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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강해 (44) - 새로운 세대

민수기 26:1~27:11 / 김형익 목사 / 수요기도회설교 / 2016-12-21

말씀내용
26장은 두번째 인구조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미 몇 차례 언급했듯이, 26장부터 민수기 마지막 장인 36장까지는 민수기의 후반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 첫 세대는 다 광야에서 죽었고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2세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민수기의 전반부(1~25장)와 후반부(26~36장)는 각각 인구조사로 시작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민수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인구조사를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들은 시내 광야에 머물고 있었고 때는 애굽에서 나온지 2년 2개월 첫째날이 되는 때였습니다(민 1:1). 이제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인구조사를 명하시는 때는 이미 38년 이상이 지났고 모압 평지에서 요단강 건너에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시점입니다. 특별히 본문 1절에서 “염병 후에”라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앞서 벌어졌던 바알브올의 배교사건으로 2만 4천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고(25:9) 이 두 번째 인구조사에서 그것이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점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구 조사의 목적
우리가 이미 1장에서 살펴본대로 인구조사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2절에 “이십 세 이상으로 능히 전쟁에 나갈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한다는 말은 인구조사의 성격이 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4절도 그것을 간략하게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야 할 전쟁은 광야에서 만나는 민족들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번째 인구조사를 명하시는 것은, “이제 너희가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이 싸움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싸움이다”라는 메시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임박한 가나안 입성의 신호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구를 조사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26:53에 이른 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실 가나안 땅의 분배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명수대로 땅을 나눠 주어 기업을 삼게 하라(26:53).” 엄밀하게 보면 이 목적이 군사적 목적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부터 상고할 본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두번째 인구조사의 기록은 1장에서 본 군사적 목적만을 위한 인구조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26장은 1장보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것은 각 지파에 속한 더 작은 단위인 ‘종족’의 이름들을 기록한다는 점입니다. 가령, 르우벤 지파를 보면 하녹 종족, 발루 종족, 헤스론 종족, 갈미 종족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26:5~6). 물론 1장에는 이런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이 인구조사의 목적이 땅 분배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땅 분배의 원리가 본문에 간략하게 소개되는 26:54~56을 보지요. “수가 많은 자에게는 기업을 많이 줄 것이요 수가 적은 자에게는 기업을 적게 줄 것이니 그들이 계수된 수대로 각기 기업을 주되 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원칙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파에게는 더 큰 땅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분명하게 이해하는데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55~56절에 제비를 뽑아서 주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제비를 뽑는다면 누가 어느 땅을 소유하게 될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56절에는 “그 다소를 막론하고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고 하셨으니 말입니다. 이것은 지파들의 크고 작음에 상관하지 말고 제비를 뽑아 할당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원칙이 서로 충돌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런 저런 설명들을 해보았습니다. 많이 받아들여지는 설명 중 하나는 숫자가 많은 지파외 적은 지파가 두 그룹으로 나누어 제비를 뽑았다는 설명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이 26:56을 이렇게 번역을 합니다. “인원수가 많은 지파들은 넓은 땅을 차지할 지파들끼리 제비를 뽑고 인원수가 적은 지파들은 적은 땅을 차지할 지파들끼리 제비를 뽑게 하라.” 그러나 이런 설명도 가능합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 기록에는 각 지파에 속한 종족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기업을 받게 되면, 그 안에서 종족 별로 인구를 참조하여 기업을 다시 나누는 형태로 땅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준, 인구수에 따른 분배와 제비뽑기를 통한 분배는 적절하게 여호수아에 의해서 수행되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 땅 분배와 인구조사가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구 조사에서 주목할 사항들
