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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46) - 기억하라

민수기 28:1~29:40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7-01-04

말씀내용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잊지 말자 육이오!”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그 비참한 동족 상잔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최근 3년 동안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가슴 아픈 말이 우리 사회에 회자되었습니다. 한국사회는 수많은 부모의 가슴에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남겨준 세월호를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었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였습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누리고 사는 모든 것으로부터 행복을 얻지 못할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의 존재 조건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이 새로운 세대를 향하여 중요한 말씀을 주십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나를 기억하라. 내가 너희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기억의 장치: 제사
어떻게 하나님과 그 베푸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까? 바쁘게 살다 보면 기억해야 할 많은 기념일들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결혼기념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일 같이 소중한 날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무심함도 있겠지만 보통 바빠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런 날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나름 기억의 장치들을 고안해냅니다. 수첩이나 달력에 연초에 기록을 해둔다든지, 혹은 스마트폰의 일정에 반복되는 일정으로 기록해 놓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그 베푸신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기억의 장치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제사와 절기입니다. 그 기억의 장치는 매일, 매주일, 매달, 그리고 매년 시간의 사이클로 반복되는 일정 속에 주어졌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가 언제 행해지는지 보십시오. 먼저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리는 상번제가 있습니다(28:1~8). 또 매주 안식일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한 주간은 안식일을 중심으로 돌았습니다. 그들은 매 안식일 마다 일을 쉬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28:9~10). 또 매달 드리는 제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월삭 혹은 초하루의 제사였습니다(28:11~15). 참고로, 이런 제사에서 드려지는 제물들은 생략되거나 대치되지 않았습니다. 즉 매일 드리는 번제가 있으니 안식일에는 의미만 바꿔서 그 제물을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상번제의 제물을 드리고 안식일의 제물을 추가로 드려야 하고, 만일 월삭이 안식일과 겹친다면 또 추가로 월삭의 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상번제, 매주일 드리는 안식일의 제사, 매월 첫 날에 드리는 월삭(초하루)의 제사가 있었고, 이외에 연중 한 번씩 반복해서 드리는 제사가 있었습니다. 연중 제사로는 제일 먼저 유월절과 무교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 보면 연초에 맞는 첫 절기입니다(28:16~25). 29장은 이스라엘의 종교력으로는 7월에 해당하고 민간력으로 정월인 한 달에 들어있는 연중 절기들을 기록합니다. 먼저 7월 1일은 나팔절이고 나팔을 불어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그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29:1~6). 그 다음으로 7월 10일의 대속죄일이 옵니다. 1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온 백성을 위하여 죄를 속하는 날이고 이때 대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그 피를 속죄소에 뿌리게 됩니다(29:7~11). 끝으로 7월 15일부터 22일까지 8일간 계속되는 장막절 혹은 초막절입니다(29:12~39). 이것은 추수를 다 마치고 곡식을 저장한다고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절기는 모든 절기 중 가장 많은 제물이 하나님께 8일 동안 드려지는 가장 중요한 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장막절을 이스라엘 백성의 남자들이 성소로 나아와 하나님을 뵈어야 하는 삼대 절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장막절을 지내고 나면 연중 절기가 다 마칩니다.
자, 매일 아침과 저녁의 상번제, 안식일, 초하루, 그리고 유월절과 칠칠절 그리고 나팔절과 속죄일 마지막으로 장막절 등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은혜를 기억하고 살라고 ‘은혜로’ 주신 기억의 장치들입니다. 이점에서 신앙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세상이 복잡해도 이스라엘은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억의 장치들을 가동함으로써 하나님과 그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매주 안식일, 매달 첫 날에, 매년 여러 절기들을 통하여 그들은 돈을 몇 푼 더 버는 것,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확인해야 했습니다.

