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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85) - 마음에 원하는 자들

출애굽기 35:4~36:7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2-09-07

말씀내용
<마음에 원하는 자들> 출 35:4~36:7



오늘 본문은 성막을 짓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백성들에게서 성막을 지을 재료를 모으고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헌신하여 성막을 지을 준비를 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제 35장부터 39장은 성막 건축에 관한 내용을 쓰고 있는데, 이 내용이 25장에서 31장의 내용 즉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모세에게 지시하시는 내용과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왜 이런 반복이 필요한지 묻게 되고, 또 창세기부터 성경을 읽어내려온 사람들도 여기서 처음으로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기가 쉽습니다. 물론 우리는 명확하게 이 반복의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마는, 하나님께서 요즘같이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로 하여금 이것을 다시 기록하게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금송아지 숭배 사건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약속을 철회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소명과 선교적 사명을 이루신다는 것을 이 성막 건축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를 잘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시는 수고를 주저하지 않으심으로 새롭게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1월에 출애굽기 강해 59번에서 출애굽기 25장에 예물에 대해서 말씀하신 본문을 상고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기서는 지시 사항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소유를 가지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 성막을 짓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늘에서 완성된 성막을 땅으로 내려보내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들의 소유와 재능을 바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성막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35~39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35:4~20은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어떤 물품들을 하나님께 드릴 것인지를 분명하게 지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35:21~29은 그대로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이 하나님께 그 물품들을 바쳤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35:30~36:2은 브살렐과 오홀리압 등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하나님께 드리며 헌신하는 내용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36:3~7은 백성들이 드린 예물이 넘치고 넘쳤다는 내용을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우리는 ‘드림’ 혹은 ‘헌금’ ‘헌신’과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있는 것을 받으신다(35:5; 고후 8:12)
하나님은 있는 것을 받으신다는 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35:5에 “너희의 소유 중에서”라고 한 것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을 하는 과정에서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없는 것을 만들어오라는 것은 깡패들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있는 것, 소유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랜 세월 노예로 살았기에 가진 것이 많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나오기 전날 애굽 사람들에게서 밀린 임금을 받아나오게 하셨습니다(출 12:36). 하나님께서는 유난히 이 사실을 예언하여 강조하셨습니다. 오륙백 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고(창 15:14), 또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말씀하셨습니다(출 3:22). 이렇게 성경이 이 일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한 준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을 때, 이 성막을 지으실 것을 기대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성막을 짓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이미 충분하게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들이 가진 소유 중에서 하나님께 바쳐 성막을 짓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먼저 드려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갚아주셔야 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을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5).”

2.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드린다(35:5)
두번째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리는 ‘마음에 원하는 자는’이라는 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자가 드리는 것을 받으십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라면, 의무적으로 드리는 것이라면, 그 액수가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나님은 지금 성막을 짓기 위해서 그들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엄밀히 말하면 세금과 같은 성격입니다. 이것은 헌금(offering)이라는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써 그 고백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 다음에 사실 헌금(offering)이 있습니다. 이 헌금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고, 지금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이런 성격의 자원하는 예물입니다.

여기 ‘마음에 원하는’ 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넉넉한’ ‘관대한’ 마음(generous heart)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기꺼이 드리는, 주기를 즐거워하는’ 마음입니다. 사실상 이 마음은 죄인의 본성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만져졌고 건드려진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죄인은 이런 마음의 변화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도 정말 콩나물을 팔아서 평생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어떤 기관에 쾌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귀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신의 소유를 자원해서 드리는 일은 은혜를 입기 전에는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또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이와 동일하게 구제나 좋은 사업을 위해서 물질을 드린다고 할 때, 이 모든 것은 사실상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위입니다(빌 4:18). 주님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행 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이 모든 것은 마음에 자원하는 것을 전제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지시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35:21~22을 보지요.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출 35:21~22).”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충당하기 위해서 그들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 무엇입니까? ‘마음이 감동된 자’, ‘자원하는 자’, 그리고 ‘마음에 원하는 남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친 자들은 모두가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이들이 바친 물품의 액수가 얼마나 되었다고 말하고 있지만(38:21~29),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남녀가 자기 마음에 원함으로 이 예물들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3. 누구나 하나님께 즐거이 드렸다(25~29).
이 드리는 일은 마음에 속한 일이었기 때문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소유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을 만큼 소유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있지만 말입니다. 성경 특히 구약 시대에 여인들의 위치는 매우 취약했습니다. 그러나 여기 여인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5:25~26절입니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 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낳았으며(출 35:25~26).” 이 여인들에 대해서 성경은 단순히 자원했고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고만 쓰지 않습니다. 이 여인들에 대해서 성경이 칭찬하는 단어는 그들이 ‘슬기로운’ 여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지혜는 재능, 기술을 의미하는 말로 그 뜻이 확장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물론 실을 짜는 기술과 재능을 의미합니다. 여인들이 마음에 원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드릴 수 있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사실 성경에서도 그렇지만, 교회 역사에서도 하나님께 지혜롭게 자신들의 물질과 재능을 드렸던 여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많은데 여인들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보다 여인들이 이런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여인들에 대해서 성경은 대개 지혜로운 여인으로 묘사합니다. 마음에 원함으로 하나님의 성막을 위해서 드린 것은 여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특권층이라고 불릴 수 있는 족장들 또한 그들이 드릴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27~28). 이들이 드린 물품들을 보면 역시 귀중품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그 가치로 환산한다면, 이들이 드린 것이 어떤 다른 사람들이 드린 것보다 많았을 것입니다마는,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액수가 아닙니다. 결국 29절에서 하나님께 드린 모든 사람들이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자손”이었다고 한 마리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렸기에 드리는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를 알게 하시기를 구합니다.

