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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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87) - 성막이 계시하는 하나님

출애굽기 37:1 ~ 38:31 / 김형익 목사 / 기타 설교 / 2012-09-21

말씀내용
<성막이 계시하는 하나님> 출 37:1~38: 31



오늘 본문은 한 번의 설교로 다루기에는 아주 긴 본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앞에서 성막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를 다루는 25~31장에서 상세히 다룬 내용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본문을 오늘 함께 다루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가 살펴본 36장의 내용은 성막은 그리스도로 성취되었고 또 나아가서 교회로서 실현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먼저 성막 안에 있는 기구들, 그리고 성막 뜰에 있는 기구들과 뜰의 울타리 등에 대해서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이 말씀을 상고할 것인가 하면, 이 각각의 내용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어떤 성품들이 드러나는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해주시는 방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1. 언약궤(37:1~9)
언약궤는 지성소에 자리한 것으로 성막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기구입니다. 언약궤는 곧 하나님의 임재였고,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 번 속죄일에 자신과 백성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피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사실상 금향단에서 올라오는 향으로 거의 가려져 있었기에 대제사장이라고 할지라도 자세하게 그 모든 모양을 살피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약궤는 2 1/2규빗(115 cm) x 1 1/2규빗(70 cm) x 1 1/2규빗 의 직육면체 상자였습니다. 이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십계명 두 돌판이었습니다. 사실상 십계명 두 돌판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증거이므로 이것을 언약궤, 혹은 증거궤, 법궤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 각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만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먹이시고 그들의 일상적인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언약궤 안에 보존하라고 지시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먹이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출 16:32).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민수기 16~17장에서 그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라의 큰 무리가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도전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고라의 무리를 다 땅이 삼키게 하신 후에,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리더들이 각자 지팡이에 이름을 써서 하나님의 성소에 두게 하신 후, 아론의 지팡이에서 움이 나고 순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나게 하심으로서 아론의 리더십과 권위를 세워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이 지팡이를 기념이 되도록 언약궤에 넣어 하나님의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패역한 자들에게 표징이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민 17:10).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십계명 돌판을 언약궤에 넣게 하셨습니다(신 10:5). 이것은 당시 언약의 사본을 보존하던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결국 언약궤 안에 둔 세 가지를 통해서 보여주는 하나님의 성품이 있습니다. 만나는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아론의 지팡이는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권위를 주신 사람을 통해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십계명 두 돌판은 언약의 하나님, 언약을 맺으심으로 그 백성의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공급하시고 다스리시고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언약궤를 통해서 계시되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언약궤는 그 이상입니다. 언약궤의 덮개를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이 덮개는 속죄소라고 불립니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속죄소는 언약궤를 굳게 닫고 있고 이 덮개에 이어 역시 순금으로 두 그룹 천사의 모양을 만들게 하셨고 이 두 그룹은 양 날개를 펴서 언약궤를 덮고 얼굴은 서로 마주 보되 아래 속죄소를 보고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그룹들 사이에 혹은 위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바로 하나님께서 여기 임재하신다는 개념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왕하 19:15; 시 80:1; 삼하 6:2; 참조, 민 7:89). 대세사장은 바로 이 속죄일 제사 때 희생제물인 수송아지와 염소의 피를 이 속죄소 위에 뿌리게 됩니다. 이 뿌려진 피를 통해서 속죄가 일어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속죄소를 다른 말로 시은소(mercy seat)라고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입니다. 피가 뿌려진 속죄소는 단순히 언약궤를 덮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 돌판으로 상징되는 율법을 덮고 있는 것입니다. 속죄소는 율법을 범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백성들을 향한 율법의 저주와 진노를 덮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죄소는 희생의 피에 근거하여 죄인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이 언약궤는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의 맨 앞에서 그들의 진행을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민 10:33). 요단강을 건널 때도,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도 언제나 언약궤가 앞장을 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임재로 백성을 인도하시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언약궤를 통해서 계시되는 하나님은 또한 자기 백성을 앞장서서 인도하시고 모든 전쟁 가운데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문제는 이 언약궤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 경우들입니다. 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하자, 언약궤를 들고 나가서 전투를 하면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은 크게 패하고 언약궤도 빼앗기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삼상 4~5). 하나님은 이런 방식으로 인간들이 이용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합당치 않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를 들여다 보고 죽은 사건과(삼상 6:19~20) 웃사의 사건에서(삼하 6:1~7) 드러난 바 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이 임의로 자기의 편의를 따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이 언약궤는 보여줍니다.