가르침의 장치
하나님께서 제사의 규정들을 주신 것은 단순히 기억하라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또한 가르침의 장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반복되는 제사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무엇을 가르치시려는 것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제사를 통해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을 배워야했습니다. 매일, 매주일, 매월, 매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양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계산해보면, 1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정한 절기에 드려야 하는 제물의 양은 황소 113마리, 숫양 32마리, 어린양 1086마리 그리고 톤 이상의 소제를 위한 밀가루, 수천 병의 기름과 포도주였습니다.
여기서 댓가라고 말하는 것은 본질상 죄의 댓가를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진다고 해도 사실 이 모든 것은 단 한 사람의 영혼도 살려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제물이 드려질 때마다 자신들이 죄인이며, 자신들을 구속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대속물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 제물은 자신들이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택하신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할 만한 제물은 오직 하나님만이 친히 준비하여 제공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믿음으로 배워야 했습니다. 이점에서 구약의 모든 제사와 절기는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킬 뿐 아니라 예표하는 것입니다.
속죄의 댓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수많은 제물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코 싸구려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위안과 도움을 원합니다. 많은 사람이 영적인 어떤 것을 바라지만 댓가를 지불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헌신 없는 위안,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영적 관계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책임지기 싫어서 결혼하지 않으면서 동거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신앙의 자리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거룩해야 했고 그것은 댓가를 지불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헌금/헌상에 대하여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희생적으로 제물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친히 가르치셨고 그것을 제도로 정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런 규정을 율법주의적으로 엄격하게 받아들여서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 규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셨던 원리는 배우고 기억해야 합니다.
복음서에는 주님의 제자가 될 뻔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공관복음의 기록을 종합해서 보면, 그는 젊은 관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나아와 꿇어앉아 물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신 주님께서는 몇 차례 질문 뒤에 그를 사랑하사 그에게 결정적 요구를 하셨습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0:21).” 이것은 영광스러운 초청이었습니다. 내 제자가 되라는 주님의 초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재물이 많은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마 10:22). 그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신자의 가격표를 보고는 질겁해서 신자와 제자로 살기 보다 그냥 댓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구도자로 남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문제는 댓가를 치룰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동일한 이유로, 참된 신자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고 그냥 교회만 다니기로 한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결코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누리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믿음을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어떤 댓가를 지불할지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댓가를 지불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신앙은 우리 자신을, 우리 몸을,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교제의 장치
하나님께서 명하신 제사와 절기들은 기억의 장치이고 가르침의 장치였을 뿐 아니라 또한 교제의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통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때에는 어떤 이유로도, 어떤 중요한 일로도 양보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교통하는 것은 구속의 목적이라고 말할 만큼 중요합니다. 이 모든 제사와 절기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바쳐진 짐승의 제물이나 곡물 혹은 전제로 드려진 포도주가 아닙니다. 어떤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리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제사와 절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와서 나와 교제하자”는 초청입니다. 만일 이 본질이 간과된다면 다른 모든 것은 형식에 불과한 껍질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드려지는 상번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들과 매일 아침과 저녁에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8:2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제물에 넘치도록 과한 찬사를 주십니다.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무엇을 잡수시는 것은 아니지만, 제사와 절기가 한 상에 앉아 당신의 백성과 함께 먹는 교제임을 잘 보여줍니다. 한 상에 앉아 먹는 것은 가족이고 친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이 교제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
우리는 기억의 장치, 가르침의 장치, 그리고 교제의 장치, 이 세 가지 의미로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제사와 절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가지만 더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풍요를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지요. 지금 우리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지켰던 방식으로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특히 율법의 의식법 규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시간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안식일이 주님의 부활 이후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로 변화되어 지켜지는 것입니다. 정한 날, 주의 백성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주일은 중요합니다.
구약 백성은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한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기와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일상과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날과 기간을 피해서 계획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연하고 합당한 태도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우리 신앙 생활의 한 단면을 비추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주일’이라고 하는 특별한 날을 중심으로 계획되고 진행됩니까? 여러분에게 주일은 정말 중요한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두번째는 하나님께서 제사를 통해서 자기 백성에게 풍요를 약속하신다는 겁니다. 엄청난 양의 제물들이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이것들을 다 준비하려면, 그들은 정말 그와 비할 수 없이 많은 풍요를 누려야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너희는 이 모든 제사와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하심으로써, 너희는 이 많은 제물을 드리고도 남을만큼 풍요를 경험하고 누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많은 것을 드리고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고민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불신이라면,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우리가 그 많은 제물을 하나님을 드릴 수 있을만큼 부요함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과 교훈
이제 적용을 생각하며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기억하고 삽니까? 우리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 생각과 신앙과 모든 것이 매몰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께서 주신 주일이나 사람들이 정해서 예배하는 수요일, 또는 어떤 시간에 어떤 예배와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을 제대로 정기적으로 잘 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에게 주일과 예배가 없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할까요? 그래서 주일은 소중합니다. 주일이 무너지면 우리 신앙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정, 직업 그리고 모든 것을 계획할 때, 주일을 고려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우리는 댓가를 지불하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게 맞습니까? 이것은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사안입니다. 제가 미국에 살 때 경험한 일인데 많은 부모가 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헌금하라고 1불 짜리 지폐 한 장을 쥐어 줍니다. 이건 팁으로도 부족할 돈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계속 1불을 헌금합니다. 그리고는 성장해서도 그들은 헌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였기에 인색함과 가장 싸고 적은 것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값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어 죽게 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고, 이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댓가를 지불하는 삶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과 충분히 교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 삶의 중심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있습니까? 매일의 상번제와 같이 우리는 아침과 저녁으로 하나님 앞에 앉아서 하나님과 교제합니까? 다윗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다윗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상번제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고 그래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다윗의 마음으로 그것을 원하십니까? 그렇게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고 갈망하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그렇게 하나님과 충분하게 교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게 살지 않았던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깊이 교제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여러분의 삶의 여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의 여러분의 삶의 중심, 여러분의 삶의 최고의 시간에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이것이 제사와 절기의 규정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신 삶입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입니다(마 6:33).
기억하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를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억의 장치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이 이제 2017년 새해를 시작하는 여러분의 삶을 재조정하는 기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