4. 물질 만이 아니라 재능도 하나님께 드렸다(35:30~36:2).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비단 물질만이 아닙니다.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재능있는 예술가, 기술자들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두 사람의 이름을 이미 모세에게 지시하신 바 있습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31장에서 보았듯이, 하나님께서는 성경 최초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것이 아브라함도, 모세도 아닌 브살렐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시 모세는 백성에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명하여 부르신 사람 브살렐에게 “하나님의 신을 충만케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신다”고 말입니다(35:31).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재물을 가지고 애굽에서 나올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성막을 건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셨지만, 브살렐은 공교한 일을 연구해야 했습니다(35:32,35).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우리의 노력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홀리압에게도 그 마음을 감동하셨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35:34). 그러나 브살렐과 오홀리압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지명하신 두 사람 외에도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하나님은 부르시고 사용하셨습니다(36:2). 이들은 모두가 재능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약 교회에서 성령의 은사라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은사라는 차원을 우리가 잘 이해하는 것이 교회 생활에 중요합니다. 성막을 짓는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일이었고, 마음에 자원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니은 어느 특정한 족장이나 부유한 사람을 지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성막을 짓는 일은 일정한 재능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자원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먼저 ‘지혜로운 사람’ 곧 재능을 갖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36:2).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세워가시기 위하여 지체들에게 은사를 주십니다. 가령, 저는 목사인데, 목사이기 때문에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의 은사를 성령님께서 주셨고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서 부르셨으며, 교회가 그것을 인정했기에 목사로서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주신 은사를 따라 그 일을 연구하고 애써서 잘 감당하는 것이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저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셔야 합니다. 그냥 마음에 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리는 역시 마음에 원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쓰임을 받는 대신, 나 자신만을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재능일 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은 당신께서 맡겨주셨던 것들에 대해서 모든 사람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결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 소유가 없어서 드릴 것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만 있다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재능이 전혀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5. “이제 그만!”(36:4~7)
오늘 본문의 절정은 36:6~7입니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6~7).” 모세는 “이제 그만!”이라고 소리쳐야 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입니까? 성경 밖에서 교회가 이렇게 외칠 수 있는 때가 있었는지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기억할 수 있는 사건이 없습니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외치는 소리만을 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을 입고, 마음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물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성막을 건축하기 위해서 모인 모든 자원하는 기술자들이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36:4). 왜냐하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계속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36:3). 아침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고, 그들이 가지고 나왔습니다. 기술자들은 말했습니다.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36:5).” 결국 모세는 예물 중단을 명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바친 물품들은 넘치고 또 넘쳤습니다.

6. 교훈과 적용
A. 필요한 것은 은혜다.
오늘 본문은 부족함이 없고 넘치고 넘치도록 백성들이 드린 물품이 풍족했던 이유를 단 하나의 말로 설명합니다. 그것은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자들’이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송아지를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배역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34:6). 은혜를 받는 것, 하나님의 은혜가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는 열쇠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은혜가 풍성하다면, 우리는 “이제 그만!”이라고 외쳐야 할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돈도 물질도 아닙니다.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격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감당할 수 없는 선물을 아는 것입니다. 그 선물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을 감동하게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 대단한 선물을 주시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받을 수 없는 용서와 은혜를 베푸심으로 그들 마음이 감동하여 하나님께 소유 중에서 예물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언제나 순서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은혜만이 물질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아래 복종시킬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을 경험하셨습니까? 우리는 계속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은혜는 자원하는 마음을 낳고 자원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림을 낳으며, 이 드림은 부족함이 없는 풍족함을 낳습니다.

B. 우리의 마지막 고백
코리 텐 붐 여사는 자신의 숙모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얀 숙모는 일생 동안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글을 쓰고 말을 하고 재정을 모아 기부하는 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녀가 죽을 벼에 걸려 침상에 누웠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예수님, 우리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하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오직 이 사실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삶이 남기는 아름다움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일생 동안 주시는 물질과 시간과 은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하십시오. 마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성막을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마음에 원하는대로, 하나님의 일에 자신들의 소유를 드리게 함으로써 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함으로 하나님께 드림 풍성한 여러분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