우리가 이 인구조사 기록에서 주목할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전체적인 숫자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인구조사에서 이스라엘은 603,550명이었는데(1:46), 두번째 조사에서는 601,730명이었습니다(26:51). 800여명이 감소하였지만, 주목할만한 큰 차이는 아닙니다. 이것은 광야 40년의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반역을 일삼은 것을 생각할 때 전적인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멸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출 32:10).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기 위하여 그 심각한 패역함과 불순종과 원망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보호하고 인도해주셨습니다. 인구조사 후에 백성들은, “아, 지난 40년 동안 우리의 부모들은 다 데려가셨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해주셨구나. 하나님은 실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대로 신실하게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구나”하는 고백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알브올의 배교사건에서 언급하기는 하였습니다마는, 시므온 지파의 수가 59,300명에서 22,200명으로 현저히 감소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지파들의 증감은 므낫세 지파를 제외하면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므낫세 지파는 32,200명에서 52,500명으로 크게 증가하였는데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므온 지파의 현저한 감소에 대한 이유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 명령이 주어진 것은, ‘염병 후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알브올 사건으로 인하여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은 것을 가리킵니다(25:9). 이 사건에서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의 아들인 시므리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염병이 돌고 있는 와중에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갔고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는 그들을 창으로 꿰어 죽였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현저한 인구 감소는 아마 이 염병으로 죽은 24,000명의 다수가 시므리가 속한 시므온 지파였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합니다. 이것은 무리한 설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반역에 대한 언급입니다. 9~11절을 봅니다. “엘리압의 아들은 느무엘과 다단과 아비람이라 이 다단과 아비람은 회중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니 고라의 무리에 들어가서 모세와 아론을 거슬러 여호와께 반역할 때에 땅이 그 입을 벌려서 그 무리와 고라를 삼키매 그들이 죽었고 당시에 불이 이백오십 명을 삼켜 징표가 되게 하였으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 이것은 르우벤 지파에 대한 항목에서 르우벤 지파에 속한 다단과 아비람이 레위 지파 고라의 반역에 함께 하였던 것을 언급하는 대목입니다. 이때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이 다 함께 죽임을 당했습니다. 특별히 다단과 아비람은 그때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서” 있었고 땅이 입을 열어 그들을 모두 삼켰다고 기록합니다(민 16:27,30~31). 그러나 26:11이 밝히듯,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와는 달리, 고라의 경우에는 가족들이 고라의 반역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비의 죄악으로 아들이 형벌을 담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겔 18:20). 그리고 우리가 알다시피, 후일 경건한 고라의 자손들은 여러 편의 시편을 쓰기도 하였습니다(시 42,44~49,84~85,87~88).
네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유다의 아들들인 에르와 오난에 대한 언급입니다(19). 유다의 이 사악한 아들들은 그 악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창 38:7~10). 르우벤 지파의 다단과 아비람을 언급한데 이어, 유다 지파에서는 에르와 오난을 언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더 주목할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답와 아비후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26:61).” 여기 언급된 인물들의 면면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들이 모두 믿음이 없이 불순종했고 반역을 행한 인물들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불신앙과 불순종, 그리고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신실하게 성취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놀랍게 보여주기 위해서 모세는 이런 악한 일을 행했거나 주도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보여준 믿음(27:1~11)
26장부터 36장은 민수기의 후반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후반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입니다. 먼저 우리는 두번째 인구조사가 끝나는 자리에서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를 보게 되고 다시 36장에서 이 여인들을 만납니다. 문학 구조로 보면, 이것은 수미쌍관으로 앞과 뒤에서 각각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이제 새로운 세대의 이야기의 중심 주제는 땅(기업)의 분배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땅 분배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임박한 현실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누구입니까? 이들은 이미 26장의 인구조사에서 언급이 되었습니다.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고 딸뿐이라 그 딸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니 이는 므낫세의 종족들이라(33~34a).” 족보나 인구조사 결과에서 여인들의 이름을 이렇게 언급하는 것은 히브리 관습 상 예외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다루어야 할 주제와 중요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미리 그 이름들을 언급한 경우로 보입니다.
27장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에게 문제를 제기한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그들의 문제제기는 이것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27:3~4).”