2. 진설병 상(37:10~16)
이제 우리는 지성소에서 나와 성소에 있는 기구들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기구가 있는데, 진설병 상, 순금 등대 그리고 금향단입니다. 먼저 진설병 상을 만든 것을 본문은 설명합니다. 진설병 상에는 열 두 개의 진설병이라고 불리는 무교병 떡이 매 안식일마다 새롭게 올려졌습니다. 진설병은 ‘베풀어지다, 보여주다, 전시하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이 말의 뜻은 얼굴 혹은 면전의 떡이라는 말인데, 이 얼굴은 하나님의 얼굴을 말합니다. 우리는 떡을 먹어야 사는 존재이고 우리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의 얼굴 앞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보고 계시고 그것을 신실하게 언제나 채우시고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이 진설병 상을 통해서 계시됩니다. 또 이 진설병 상은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 백성을 부르셔서 함께 교제의 식사를 하시는 하나님임을 드러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이 이것을 보여줍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하나님은 필요를 보고 공급해주실 뿐 아니라 자기 백성과 교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진설병 상을 통해서 계시되는 하나님을 보면서, 그분께 나아가 교제하기 원하는 열망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가지고 염려하는 대신, 하나님, 신실하게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께 나아와 구하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순금 등대(37:17~24)
순금 등대는 성소 안을 비추는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언제나 성소에서 섬기는 제사장은 이 순금 등대의 빛을 의지해서 섬길 수 있었습니다. 이 순금 등대는 놀랍게도 살구 나무의 모양을 본따 만들도록 하나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빛 만이 아니라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모든 빛, 모든 좋은 것들은 다 빛들의 아버지로부터만 나옵니다(약 1:17). 그리고 모든 생명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순금 등대는 이런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빛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어떤 이들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인생 가운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생명을 주장하시고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4. 금향단(37:25~29)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성막 뜰에 있는 제단에서 상번제가 드려졌듯이, 성소 안에 있는 이 금향단에서도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께 태워드려지는 향의 제사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성소를 가득 채웠을 이 향연은 성도들의 기도를 상징한다고 설명을 드렸었습니다. 다윗은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함으로써 이 금향단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시 141:2). 요한계시록도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금향단이 계시하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기도를 아름다운 향기로 기쁘게 받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5. 놋제단(38:1~7)
놋제단은 성막의 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일 먼저 정면으로 대하게 되는 가장 크기가 큰 성막의 기구였습니다. 여기는 언제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이 불은 꺼져서는 안 되었습니다(레 6:12~13). 여기서는 언제나 희생 제물이 번제물로, 속죄 제물이나 속건 제물로, 그리고 화목 제물로 드려 태워졌습니다. 죄인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제물이 없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 그 제물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자기 생명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피흘려 죽임을 당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죄인은 제물을 가지고 나와 안수하고 그것을 죽임으로써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희생제물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제 대신으로 받으사 제 죄의 대가로서 그 죽음을 받으시옵소서.” 놋제단은 피흘림을 통해서 우리를 용납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그 피흘림은 수송아지나 염소의 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입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6. 물두멍(38:8)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어진 큰 대야로, 성소에서 일을 하는 제사장들이 언제나 피로 더럽혀져 있는 그들의 손과 발을 씻는 곳이었습니다. 이 일은 놋제단에서 성소로 들어갈 때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반 포이트레스(Vern Poythress)는 물두멍을 놋제단과 함께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처음 바깥문을 통해서 들어오면 놋제단을 만나고 그 다음에 성소로 가기 전에 물두멍을 만난다. 이는 애굽에서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을 통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놋제단으로 상징된다면, 홍해를 건너서 살아남게 되는 물로 씻는 정결의식, 곧 세례가 물두멍으로 상징되는 것과 같다.” 물두멍은 죄를 씻고 정결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출 30:20~21). 성화는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줍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는 것입니다(히 12:14). 하나님은 우리를 물로 씻어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7. 성막 뜰(38:9~20)
성막 뜰은 흰 색의 울타리 세마포 장막으로 둘러쳐지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모두가 100규빗(45m)와 50규빗(22.5m)의 규모입니다. 이 긴 세마포 장을 지탱하도록 기둥들이 세워졌고 각 기둥은 놋 받침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동쪽에 오직 하나의 문, 20규빗(9m) 넓이의 문이 있었습니다. 이 성막 뜰을 두르고 있는 세마포 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하나의 길, 하나의 문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당신께 나아올 수 있도록 오직 하나의 문,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이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친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고(요 10:9),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요 14:6). 하나님은 모든 죄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그 문에는 그룹의 형상을 새기라고 지시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8. 성막 건축에 사용된 예물의 규모(38:21~31)
마지막으로 38장의 뒷부분은 성막 건축에 사용된 예물의 규모를 밝혀주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서 그 전체 규모의 대략을 알기 위해서 특별히 금과 은과 놋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금은 24절에 29달란트와 730세겔이라고 했는데 거의 1톤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이렇게 환산하면 은은 3.5톤이고(25), 놋은 2.5톤에 가깝습니다(29).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합당하다고, 아니 이것으로도 감히 합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하늘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고 섬길 것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어떤 것들을 얻기 위해서 가볍게 부를 수 있고,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신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고, 제물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유일한 문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아오고,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유일한 제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믿고 의지하여 나아오는 자들을,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그들을 용납하시며 그들의 모든 삶의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하시고 그들에게 생명과 빛을 주시며, 그들과 함께 교제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우리 인생길을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며 모든 전쟁을 이기고 결국에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의 구주와 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건축된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왕상 8:23).”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 7:18).” 아멘.