작되었고, 낫이 이삭에 놓여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칠칠절, 오순절의 의미입니다.

D. 하나님의 공급하심
칠칠절의 의미는 풍성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현실, 죄를 정복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언제나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여물기 시작한 첫 이삭을 드리던 때가 있지만, 어느 새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너무나 풍성하고 넘쳐서 전체를 수확하게 된다는 것을 칠칠절은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칠칠절은 구원의 은혜를 지나 모든 삶에서 은혜를 풍성히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3. 장막절/수장절/초막절
이제 세번째로 장막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장막절은 유월절을 지내고 7개월이 지난 가을에 맞는 절기였습니다. 이 절기는 추수를 완료하고 추수한 곡식을 거두어 창고에 저장하는 것을 기념하는 기쁨과 감사의 절기였기에 수장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절기입니다. 또 다른 이름인 초막절은 사실상 장막절과 같은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보냈던 40년의 광야를 추억하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그런 광야의 천막 생활을 하지 않지만, 그 때 조상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40년을 은혜로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초막절 8일 동안을 집에서 나와 천막을 치고 생활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현대의 수양회에 비견할 만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A. 감사와 기쁨의 예물 드림
장막절은 그야말로 감사와 기쁨의 절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켜주셨듯이, 자신들의 삶도 지켜주셨다는 것을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맥추절에서도 감사했지만, 장막절을 통해서 진정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더욱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맥추절에서의 은혜와 감격을 훨씬 넘어서는 은혜와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이 결코 한 번의 은혜, 한 번의 축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큰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은 더 큰 축복으로 우리를 데리고 갑니다. 장막절에는 연중 가장 많은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이점에서 장막절은 가장 풍성하고 가장 화려한 절기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3대 절기에는 “빈 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6:16~17). 예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궁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자기 자녀들에게 감사를 가르치십니다. 너희가 지금 누리고 사는 그것이 어디서 온 것인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실상 말로만 감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 절기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오면서 그렇게 해야 했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감사와 기쁨을 물질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장막절이었습니다. 추수를 마치고 많은 것을 저장해 놓았고 물질적으로 가장 풍성한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장막절에 대한 본문이 민수기 28~29장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B. 죄와 죄성의 인식
그러나 우리가 장막절에 보게 되는 아주 특이한 사항은 장막절의 8일 동안 드려지는 제물의 숫자를 하나님께서 자세하게 지시하셨다는 점입니다. 민수기 29장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첫날에 13마리의 수송아지, 2마리의 숫양, 14마리의 일 년 된 숫양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해서 그 장막절에 바쳐야 하는 제물의 수효는 도합 수송아지 71마리, 숫양 15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105마리, 염소 8마리였습니다. 이 제물의 수효는 장막절의 풍성함을 드러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과 기쁨과 감사의 뒤에는 우리의 죄와 죄성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행복은 누릴만한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쁨과 감사는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제사가 없이 주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리는 삶의 모든 행복과 기쁨은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누릴 수 있게 된 즐거움이요, 영광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은혜입니다. 장막절의 기쁨은 무수하게 드려지는 매일의 제사를 통해서 주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 구약의 복음
필립 라이큰은 이 3대 절기를 가리켜 모세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복음은 바울 사도가 전했던 복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현실에서 동떨어진 복음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그들의 삶의 중심에 자리한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이 그들의 삶을 형성하고 규정해주었습니다. 그들의 존재의 출발은 유월절에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매 유월절마다 그 구원의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삶은 거룩한 삶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무교절에 무교병을 먹으면서 그 부르심을 기억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화의 원천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을 뿐 아니라, 추수의 주인이십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지시고 풍성하게 공급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전히 그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것이 맥추절입니다. 그리고 장막절에 그 은혜는 더욱 커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리는 은혜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은혜 위에 은혜는 모세를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1년에 세 번만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 나아가는 모든 순간, 모든 주일의 예배는 전부가 다 유월절이요, 맥추절이며, 장막절입니다. 그 모든 절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절기들이 그림자였다면 우리는 이제 실재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는 이제 기쁨과 감사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비록 우리는 여전히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온전하게 용납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영광을 성 삼위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