슬로브핫의 딸들은 먼저 자기들의 아버지가 고라의 심각한 반역죄로 죽지 않고 자기 죄로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슬로브핫이 가데스에서의 반역으로 인해 모든 출애굽 1세대의 죽음이 선고된 연고로 죽었다는 말입니다. 고라의 반역과 같은 심각한 반역죄의 경우, 그들의 모든 소유물까지 땅이 삼킨 것을 생각할 때, 자기들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재산권과 소유권까지 박탈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항변하는 말입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들이 없이 다섯 딸만 남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업을 얻지 못한다면 아버지의 이름은 없어지게 될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딸들인 자신들에게 아버지의 기업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근동이나 히브리 관습은 여인들에게 땅을 유산으로 상속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딸들은 결혼을 할 때 신부지참금의 명목으로 아버지로부터 의복과 보물 혹은 돈과 가구 등을 받았는데, 부유한 아버지는 여종을 붙여주거나 예외적으로 땅이나 성읍을 주기도 했습니다(창 29:24,29; 삿 1:13~15; 왕상 9:16).
이 문제가 제기되자 모세는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를 몰랐고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로 인하여 땅 분배의 중요한 원칙을 몇 가지로 제시하셨습니다. 그 원리는 이렇습니다. 1) 아들이 없이 죽은 사람의 기업은 딸들에게 상속된다(8). 2) 딸들도 없으면 죽은 사람의 형제에게 상속한다(9). 3) 죽은 사람의 형제도 없으면 그 아버지의 형제에게 상속한다(10). 4) 아버지의 형제도 없다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상속한다(11).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단지 여성들의 권리 신장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민수기가 중요하게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이 사건이 주어지는 시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앞에서 두번째 인구조사의 주된 목적은 기업 분배라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인구조사가 마치자 마자 등장하는 이야기는 딸만 둔 아버지의 경우에 기업 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맥락은 본문의 중요 주제가 기업 분배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줍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가진 믿음과 소망입니다. 우리는 1세대에서 이런 믿음을 볼 수 없었습니다. 부모의 세대는 가나안의 접경인 가데스에서 보낸 정탐군들의 보고를 듣고 이는 우리는 죽이는 땅이라고 악평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자녀의 세대인 슬로브핫의 딸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은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몫을 원한다.” 이것은 그들의 탐욕이 아니라 믿음을 보여주는 고백입니다. 부모들은 그들의 탐욕과 불신으로 죽었을지라도, 자녀들의 세대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과 소망으로 장래의 은혜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구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모범으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교훈과 적용
본문에서 얻는 몇 가지 적용적 교훈을 생각함으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능히 덮으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
첫째로 그 숱한 죄와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 속에서 없어지지 않았고 그 숫자는 크게 줄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능가하고 덮으시고도 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고 완벽하게 나타났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경험한 광야의 40년은 우리 인생과 흡사합니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는 인생을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의 궁극적 성화와 영화는 결코 그런 불확실성에 의해서 흔들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그 약속하신 것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엡 1:18).” 이 모든 불확실성 속에서도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과 안전함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보장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탐욕에서 자족에로!
두번째로 우리가 생각할 교훈은 이것입니다. 본문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는 중심 주제를 시작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원칙과 제비뽑기를 통해서 주시는 기업이고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업을 지파별로 주실 것이고, 그들이 기업으로 얻은 땅에서 그들은 땅에 대한 탐욕으로 더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신 기업으로 만족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잠 22:28; 23:10)”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 주신 구역 안에서 자족함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자족함이 없이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딤전 6:6).

자녀들의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본문이 주는 가장 은혜롭고 소망으로 풍성한 교훈은 부모 세대 보다 나은 믿음을 보여주는 자녀들의 세대에 관한 것입니다. 고라는 반역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습니다(26:11). 그리고 후일, 고라의 자손들은 여러 시편의 저자들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자녀들의 세대가 부모들의 세대보다 나았는데 특별히 믿음에 있어서 그러했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을 보십시오. 부모세대는 가나안의 접경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을 거부했지만, 자녀들이 세대 특별히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늘 자녀들의 믿음을 바라보면서 염려하는 부모들에게 얼마나 큰 소망입니까? 부모는 죄로 말미암아 죽었지만, 자녀들의 세대에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소망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우리 그런 은혜를 구하십시다. 그런 은혜를 우리의 자녀들이 세대에 허락해주시기를 구하십시다. 그 자비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녀들의 세대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를 구하십시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시 90: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